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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전설의 91페이지

가장 조용한 퇴장을 마친 노화백은 지금쯤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지금의 이 소란을 부질없다는 듯 쓸쓸히 웃고 있을지 모른다.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그가 떠났고, 조용히 보내기엔 아쉬운 그 길이다.

2015.12.17



천경자, 여인, 1974, 종이에 잉크, 20.5×15.2cm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거장이 먼 타지에서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천경자, 그의 나이 91세였다. 그런데 거친 파도와도 같았던 그의 삶은 조용한 이별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떠난 거장을 애도할 시간도 없이, 사망에 관한 ‘미스터리’에 관심은 집중됐다. 그의 생사 여부에 관한 논란은 사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미 사망한 것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대한민국예술원에서는 뉴욕에서 천경자 화백을 모시고 있는 장녀 이혜선 씨에게 생사를 입증하는 의료 증빙 서류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혜선 씨는 이에 명예훼손이라고 반발하며 예술원에 회원 탈퇴서를 제출했다).

지난 8월, 혜선 씨가 어머니의 유골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 수장고를 돌고 갔다는 소식과 함께 천경자 화백의 생사 여부에 관한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하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혜선 씨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장남 이남훈, 차녀 김정희, 사위 문범강, 며느리 서재란)이 밝힌 또 다른 진실. 자신들은 혜선 씨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없으며, 10월 19일 한국의 모 은행으로부터 유족들에게 천경자 화백의 은행 계좌 해지 동의를 요구하는 전화를 받고서야 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알게 됐다는 다소 의아한 이야기였다. 어머니의 유골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그들의 항변과 차차 알려주겠다는 장녀의 대응. 유족들 간의 깊은 골과 다시금 불거진 ‘미인도’ 위작 시비는 애도의 물결 대신 또 다른 ‘미스터리’만 낳았다. 이러한 논란 틈에 천경자 화백의 예술과 인생은 정작 쏙 빠져버렸다. 

 

 


2 천경자, 테레사 수녀, 1977, 종이에 채색, 51×43cm  3 천경자, 백야, 1966, 종이에 채색, 134×94cm 4 천경자, 스카프를 쓴 엔자, 연도 미상

 

 


눈썹처럼 살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경자. 그의 본명인 ‘옥자’로 살았다면 혹여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떠오른 까닭은 결코 녹록지 않았던 그의 삶 때문이다. 완강한 아버지를 거슬러 그 옛날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을 만큼 그는 고집스러웠고 그만큼 그림을 사랑했다. 넉넉한 살림살이에서 비롯된 유학길은 결코 아니었다. 그 시절의 가난은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을 업보 같은 것이었다.  

천경자, 그는 이른바 ‘센 여자’로 통했다. 천하를 호령할 듯 범접할 수 없는 오라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바다. 강렬한 눈썹도 한몫했다. 듬성듬성한 모계 눈썹을 닮은 덕에 그는 늘 화장용 크레용으로 하루의 과제처럼 눈썹을 그렸다고 한다. 그의 에세이 <꽃과 영혼의 화가 천경자>에는 눈썹에 관한 열등감이 묘사된다. ‘내가 정작 눈썹에 열등감을 느끼게 된 날이 다가온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합이 된 날부터였다. 동이 터올 무렵이면 나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눈썹을 그려야 했고, 그 때문에 눈보라치는 겨울에도 얼음을 깨고 새벽같이 세수를 했다.’ 어머니를 따라 궁합을 봤을 때의 일화도 있다.

“눈썹이 적으니 형제 인연이 없고, 고독하리라. 손이 어여쁘니 기생, 첩 팔자를 못 면한다.”

기생, 첩 팔자를 지녔다는 그의 손은 평생 물감을 으깨고 주무른 손이 됐지만, 고독하리라는 팔자는 우연처럼 맞아떨어졌다. 고독이 업보이자 팔자라 해도 그에겐 그 그림자가 더욱 짙게 드리웠다. 도쿄에서 귀국하는 길, 교통편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는 그에게 한 줄기 빛을 선사한 첫 번째 남편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고, 신문사 기자였던 두 번째 남편은 유부남이었다. 어이없지만, 아이를 임신한 후 알게 된 사실이었다. 물론 그 끝도 행복하진 못했다. 두 번의 결혼 실패와 동생의 죽음. 그가 매달릴 곳은 목숨과도 같은 그림뿐이었다.

1991년에 불거진 ‘미인도’ 위작 사건은 그를 나락으로 내몰았고, 급기야 절필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상처뿐인 땅을 떠나듯 돌연 큰딸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2003년 뇌출혈 이후 그 어떤 소식조차 들을 수 없었고, 10여 년 만에 소식을 전했다. 그것도 떠난 후 두 달이 넘은, 늦은 부음 소식과 함께 말이다. 화려하지만 지난했던 천경자의 생은  자신의 눈썹처럼 그렇게 떠나는 날조차도 고독했다. 마치 그의 그림처럼 말이다.

 

 


5 천경자, 그라나다 두 자매, 1993, 종이에 채색, 46×38cm 6 천경자, 팬지, 1973, 종이에 채색, 33×29cm 7 천경자, 아피아시 호텔에서, 종이에 사인펜, 1969, 35×27cm

 

 

 

천경자의 작품은 오를까? 
그는 떠났다. 속물스럽지만 누군가에겐 작가의 사후 (어쩌면) 요동칠 작품가에 관심이 쏠리기도 할 터이다. 한데 K옥션 측의 답은 의외로 담담했다. “돌아가셨다고 작품가가 큰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물론 어떤 상황에 돌아가셨느냐에 따라, 유족들 태도에 따라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천경자 화백의 경우 절필 선언 후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니 그 뒤로 작업을 하긴 어려웠을 거다. 새로운 작품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 때문에 작가의 별세에 따른 가격 변동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K옥션 손이천 차장은 말한다. 가격 변동 추이는 없지만, 지난 7월 열린 K옥션 경매에서 천경자 화백의 ‘막은 내리고’가 8억6000만원에 낙찰돼 이슈를 낳았다(부가세 별도로 구매 수수료 15%가 적용된 실제 판매가는 약 10억원이다). 

 

 


8 천경자, 황혼의 통곡, 1995, 종이에 채색, 96×129cm


 


9 천경자, 생태, 1951, 종이에 채색, 51.5×87cm 10 천경자, 초원 II, 1978, 종이에 채색, 105.5x130cm 11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77, 종이에 채색, 43.5×36cm

 

 

 

화려하고 고독한 자화상    
격랑 같은 그의 삶 뒤로 남은 그림들. 그의 그림 속에는 공통적으로 꽃과 여인들이 등장한다. 화려한 꽃무더기에 둘러싸여 있는 여인들. 그 여인들은 하나같이 슬픈 모습이다. 화려한 색채 뒤로 드리운 짙은 슬픔과 고독. 그의 화면은 이렇듯 화려함과 슬픔이 공존한다. 화려한 색채가 더욱 풍부해질수록 그 슬픔의 농도는 더욱 짙어진다. 그의 예술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도 바로 색채다. “나는 한 물감의 색채를 그냥 그대로 쓰지 않아요. 반드시 다른 것과 섞어 써요. 그래서 무언가 가라앉는 느낌이 들도록.” 그 때문일까. 그의 색채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묘한 슬픔이 배어 있다. 무언가 가라앉은 것처럼. “내 온몸 구석구석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여인의 한이 서려 있나 봐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아요.” 그의 그림 속 여인들은 그의 분신이기도 하다. 작품 제목이기도 한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실제 작가의 22세 때 자화상이다. 

자화상의 머리엔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 꽃과 여인에 이어 뱀 역시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작은 단초다. 그의 이름 석 자를 알린 데뷔작을 꼽자면 ‘생태’다. 1952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열린 개인전에 출품된 이 작품은 뱀 35마리가 화폭을 가득 채웠다. 여자가 뱀을 그렸다는 사실은 세간의 논란이 됐고 개인전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후로도 그의 작품엔 종종 뱀이 등장한다. 그에게 뱀은 징그러움의 대상이 아닌, 구렁텅이와 같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저항이자 생명력이자 구원의 상징이었다. 화려하지만 슬픈 그의 그림 속 여인들. 그들에게선 짙은 한의 정서가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슬프지만 달콤한, 우리 시대 여인들의 애달픈 인생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그의 화면은 자화상이지만 또한 자화상인 것만은 아니다. 

화려했지만 고독한, 그리하여 더욱 그립고 애잔한 그의 자화상. 천생 화가였고, 뛰어난 글쟁이였던 천경자는 그림처럼 고독하게 떠났다. 지금쯤 그는 ‘내 슬픈 전설의 91페이지’를 마무리하며 즐기던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을지 모르겠다. 마치 그의 그림처럼 말이다. 

 

 


12 천경자, 고(孤), 1974, 종이에 채색, 38.5×25.3cm

 

 

 

 

천경자를 만날 수 있는 전시
천경자는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자신의 작품 93점을 기증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그의 작품 세계와 그 기증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천경자 상설 전시가 열리는데,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작품 93점 중 최근 몇 년간 미공개된 30여 점을 전시한다.

서울미술관에서는 <美人 미인: 아름다운 사람>전이 열린다. 김기창, 피카소, 샤갈 등 동서고금의 아름다운 여인상이 모인 가운데,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 전시장 한 면을 채운다. ‘고(孤)’ ‘청혼’ ‘테레사 수녀’ 등이 그것. 특히 ‘외로울 고(孤)’라는 한자의 의미와 같이 외로움과 고독함에 싸인 한 여인의 무덤덤한 침묵을 담아낸 ‘고(孤)’는 고독함을 잊기 위해 애써 웃음 지었던 작가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전시는 내년 3월 20일까지 열린다.

 

 


13 천경자, 꽃무리 속의 여인, 종이에 채색 14 천경자, 청혼, 1989, 종이에 채색, 40×3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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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천경자,전시,서울시립미술관,자화상,작품,美人,미인,아름다운 사람,네이버,NEIGHBOR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NEIGHBOR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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