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거라지 미술관 재개관전에 전시된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 Louise Bourgeois, Cell XVIII (Portrait), 2000, Steel, Fabric, Wood, Glass, Private Collection, New York, Photo: Egor Slizyak Ⓒ The Easton Foundation / RAO, Moscow, Image Courtesy of the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지난 6월 러시아의 유명 컬렉터 다샤 주코바의 거라지 뮤지엄 오브 컨템퍼러리 아트가 모스크바 중심부에 위치한 고르키 공원에 재개관했다. 이곳은 다샤 주코바가 2008년에 설립한, 동시대 현대미술만을 선보이는 러시아 최초의 개인 미술관으로, 당시 27살의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관을 오픈해 현대미술계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의 페기 구겐하임으로도 언급되는 그녀는 컨템퍼러리 아트에 익숙지 않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세계적인 수준의 동시대 현대미술을 볼 기회를 제공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자국의 아티스트들을 세계 미술계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 그녀의 등장은 당시 러시아 미술계뿐 아니라 동시대 현대미술계의 판도를 바꿨고, 이후 그녀는 <아트뉴스>가 선정한 컬렉터 순위 20위 안에 오르는 등 현대미술계의 가장 핫한 컬렉터로 떠올랐다. 

 

 

2 거라지 미술관 재개관 오프닝에 참석한 다샤 주코바와 로만 아브라모비치. Image Courtesy of the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3 거라지 미술관 재개관전. Louise Bourgeois, Structures of Existence: The Cells, Photo: Egor Slizyak, Ⓒ The Easton Foundation / RAO, Moscow, Image Courtesy of the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1981년생의 젊은 컬렉터 주코바를 현대미술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그녀는 컨템퍼러리 아트의 불모지인 러시아에 세계적 규모의 미술관을 설립했다. 누구보다 현대미술을 아끼고 지지하며 지원하는 그녀의 화려한 배경 역시 이슈가 될 만했다. 러시아 석유업계 거물인 아버지와 분자생물학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코바는 부모님의 이혼 후, 어머니를 따라 10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19살까지 LA에서 자랐다. 샌타바버라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22살에 대체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버지가 사는 런던으로 이주했다. 이즈음 현대미술을 비롯한 컨템퍼러리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동시대 작가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전시를 보러 다녔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진지한 컬렉터는 아니었다. 

 

4 거라지 미술관의 전신은 ‘브레메나 고다’ 레스토랑으로, 1968년 오픈 당시 장식된 모자이크 벽화를 복원해 벽을 장식했다. Image Courtesy of the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2005년, 주코바는 러시아 방문 때, 지인이 초대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15살 연상인 지금의 남편 로만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vich)를 만나게 된다. 그는 러시아 석유업계 신흥 재벌로, 2008년 <포브스>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2번째, 세계에서 15번째 가는 부자이자, 런던에 거주하는 2번째 부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FC의 구단주이자 러시아의 대표 컬렉터로 유명한 인물. 그와의 만남 이후 주코바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됐다(당시 기혼이었던 아브라모비치와 주코바의 만남은 세간의 큰 이슈가 됐다). 2006년부터 이 커플은 아트페어, 비엔날레, 옥션, 미술관을 함께 다니며 예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공유했고, 런던 서펀타인 갤러리에서 매년 열리는 여름 파티를 주코바가 적극 후원하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처음 주코바에 대한 미술계의 반응은 사뭇 냉소적이었다. 그 당시 러시아 컬렉터 사이에서 유행한 현상, 억만장자의 여자친구들이 사교 활동의 연장으로 미술에 잠깐 흥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 그러나 그녀가 2008년 모스크바에 거라지 센터를 오픈하고, 2009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LA 라크마 미술관의 보드 멤버가 되면서 이런 시선은 사라졌다. 이들은 현대미술계 최고의 셀레브리티 컬렉터 커플로, 그들이 아트페어에 나타나면 브래드 피트나 제프 쿤스가 등장한 것보다 파급 효과가 클 정도였다. 결국 아브라모비치는 2007년 슬하에 자녀 5명을 둔 두 번째 부인과 엄청난 위자료를 감수하며 이혼했고, 주코바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이후 커플의 공식적인 결혼 발표는 없었으나 둘은 새롭게 가정을 꾸려 자녀 2명을 낳고 런던을 기반으로 모스크바, LA를 오가며 살고 있다. 

 

5 2012년 거라지 미술관의 임시 공간에서 전시된 존 발데사리의 작품. John Baldessari, 1+1=1, 2012, Wall Installation at the Garage, Image Courtesy of the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6 2009년 거라지 미술관을 찾은 안토니 곰리의 조각 설치 작품. Antony Gormley, Domain Field, 2003, The finished Installation Including a Collection of 287 Sculptures, Image Courtesy of the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7 거라지 미술관에서 매년 개최되는 <ART EXPERIMENT>전에 소개된 케이틀린 브라운과 웨인 가렛의 설치 작품. Caitlind r.c. Brown & Wayne Garrett, Cloud, 2013, Image Courtesy of the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커플의 화려한 러브 스토리 못지않게 그들의 개인 컬렉션은 화려함 그 자체다. 그들은 주로 영국의 전후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세계적인 컨템퍼러리 작가의 작품에 주목한다. 미국 팝아트 작품보다는 인간 내면의 감정이 격렬하게 나타난 표현주의적 작품을 수집한다. 이를 반영하듯 아브라모비치는 2008년 소더비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1976년 작품 ‘Triptych’을 8630만 달러(약 1020억원), 크리스티에서 루치안 프로이트의 1995년 작 ‘Benefits Supervisor Sleeping’을 3360만 달러(약 396억원)에 구입하면서 당시 두 작가의 경매가를 경신했다. 최근 미술 시장의 큰손들이 중국 컬렉터들이라면, 당시에는 러시아 컬렉터들의 바잉 파워가 경매 시장을 휩쓸을 때였다. 이 외에도 게르하르트 리히터, 알베르토 자코메티, 존 커린, 리처드 프린스, 프랑크 아우어바흐, 리처드 애버던 등 주요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작품 대부분은 그들이 머무는 런던의 저택 세 곳에 소장되어 있다. 훗날 커플의 개인 컬렉션은 그들이 설립한 미술관으로 가겠지만, 현재는 거라지와 그들의 개인 컬렉션을 명확하게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8 거라지 미술관 재개관전에 전시된 태국 출신 작가 리크릿 티라바니자의 설치 작품. Rirkrit Tiravanija, Tomorrow is the Question, 2005, Installation View of Infinity Theory at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컨템퍼러리 아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 주코바는 러시아를 자주 방문하면서 러시아의 젊은 세대가 해외 문화와 동시대 문화에 관심이 많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화나 아트에 대한 정보를 얻지만, 러시아 내에 그들의 관심을 직접적으로 해소해줄 공간이 없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녀는 러시아의 문화와 도시 발전에 관심을 갖고 곧바로 문화공간 설립에 착수했고, 마침내 러시아 개방 이후 컨템퍼러리 아트를 연구하는 거라지 미술관을 오픈한다. 2008년 설립 당시 미술관은 모스크바의 바크메텝스키 버스 거라지의 명칭을 차용해 ‘거라지 센터 포 컨템퍼러리 컬처’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약 8454m² 규모의 이 창고 건물은 러시아 건축가 콘스탄틴 멜니코프가 디자인한 러시아 구성주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2007년 주코바가 정부로부터 임대받아 약 1500만 달러(약 177억원) 투자해 전시장으로 개조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컨템퍼러리 아티스트이자 세계적인 설치 작가 일리야와 에밀리야 카바코프 부부의 회고전, 퍼포먼스 아트의 대모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회고전 등 거라지의 전시는 절대주의 운동의 창시자이자 러시아를 대표하는 카지미르 말레비치를 들어본 적도 없고, 컨템퍼러리 아트를 피카소의 작품으로 생각할 정도로 동시대 현대미술에 익숙지 않은 러시아 대중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2012년 버스 거라지의 임대 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거라지 미술관은 고르키 공원으로 이전과 함께 또 다른 시작을 맞는다. 

 

9 거라지에서 진행된 게오르기 키제발테르의 회고전. George Kiesewalter, Insider, 2015, Image Courtesy of the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10 레이디 가가를 모티프로 한 프란체스코 베촐리의 작품. Francesco Vezzoli, The Portrait of Lady Gaga Featuring Petit-point Embroidery, Image Courtesy of the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11 2015년 고르키 공원에 재개관한 거라지 미술관. 공원의 나무를 이용, 구사마 야요이가 특별한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Yayoi Kusama, Infinity Theory, 2015, Image Courtesy of the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미술관의 새 터전은 고르키 공원에 위치한 사계절이라는 의미의 ‘브레메나 고다’라는 레스토랑 건물로,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이곳의 레노베이션 디자인을 맡았다. 브레메나 고다는 1968년 오픈한 1200석 규모의 레스토랑으로, 1991년 옛 소련 해체 후 폐허로 남았다가 주코바가 2013년에 구입, 2700만 달러(약 318억원)를 투자해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켰다. 2015년 6월, 거라지 미술관이 역사적 재개관을 알렸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미국을 대표하는 억만장자 컬렉터 엘리 브로드 부부, 카타르 미술관 설립자인 카타르 공주 셰이크 알-마야사 빈트 하마드 빈 카리파 알타니, 프랑스 컬렉터이자 크리스티 오너인 프랑수아 피노, 패션 디자이너이자 컬렉터인 미우치아 프라다, 제프 쿤스, 래리 가고시안 등을 비롯한 세계적인 컬렉터, 큐레이터, 딜러, 작가들이 총출동했다. 건축가인 렘 콜하스 역시 함께였다. 렘 콜하스는 모스크바의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며, 옛 소련의 흔적인 모자이크 벽화, 장식 타일, 벽돌 등을 최대한 포괄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미래 지향적인 미술관을 탄생시켰다. 파손된 모자이크 벽화는 전문가에게 의뢰해 복원했고, 건물의 원래 구조를 살려 미술관 외부를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의 플라스틱판으로 감싸 낮에는 빛을 차단하고 밤에는 미술관 내부의 조명이 공원을 밝힘으로써, 미술관 내부와 공원의 풍경이 연결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로써 11m가 넘는 단순한 형태의 미술관은 공원과 조화를 이루며 고르키 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12 세계적인 퍼포먼스 작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개인전으로, 뉴욕 모마에서 열린 그녀의 회고전을 거라지에서 재구성해 전시했다. Marina Abramović, The Artist is Present, 2011, Installation View of Infinity Theory at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5574m² 규모의 내부 공간은 5개의 전시 공간을 비롯해 카페, 서점, 오디토리움, 어린이 교육센터, 도서관, 루프톱 테라스, 오피스 등으로 이뤄졌다. 새로운 거라지에 대한 러시아 대중의 반응은 2008년 거라지 오픈 때보다 폭발적이다. 구세대에게는 낯선 미래 지향적 공간이지만 러시아 젊은 세대에게는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으며, 다양한 퍼블릭 프로그램을 통해 컨템퍼러리 아트를 싫어하거나 모르는 사람도 관심을 가지면서 연간 30만 명이 미술관을 찾고 있다. 물론 거라지가 주코바의 개인 소유물이고 과시를 위한 공간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 자신을 두고 소문과 가십이 끊이지 않는 걸 잘 아는 그녀로서는 이런 유의 비난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거라지는 대중과 예술을 공유하고, 문화적 경험에 목마른 젊은이에게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자 모스크바의 아트신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문화 기관이라는 점을 그녀는 강조한다. 뉴욕의 구겐하임, 휘트니 미술관, 프릭 컬렉션도 모두 개인 미술관이었으나 지금은 공공 미술관이나 다름없고 특히 휘트니 미술관은 공공 미술관이 되는 데 25년이나 걸렸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미술관 이름으로 주코바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거라지로 명명한 것에서도 그녀의 진정성과 진솔한 소망이 읽히는 건 사실이다. 

 

 

13 2015년 모스크바 고르키 공원에 재개관한 거라지 미술관. 네델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가 디자인을 맡았다. Image Courtesy of the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14 거라지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의 개인전으로, 모스크바 최초로 개최됐다. Image Courtesy of the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앞으로도 주코바는 동시대 현대미술계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아트에 대한 열정을 쏟을 예정이다. 이미 아트 매거진 <더 거라지>를 발간했고, 온라인 옥션 사이트를 래리 가고시안과 공동 설립했다. 또 거라지 미술관 발전의 다음 단계로서, 미술관 바로 뒤쪽에 위치한 헥사곤 파빌리온을 레노베이션해 거라지와 연결할 예정이다. 6개의 윙 구조로 된 이 건물은 1920년대 농업, 산업용 기계를 전시하던 곳으로, 레노베이션 후 예술 작품뿐 아니라 전 시대의 러시아 역사와 농업, 산업 엑스포를 재현하듯 그 시대의 자동차와 농업용·산업용 기계를 전시할 예정이라고. 이 커플의 행보는 세상을 놀라게 할 정도다. 그들은 또 하나의 대형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러시아 북서부 세인트피터즈버그에 위치한 뉴홀랜드 섬을 구입해 아트 아일랜드로 개발한다고. 섬은 1720년에 해군 기지가 있었던 곳으로 몇 년 전 러시아의 한 아트 컬렉터가 이 섬 개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아브라모비치의 지원과 자신의 회사에서 4000억 달러(약 472조원)를 지원함으로써 구체화에 성큼 다가섰다. 그녀는 이곳에도 개인 컬렉션을 전시할 미술관을 세울 예정인데, 이곳이 뉴욕 모마, 파리 퐁피두, 코펜하겐의 루이지애나 미술관, LA의 라크마를 잇는 곳이 될 거라며 프로젝트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자신만만한 커플의 행보에 세계 현대미술계가 다시 한번 주목하고 있다.

 

- 이 글을 쓴 채민진은 Perspectrum Art Advisory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