뜬금없는 구애가 시작된 건 작년 부터였다. 세르조 마르키온네 FCA 회장은 GM에 합병을 제안했다. 그는 “합병은 GM과 FCA에 가장 좋은 전략적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꾸준히 합병카드를 들이밀었다. 언론을 통해서도 제안하고 이사회에서의 발언을 통해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GM 이사회는 이 같은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럼에도 마르키온네 회장은 끈질기게 합병을 요청했다. 안기고 싶다고, 제발 FCA를 거둬달란 것처럼 꾸준히 제안했다. 하지만 공식적인 요청을 하진 않았다. 메리 배라 GM CEO는 마르키온네 FCA 회장에게 합병에 대한 연락이나 문서를 받은 적이 있냐는 물음에 “그런 적 없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GM은 내부적으로 FCA와의 합병을 검토해본 적있냐는 물음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한 결론은 ‘합병 불가’였다. 2013년까지 GM의 CFO를 맡았던 댄 애먼 사장은 지난해 이사회에서 “우리는 미래 모빌리티를 모색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새롭게 다가올 시대에서 승리하려면 구식의 비즈니스 모델에 방해받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합병은 구태요 피해야 할 비즈니스란 얘기다. GM의 다른 임원은 “우리가 왜 FCA를 구제해야 합니까?”라며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합병은 구제다

여기서 주목한 단어는 구제다. FCA의 GM에 대한 구애는 구해달란 신호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FCA는 큰 문제 없이 굴러가는 듯 보였다. 크라이슬러 산하의 램은 픽업트럭 호황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었고 FCA 전체 판매량도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었다. 흑자도 지속됐다. 덕분에 2014년 뉴욕 증시에 재상장한 FCA의 주가는 GM에 한창 구애 중이던 8월엔 연중 최고가까지 치솟기도 했다. 겉보기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FCA의 현재는 미래와 바꾼 흑자였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다가올 환경 규제에 대비할 수 없어 FCA가 생각해낸 자구책이 바로합병”이라고 분석했다. 고 연구원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 등의 환경 규제가 점차 강화되고 있는데 당장 2020년부터는 규제 선을 지키지 못할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 금액이 만만치 않은데 친환경 기술이 떨어지는 FCA로서는 연비와 배출가스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물론 현재 재무재표 상으로는 매출이 잘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가 하락에 따른 지프와 램의 반사이익으로 미국에서 잭폿이 터진 것일 뿐 플랫폼 공유나 효율 개선, 기술 개발 등 앞으로도 이익률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들에서 나온 게 아니다. 결국 지금은 현금 흐름이 좋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때문에 FCA는 몸값을 그래도 좀 인정받을 수 있는 요즘 좀 더 큰 기업에 기대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는 “결국 현재 FCA는 친환경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데다 미래 기술 개발에 투자할 여력도 없는 상황이다. 유럽과 북미, 남미 등지에 보유한 공장도 낙후된 상황이다.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처지라 보다 큰 기업에 인수돼 이 같은 상황이 타개되길 바라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분석은 다른 전문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정관 KB투자증권 이사는 “미국과 유럽은 당장 2018년부터 현재보다 50퍼센트 향상된 연비를 충족시키도록 요구하고 있다. 2025년에는 모든 차가 현대 아이오닉 하이브리드 수준의 연비가 나와야만 하는 수준까지 규정이 올라간다. 그런데 FCA의 라인업을 보면 픽업트럭과 SUV가 주력이다. 그런 상황에 연구개발 인프라마저 부족하다. 아마 현재 상태로는 사업을 이어가기 어려울 거라 판단했을 것이다. 엔진과 변속기 등 동력계통은 10년 안에 답이 나올 수 없다. 따라서 마르키온네 회장이 줄기차게 합병을 요구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부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니 해결할 수 있는 곳에서 가져가달란 얘기다. 현재 FCA는 10조원 정도면 인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권만 가져오려면 30~40퍼센트 지분이 필요할 텐데 3조~4조원이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 자동차업계 5위권 안에 드는 수준이면 이 정도 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합병은 가능할까?

FCA는 이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합병을 물색하고 있다. 마르키온네 회장은 지난 5월 이사회에서 “임기 내에 토요타나 폭스바겐, 포드 중 한 업체와 꼭 합병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임기는 2018년까지다. FCA의 소유주인 아넬리 가문의 존 엘칸 회장도 “FCA는 합병을 통해 연간 100억 달러 정도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억달러는 우리 돈으로 11조7000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에 대해 포드는 거절 의사를 분명히했다. 하지만 토요타와 폭스바겐은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신정관 KB투자증권 이사는 폭스바겐의 인수 가능성을 조심스레 전망했다. “폭스바겐의 경우 현재 미국 점유율이 낮은데 원인이 SUV와 픽업 라인업이 약하기 때문이다. 램과 지프를 통해 이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다. 일부에선 디젤 스캔들로 인해 투입될 막대한 비용 때문에 인수 자금 투자가 쉽지 않을 거라고 보는데 그 반대일 수 있다. 크라이슬러와 지프 등을 인수해 미국의 노동력을 직접 고용해 이미지 개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해 디젤 스캔들로 인한 벌금도 깎을 수 있을 거다. 고용 인력을 늘리거나 미국 내 공장을 짓겠다는 등의 제안을 통해 충분히 이뤄낼 수 있는 일이다. 폭스바겐에겐 크라이슬러와 지프가 굉장히 매력적일 수 있다. 5조 원만 투자하면 벌금을 탕감하고 라인업을 개선하며 미국 내 점유율까지 높일 수 있는 카드를 손에 쥐는 격이다.”

 

 

합병은 어려울까?

반면 김동조 벨로시티 인베스터 주식회사 대표는 인수 협상이 어려울 걸로 봤다. 그의 설명이다. “2025년에는 모든 신호와 자동차가 인터넷망으로 연결될 예정이고, 2018년부터 미국에서 출시되는 모든 차는 블루투스와 인터넷을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점차 다양한 규제와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자율주행차와 전기차까지 만들어내야 할 텐데 FCA는 그럴 여력이 없다. 그런데 다른 회사도 만만한 조건은 아니다. FCA를 떠안으면 기회보단 재무적인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FCA는 이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자동차 산업에도 머잖아 뛰어들 것으로 보이 는 애플과 구글에도 손을 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회사는 새로운 돌파구로서의 자동차를 원할 뿐 전통적인 방식의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진 않을 것이다. FCA를 떠안은 채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이미 섰을 테고. 더군다나자동차 산업은 노동의 비중이 굉장히 큰 산업이다.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분할해 매각할까? 그럴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돈이 되는 램과 지프에 다른 브랜드를 끼워 팔아야 한다. 인지도가 높고 이미지가 좋은 페라리를 분할한 건 합병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보기엔 페라리가 매력적일지 몰라도 큰 그림으로 보면 돈이 되는 브랜드가 아니다. 합병에 영향을 주긴 어렵다. 만일 합병에 성공한다면 5대 자동차 기업 중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안기고 싶다니까!

현재도 FCA는 줄기차게 매각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면서 캐나다 윈저 공장에 26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고, 구글과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 손잡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스스로 가치를 올리기 위한 공표였다. 그런데 실제 윈저 공장에 투자하는 금액은 7억4400만 달러이며 나머지는 윈저 공장에서 생산할 신형 퍼시피카 개발에 투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구글과의 협업도 단순히 차량 공급 수준이라는 구글의 발표에 체면을 구겼다. 안기고 싶은데 주변에서 도무지 도와주질 않는다. FCA는 정말 안길 수 있을까? 마르키온네 CEO는 뜻대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