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에 따르면 한국은 7시리즈가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이 팔리는 시장이라고 한다. 지난해 10월 6세대 7시리즈 론칭 행사에서 BMW 본사 이언 로버슨 세일즈&마케팅 총괄 사장은 “이번 7시리즈를 개발할 때 한국 고객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공을 들인 7시리즈가 한국 시장에서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BMW코리아의 시름이 깊어만 갈 수 밖에. 차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것일까? 한국에 국한된 문제일까? 아니면 전 세계적인 문제? 지금부터 하나씩 짚어나가자.

세븐은 진정한 기함이었다 BMW 딜러인 코오롱모터스는 거의 모든 지점 전화번호가 7301로 끝난다.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코오롱모터스가 한국 최초의 BMW 공식 수입사였던 1987년 도입한 최신형 모델이 바로 730i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전통으로 남아 있다. 그만큼 7시리즈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게 한국의 BMW 역사에 자리한다.

 

7시리즈는 BMW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입차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에도 BMW 전체 판매량의 13.7퍼센트를 차지하는 2303대가 팔렸고 이후에도 꾸준히 2000대 전후를 유지할 정도로 절대 판매량에서 매우 중요했다. 동급 절대 강자인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와도 막상막하의 양대 강자로서 구도를 이어왔다. 하지만 7시리즈의 진정한 중요성은 BMW 브랜드를 메르세데스 벤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진정한 럭셔리 브랜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7시리즈의 중요성이 더 높았다. 수입차와 같은 고급 내구성 소비재 시장은 최상위 시장부터 활성화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BMW는 마침 새롭게 소개된 E32 7시리즈와 함께 한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BMW 역사상 최초로 V12 엔진을 탑재한 E32는 S 클래스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던 럭셔리 F 세그먼트 시장에 BMW를 본격적으로 진입시킨 최초의 모델이었다. 수입차 시장이 개방돼 있지 않았던 한국에서 BMW는 E32 7시리즈 덕분에 메르세데스 벤츠와 동등한 브랜드 위상을 가질 수 있었다. 이는 한국의 BMW 브랜드에는 아주 소중한 기회였으며 지금까지 BMW가 국내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후 선보인 E38은 7시리즈 디자인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아직도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을 정도다. 21세기 초입인 2001년 등장한 E65 모델은 크리스 뱅글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BMW 브랜드의 진취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E65 7시리즈는 통합 제어 장치인 아이드라이브를 선보이고 자동차의 전자화에 가장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기술적으로도 매우 진취적인 모델이었다. 판매량에서도 BMW코리아 전체의 3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같은 성공의 전통은 2009년 1월 국내에 소개된 BMW 최초의 코드네임 F 모델 F01 7시리즈에도 그대로 적용돼 첫해 2000대 판매를 돌파하는 대성공으로 이어진다. 모든 엔진의 터보화, 8단 자동변속기, 더블위시본 앞 서스펜션 등 기술적으로는 진취적이었던 F01은 하지만 디자인 측면에서는 다분히 보수적인 분위기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전체 판매량을 급격하게 증가시키며 브랜드 파워를 키워가는 BMW의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7시리즈는 BMW 브랜드의 위상과 진취성, 그리고 브랜드 파워의 강화 등 브랜드 전략의 선봉장으로 기함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S 클래스의 반격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는 21세기 들어서도 2008년까지 해마다 8만~9만대의 생산·판매량을 보이는 등 시장점유율에서도 단연 동급 최강이었다. 그런데 보수적인 이미지로 분위기를 전환한 F01 7시리즈가 3만~4만대 수준이었던 판매량을 6만대 수준으로 끌어올린 2009년부터 S 클래스 판매량은 5만~6만대로 급감했다. 두 모델이 판매량에서도 막상막하를 보인 것이다. 한국의 경우 현지법인 진출과 네트워크 확장에 앞섰던 7시리즈의 우세가 2003년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진출과 함께 S 클래스의 강세로 전환됐다가 세계적 흐름에 따라 2011년부터 다시 7시리즈의 우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대형 세단을 새롭게 정의했다는 평가를 받는 W222 S 클래스의 등장은 판도 를 완전히 역전시켰다. 2013년 11월 국내 출시된 S 클래스는 단 2개월 만에 이전 10개월보다 많은 판매량을 보인 데 이어 2014년에는 단숨에 4602대가 팔리며 1897대에 그친 7시리즈를 두 배 이상으로 제쳤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S클래스가 1만대를 돌파하며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 전체 판매량의 22퍼센트를 차지하는 기록적 판매량을 보였다. 이에 비해 모델 수명이 다한 F01 7시리즈는 1830대로 S 클래스의 5분의 1 이하, BMW코리아 판매량의 3.8 퍼센트에 그치는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문제가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유사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에는 박빙이었던 두 경쟁자의 판매 실적이 2014년 11만5000대(S 클래스)와 4만9000대(7시리즈), 2015년에는 10만6000대와 3만6000대로 더 벌어졌다.

 

BMW는 새로운 코드네임 G의 시대를 여는 G11 6세대 7시리즈를 지난해 10월에 선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앞서 말했듯이 매우 실망스럽다. 한국에선 법인차량 비용처리 축소로 고급 수입차 판매가 둔화됐다. 그럼에도 S 클래스는 지난 5월까지 2614대 판매로 선전했다. 반면 이제 갓 출시된 7시리즈의 판매량은 921대로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세계 시장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상황이 비슷하다. 올해 1분기 실적에서 S 클래스는 2만1000대 판매로 1만600여 대의 7시리즈보다 2배 가까이 많이 팔렸다.

 

 

 

 

드라이빙 럭셔리의 실체

코드네임 E의 시대에 비해 2008년 이후의 코드네임 F 모델들은 추구하는 방향에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코드네임 E 모델들은 대형 모델이라고 해도 승차감과 안정성을 위해 정교함과 예리함을 타협하지 않았다. 반면 코드네임 F 모델들은 승차감과 조종 성능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으려 했다. 코드네임 F의 첫 모델인 F01 7시리즈의 보수적 디자인은 이전보다 보편적인 성향으로 더 넓은 고객층에게 어필하기 위한 논리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전 모델들이 갖고 있던 BMW 특유의 정교한 조종감각이 다소 무뎌진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주행안정성이나 승차감을 유지한 채로 x드라이브나 DSC 등을 이용해 BMW고유의 조종 감각을 상당 부분 복원할 수 있었지만 한계는 있었다. 전략은 성공적이었고 BMW는 더 많은 차를 판매했지만 충성 고객으로부터는 아쉬운 말도 많이 들어야 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뉴 7시리즈가 G11로 새로운 시대인 코드네임 G를 열었다. 자연스럽게 관심은 앞으로의 BMW가 추구할 방향으로 집중됐다. 더욱 럭셔리한 이미지와 안정감 위주의 주행 특성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금 달리는 즐거움을 강화할 것인지 모두들 궁금해했다. 그 답은 ‘드라이빙 럭셔리(Driving Luxury)’라는 7시리즈의 새로운 슬로건이었다. 이 슬로건을 보자마자 나는 BMW코리아 관계자에게 ‘드라이빙(Driving)’과 ‘럭셔리(Luxury)’ 가운데 어느 쪽 글씨가 더 크고 굵은지 질문했다. 어느 쪽에 더 중심이 가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들의 대답은 “양쪽 다”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시승을 통해 확인해본 G11 7시리즈는 컴포트 모드의 감각이 매우 부드럽다. 승차감은 대단히 부드럽고 조향 감각도 민감하기보단 편안한 쪽이다. 도로 위를 비행하는 듯 노면 감각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달리는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BMW에서 이런 감각을 느낀다는 건 매우 충격적이다. 하지만 전에 없던 느낌은 아니다. 롤스로이스가 바로 이랬다. 7시리즈의 에어 서스펜션은 매우 안락한 승차감을 위해 에어 스프링의 공기압과 쇼크업소버 감쇄력을 쉴 새 없이 조절한다. 그건 마치 우아한 백조가 수면 아래서 발을 바삐 움직이는 모습과 흡사 하다. 과속방지턱을 밟는 순간에는 민첩하게 충격을 흡수하고 턱을 내려올 때는 반대로 쭉 늘어나면서 자세와 접지력을 유지하는 고차원적인 움직임도 ‘자연스럽다’는 정도의 감각으로 다가온다. 엔진도 반응이 매우 자연스러운 데 이는 터보 엔진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말하자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위한 치밀한 노력이 섀시와 엔진 모두에서 보인다.

 

그런데 스포츠 모드에선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먼저 스티어링 감각이 명료해진다. 특히 높은 코너링 속도나 타이트한 코너 등 주행상황이 긴박해질수록 감각도 살아나기 시작한다. 복합 코너에서는 거대한 차체가 놀랍도록 가볍게 느껴진다. 네 바퀴의 접지력은 한계가 대단히 높다. 그렇다고 조종 성능을 위해 승차감과 정숙성을 크게 해친 것도 아니다. 잃어버리는 것이 없는 드라이빙과 럭셔리 라이드의 고차원적인 조합이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7시리즈가 말하고자 하는 드라이빙 럭셔리의 본질을.

 

코드네임 F 모델들이 역동성과 안락함을 조화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양쪽 모두 조금씩 희생시켜야 했다면 G11 7시리즈는 공존하기 어려운 두 가지를 모두 최대한 보존하고 동시에 만족시키려 한다. 컴포트와 스포츠 모드 사이의 차이는 현격하고, 나아가 스포츠 모드에서의 안락함과 컴포트 모드에서의 높은 주행성능도 동시에 보여준다. 여기에 가장 크게 기여한 하이테크가 바로 카본코어 차체다. G11 7시리즈는 이전 모델보다 차체 무게가 최대 130킬로그램 가벼워졌다. 전체 무게는 다양한 장비가 추가되면서 무거워졌다. 하지만 차체가 가벼워진 만큼 무게중심이 낮아졌고 강성이 높아져 조종성능과 N.V.H. 성능이 올라갔다는 점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속성능과 연비가 좋아진 건 덤이다.

 

7시리즈는 또 다른 방향으로 드라이빙 럭셔리를 보여준다. 이 차는 앞자리에선 달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고 뒷좌석에선 최고의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 즉 운전석에선 차체 크기를 잊어버릴 만큼 민첩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반면 뒷좌석에선 외부 자극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한 아늑함이 느껴진다. 심지어 뒷좌석은 디자인조차 자극적이지 않고 평온하다. 승객을 위한 배려이긴 하지만 마케터들에겐 골치 아픈 숙제였을 거다. 이그제큐티브 라운지(Executive Lounge)라는 뒷좌석 콘셉트도 안락함에 비해 고객의 탄성을 자아낼 만한 요소는 오히려 약하다.

 

7시리즈는 자동차로서는 확실히 진일보한 모델이다. 기반은 그 자체로 하이테크라 할수 있는 카본코어 차체다. 여기에 7시리즈 최초의 네 바퀴 에어 서스펜션이 더해졌다. 이그제큐티브 라운지는 뒷좌석의 안락함을 책임졌다. 훨씬 다양해진 기능을 앞뒤 어디서든 수월하게 조작할 수 있게 뒷좌석 터치 컨트롤과 앞좌석 제스처 컨트롤이 도입됐고, 아이드라이브에도 터치스크린이 추가됐다. 이전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됐으니 멀리 볼 수 있는 레이저 라이트도 마련했다. 무인 주차 기능도 의미 없이 얹은 기능이 아니다. 훌쩍 커진 차체 때문에 문을 열기 어려운 좁은 주차장이나 차고에서 불편을 겪지 말라고 마련한 것이다. 무엇 하나 논리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런데 왜 팔리지 않는 걸까?

 

 

 

 

코드네임 F는 타협의 시대였다. 코드네임 G는 이전의 단점을 보완하는 시대다. G11 7시리즈는 가장 BMW답다고 평가되는 코드네임 E 시대의 브랜드 가치와 코드네임 F 시대의 전략을 적절하게 아우르고 있다. 카본코어, 무인주차, 제스처 컨트롤 등 하이테크는 충분하다. 남은 건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다.

 

 

문제는 메시지다

7시리즈는 기함이다. 그냥 좋은 차라고 해서 성공할 수는 없다. 경쟁자인 S 클래스가 성공한 데는 차도 좋지만 담겨 있는 메시지가 명료하기 때문이다. S 클래스의 메시지는 ‘미래’다. 럭셔리 세단의 미래를 대비하다 보니 자율주행 기능이 많이 들어갔고, 환경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다 보니 전구를 모두 LED로 대체했다는 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S 클래스로부터 메르세데스 벤츠의 새로운 디자인이 시작됐고, 두 개의 서브 브랜드를 거느리는 새로운 브랜드 전략과 새로운 모델 명명법이 시작됐다.

 

실제로 S 클래스는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서브 브랜드의 모델을 선보인 첫 번째 모델이며, 메르세데스 AMG 서브 브랜드를 포함해 3가지 브랜드를 모두 갖고 있는 유일한 모델이기도 하다. S 클래스는 단순한 모델 하나가 아니라 브랜드의 미래를 열었다. 바로 이것이 기함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7시리즈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타협하지 않는다’는 BMW 철학의 상징이 돼야 한다. 코드네임 F 시리즈는 회사의 성장과 시장점유율을 위해 일정 부분 타협하면서 질타의 대상이 됐다. 다행히 새로운 시대의 기함인 G11 7시리즈는 타협하지 않는 BMW의 모습으로 되돌아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진화라는 점이 다르다. BMW 본연의 달리는 즐거움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에 걸맞은 안락함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7시리즈를 통해 보여지는 코드네임 G의 시대는 코드네임 E 모델의 브랜드 가치에 코드네임 F 모델의 시장 전략이 합쳐져 완성된 셈이다.

 

지금까지의 7시리즈 커뮤니케이션에는 이런 브랜드적 가치가 별로 강조되지 않았다. 그저 잘 달리고 럭셔리한 모델처럼 보였다. 비싼 차니까 기능이 많고, BMW니까 첨단 기술이 많이 적용된 것으로 전달됐을 뿐 이 모든 걸 관통하는 메시지는 없었다. 무인주차나 제스처 컨트롤 등이 눈요기로만 보인 이유가 여기 있다. 곱씹어볼 일이다. BMW 뉴 7시리즈의 메시지는 이미 그동안의 브랜드 슬로건을 관통한다. 순수하고(Sheer) 궁극적인(Ultimate) 새 시대를 여는, 타협하지 않는 모델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