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 안에 두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 같은 오브제와 책이 전시되어 있는 숍의 모습. 2, 3, 4 매장에 식물과 어우러진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매장 초입에는 꽃으로 치장된 사자가 손님을 맞고, 새장 속 작은 새, 다양한 조명이 매장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가게 근처에 다다르면 라벤더, 버베인, 로즈메리 같은 싱그러운 허 브 향이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그 향기는 초록과 보라 등 다채로운 컬러를 떠올리게 하며 그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 또한 느릿하 게 혹은 잠시 멈추도록 한다. 사람들은 다비드가 새롭게 연 ‘나쁜 씨 앗(Les Mauvaise Graines)’ 덕분에 동네 분위기가 한결 여유로워 졌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비록 나쁜 씨앗이라도 누군가의 손길 을 거치면 그 나름의 개성을 가진 식물로 자라난다는 뜻을 가진 그 의 가게 덕에 그 동네도 또 다른 근사한 얼굴을 얻은 셈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록 음악을 사랑하는 다비드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록 뮤지션의 이름이 적힌 화분이 눈에 띈다. 그 외에 키가 작고 큰 식물, 나비를 이용해 만든 오브제, 집 안을 향기롭게 하는 향초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게 안을 둘러보는 짧은 시간에도 사람 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치유와 위안을 받는다. 어떤 이는 여기의 평 온한 기운에 취해 잠시 잊고 지낸 사랑하는 이를 위한 선물을 고르 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을 위한 작은 호사로 꽃 한 다발과 화 분을 산다. 조경가 혹은 플로리스트라는 타이틀 대신 식물 전문가 를 말하는 ‘플랜티스트’라는 직업을 창조해낸 다비드는 과거 유명 패 션 브랜드 아녜스 베(Agnés B) 아트 디렉터를 비롯하여 패션계에서 10년 이상 디자이너로 활약했다. 불혹의 나이를 넘은 어느 날 그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했고, 그로부터 3년 후 성공이라는 이름의 전차 에 올라섰다. 

다비드가 디자인한 첫 대형 프로젝트는 과거 만국박람회장으로 이 용된 ‘그랑팔레’에서 펼쳐진 디올(Dior)과의 컬레버레이션이다. 그 곳에서 다비드의 무대를 지켜본 메르시의 창업자 코헨 여사는 그에 게 메르시를 변신시켜줄 것을 제안했다. 코헨이 다비드에게 주문한 것은 ‘메르시를 찾는 이들이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감탄사를 내뱉게 해달라’는 것. 다비드는 그녀의 요구대로 메르시를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신시켰고, 그 이벤트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당초 계획 보다 한 달이나 연장되었다. 이후 생투앙 벼룩시장에 있는 세계적인 홈 인테리어 아비타의 빈티지 매장 아비타 1694의 정원 또한 멋지 게 꾸며 그는 어느새 유명 인사가 되었다. 물론 다비드가 식물의 생 태와 환경, 도시 계획에서 정원의 역할에 대해 전문 지식을 얻기까 지 많은 어려움이 따랐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벗 삼아 온 시간 과 경험은 그에게 자양분이 되었다. 특히 작은 텃밭에서 많은 시간 을 함께 보낸 할아버지와의 기억은 그에게 어느 순간보다 특별하게 기억된다. 

5 다양한 조명이 매장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6,7 언제나 그렇듯 싱그럽고 아름다운 꽃들은 가게를 지나는 모든 이를 매혹시킨다. 8 정원과 식물에 대한 애정이 다비드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었다. 

“저 자신의 작은 재능을 통해 파리 사람들이 삭막한 도시의 우울함 을 잊는 모습을 보고 느꼈습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 주변 사람에게 도 치유의 역할을 해내는 것을 보고 이 일에 대한 자부심과 즐거움 이 커졌습니다.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현 실화되었고, 제 뜻에 동참하는 파트너들의 도움으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죠.” 

다비드의 집은 몽마르트르 언덕 부근에 있다. 그의 테라스에서 올려 다보면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사크레쾨르 성당이 보이고, 여기에 서 마주하는 몽마르트르의 석양은 일상의 피로를 사라지게 하는 마 법과도 같다. 닭이 알을 품고 꽃과 식물 수백여 종이 조화를 이룬 테라스, 어릴 적 <톰 소여의 모험>과 같은 만화영화를 보면서 만들었다 는 통나무집이 한데 어우러진 그의 공간은 여러 매체의 촬영 장소로 도 쓰인다. “제가 꿈꿔온 가드닝을 통해 스스로 행복을 얻고 친구들 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적어도 밤을 새우며 고단하게 살았던 지난 세월보다 행복하고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아트 디렉터 출신답게 그가 디자인한 공간은 파리에서 가장 핫하기 로 손꼽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얼마 전 생존한 아티스트들의 작품만 전시하는 팔레 드 도쿄의 레스토랑, 무슈 블뢰(Monsieur Bleu)를 비 롯하여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헤드쿼터를 디자인한 ‘스튜디오 아 키텍처’와의 협업 경험을 되살려 진행 중인 브뤼셀의 새 부티크 호텔 은 이제 완공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2017년에 오픈 예 정인 메르시 런던의 디자인에도 다비드의 감각이 더해진다. 도시의 우울함에 활기를 불어넣는 마법 같은 솜씨는 몽마르트르를 넘어 파 리와 유럽,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그의 디자인에는 사람을 귀하게 대하는 태도와 따스함이 배어 있다. “파리 뒷골목에서 하릴없이 어슬 렁거리는 무직 청년들에게 정원을 가꾸게 하고 이들에게 무언가 해 야 할 책임이나 일거리를 제공해 식물에 대한 연대와 책임감을 키워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쁜 씨앗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에 게 작은 희망을 심어주고 자신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부여 해주면 조금씩 변하더군요.” 인터뷰를 마칠 즈음 이름을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게 된다는 김춘수의 시 한 소절이 머릿속을 스 친다.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식물을 넘어 결국 사람이었던 것이다. 

Photo Les Mauvaise Grai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