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듯 내추럴한 피부 표현이 유행한 데 이어 올해는 정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노메이크업 모델들이 런웨이를 활보했다. 말 그대로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생얼의 모델들이 나타난 것. 메이크업은 물론 헤어도 손질하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말이다. 2015년의 안티 뷰티 경향이 2016 S/S 시즌에는 손질하지 않은 머리, 민낯과 주근깨로 더 강렬하게 표현된 것이다. 며칠째 집 밖에 나가지 않은 듯 전혀 꾸미지 않은 여성의 쿨내 진동하는 무심함이 런웨이를 장악해버린 면모를 좀 더 들여다볼까. 이자벨 마랑은 모델의 얼굴에 일부러 다크서클을 연출해 피곤한 인상을 만들고, 프란체스코 스코냐밀리오와 엠마누엘 웅가로는 모델의 얼굴에 주근깨를 가득 뿌렸다. 양 리와 알렉산더 매퀸도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을 지저분하게 연출했으며, 훌리 풀턴은 자고 막 일어나 눌린 듯한 헤어스타일을 선보였다. 패션 흐름의 중심에 서서 선망의 대상이어야 할 모델을 극히 현실적이다 못해 추레한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 같은 여자도 차마 보기 불편할 정도로 극도의 내추럴함을 추구하는 것일까? 훌리 풀턴의 컬렉션을 담당한 헤어 디자이너 제임스 페시스의 말을 들어보자.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특이한 여성. 너무도 은근해 마치 실수한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이 말에서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남의 눈치 보지 않으면서 자신의 취향과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진정 쿨한 태도라는 것. 사실 이런 경향은 컬렉션에까지 영향을 미칠 만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힙스터의 등장이 이를 방증한다. 힙스터는 한마디로 제멋에 사는 사람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힙스터는 독특한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일단의 젊은이들을 일컫는다. 특별한 문화와 소비에 관심이 높고 남이 모르는 음악이나 예술, 지식 등을 가치 있게 여긴다. 주류 문화를 거부하고 독립적이며 자연 친화적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따위의 행동은 결코 멋지지 않은 일이다. 이들은 베스트셀러라면 무조건 읽고 유행이면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을 몰개성으로 여긴다. 노력하지 않는 멋, 꾸미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움을 지향한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은 저서 <라이프 트렌드 2016>에서 남과 같은 것이 오히려 불편한 시대가 되었다고 전했다. 자기만의 색깔이 없는 이들은 매력이 없고 흔한 건 가치가 떨어졌으며, 비주류에 관심을 갖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 비주류 문화 중 하나였던 타투가 보편화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타인과 차별성을 두면서도 꾸미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시대의 흐름이 뷰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메이크업 트렌드에서도 무조건 동안으로 보이는 화장은 더는 쿨하지 않다. 피부 표현도 잡티 없이 하얗고 뽀얗게만 표현하던 행태에서 벗어나 오히려 자신의 피붓결을 최대한 살리는 리얼 내추럴 메이크업이 유행한다. 얇고 가볍게 발리며 밀착력이 뛰어난 파운데이션의 등장도 그 증거다. 애굣살을 강조하거나 틴트로 입술 중앙을 물들이는 메이크업은 더 이상 세련되지 않다. 과장된 아이라인과 속눈썹 익스텐션은 지나간 시대의 고루한 룩이 되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바뀐 만큼 성형 트렌드도 달라졌다. 공장에서 찍은 듯 올록볼록한 윤곽의 강남 미녀는 환영받지 못한다. 너도나도 받는 흔한 시술로 똑같은 얼굴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너무도 흔해 성형으로 치지도 않는 상안검이나 하안검을 하지 않는 이유다. 과거 선명하고 또렷한 눈매에 대한 선망이 있었다면 이제는 시원하고 순한, 자연스러운 눈매를 선호한다. 본인 얼굴의 장점과 개성, 분위기를 살려 티 나지 않게 최소한의 시술로 단점을 자연스럽게 보완하는 것이다. 더엘클리닉 정가영 원장에 따르면 최근 안티에이징 시술은 인위적인 것을 철저히 배제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얼굴을 원한다고. 젊어 보이지만 어색하지 않고, 표정 주름은 남아 있지만 피부는 원래 타고난 듯 탄력 있고 건강한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개개인에 따라 맞춤 안티에이징 시술을 하는 것이다. 얼굴 타입에 따라 어울리는 볼륨과 탄력이 달라서 무조건적으로 주름을 메우고 얼굴을 당기면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시술하는 과정에서도 시술 효과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피부 자극이 심한 시술은 기피 대상이다. 시술 효과가 적더라도 시술 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티 나지 않는 시술을 원한다. 어느 날 갑자기 큰 시술 효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조금씩 관리하는 것이다. 재돈성형외과 서재돈 원장이 말하는 소프트 서저리(Soft Surgery)가 그 예다. 노화로 인해 눈꺼풀이 내려앉거나 눈 밑 처짐이 심한 눈가를 교정할 때도 상안검이나 하안검을 하지 않고 절개 없이 프렉사 레이저를 이용해 리프팅한다.
런웨이에서 등장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세상일에는 무심한 듯한 너드 룩과 막 자고 일어난 듯 부스스한 헤어, 수면 부족으로 짙어진 다크서클은 시대적 흐름을 대변한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려는 태도가 쿨한 시대다. 남이 뭐라든 스스로가 쿨하다고 여기면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요즘 트렌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을 바탕으로 한다면 민낯도, 뒤엉킨 머리도 철저히 계산된 것처럼 무심한 듯 시크해 보일 수 있다. 내적인 자존감만 확실하다면 그 무엇도 문제될 게 없다. 무조건적으로 유행을 좇는 것은 구시대적인 몰취미다. 당신 안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을 찾자. 비록 그것이 일반적인 미의 범주에 들지 않더라도 자기만의 취향이라면 충분히 쿨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