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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듯한 관능과 유머

날씬함이 아름다움의 잣대라면 그의 작품은 아름답지 않다. 뚱뚱하다 못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사람들. 심지어 그의 작품에서는 동물도, 나무도 뚱뚱하다. 비정상적인 형태감과 화려한 색채. 라틴 미술의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의 6년 만의 전시다.

2015.08.04


해변 The Beach, 2003, Oil on Canvas, 118×155cm

 

 

불룩불룩 튀어나온 허리의 살과 살로 충실히 다져진 거대한 허벅지의 발레리나. 시선을 아래로 내려 발을 보면 끔찍하다 못해 웃음이 난다. ‘저 작은 발로 몸을 지탱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깜찍하다 못해 끔찍한 토슈즈의 발레리나. 이보다 더 풍만한 발레리나는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확신마저 든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발레리나’다. 

 

그의 작품 속 여자는 죄다 뚱뚱하다. 뚱뚱한 여자를 지극히도 사랑했든가, 아니면 그 반대인 게 분명하다 싶을 만큼. 그렇다고 비단 여자에 국한된 건 아니다. 남자도, 하물며 동물도 그의 그림에서는 정상적인 날씬함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규정하는, 몸의 이상향과는 지극히 다른 모습이다. 그의 작품을 논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점은 바로 이 뚱뚱함에 관한 것이다. 도대체 그는 왜 뚱뚱함에 매료된 걸까.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나는 뚱뚱한 사람을 그리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 뚱뚱한 사람인데, 작가는 뚱뚱한 사람을 그리지 않았단다. 이 무슨 궤변인가. 그의 해명을 빌리자면, 그의 그림 속 풍만한 형태는 르네상스 고전 양식의 전통과 맥이 닿아 있다. 

 

1 거리 The Street, 2000, Oil on Canvas, 204×177cm 2 파란 커피 주전자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Blue Coffee Pot, 2002, Oil on Canvas, 122.5×102.5cm 3 Fernando Botero Portrait. All Works Copyright of Fernando Botero

 

그는 스무 살 무렵 고향인 콜롬비아를 떠나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머물며 르네상스 거장의 작품에 매료되었고, 그들의 풍만한 신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과거의 미술을 재해석하거나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데에 관심이 많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12세의 모나리자’만 봐도 그렇다. 신비한 아름다움의 대명사 모나리자의 12세 모습이 저렇게 터질 듯한 풍선처럼 뚱뚱하다니. 물론 귀엽긴 하다. 절로 웃음이 번질 만큼. 이 작품은 과장된 인체 비례를 통해 제도화된 규범과 기존의 미의식을 유쾌하게 풍자했다는 평가와 함께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되었고, 그의 인기 역시 치솟았다. 고전에 대한 재해석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루벤스, 얀 반 에이크, 디에고 벨라스케스 등 그는 거장들의 작품을 차용해 자신만의 형태미로 재해석했고, 대중적인 인기와 국제적인 명성을 동시에 얻었다. 자, 다시 그의 뚱뚱함으로 돌아가보자. 터질 듯한 부피감과 변형된 형태. 부풀려진 인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든, 제도와 규범에 대한 비틀린 풍자든, 분명한 것은 이상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이 때문일까. 그의 작품은 비현실적인 신비함이 함께 따라온다. 마치 저 너머 보테로만의 종족이 사는 세계로 초대받은 느낌이랄까. 그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현실의 무거운 빗장을 풀고 잠시 웃게 되는 것이다. 

 

 

 

4,5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따라서 After Piero Della Francesca, 1998, Oil on Canvas, 204×177cm 발레리나 Ballerina, 2001, Oil on Canvas, 164×116cm

 

‘지역’ ‘출신’을 따지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일인 줄 알지만, 그에게는 의미가 있다. 보테로, 그는 라틴 아메리카, 그중에서도 콜롬비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에서 ‘라틴’은 거대한 뿌리와도 같다. 실제로 그는 열아홉 살까지 고향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으며, 라틴 아메리카는 그에게 향수이자 근원이라고 고백한다. 그의 그림 속에는 바로크 양식의 성당, 작은 교회, 우스꽝스러운 성직자 등이 등장한다. ‘투우 시리즈’는 또 어떤가. 라틴 국가에서 투우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하나의 문화이며 삶의 일부분이다. 실제로 보테로의 ‘투우 시리즈’는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그림 학교가 아닌, 투우 학교를 다녔다. 삶과 죽음, 예술성과 폭력성이 공존하는 투우의 양면성을 담아낸 ‘투우 시리즈’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이자 라틴의 애달픈 현실이다. 척박한 라틴의 현실과 달리 보테로의 화면은 더없이 밝고 화려하며, 익살과 유머가 넘친다. 하지만 표정 없는 얼굴이 주는 기묘한 슬픔에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최근 작 ‘서커스 시리즈’에서도 그만의 화려한 색채와 풍만한 형태, 그리고 정감 있는 화면은 계속 이어진다. 그 형태감도 물론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초록과 빨강에 마음을 둘 필요가 있다. 콜롬비아의 상징인 초록과 빨강. 보테로는 민족의 색채인 그것을 통해 조국에 대한 향수와 현실을 소리 없이 드러낸다. 생생한 라틴의 풍경과 삶. 보테로에게 그것은 자신을 지탱하는 뿌리이자, 어쩌면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10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페르난도 보테로 Fernando Botero> 전. 이번 전시에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된 ‘정물 시리즈’와 ‘고전의 해석’, 1980년대 투우, 2000년 서커스 시리즈까지, 그의 회화 작품 총 90점을 만날 수 있다. 부풀려진 인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특유의 유머 감각과 남미의 정서를 담아낸 페르난도 보테로. 그의 작품 앞에서는 근엄함을 잠시 벗고 웃을 준비가 필요하다. 미술은 때론 무겁지 않을 필요도 있다. 그렇다고 그의 미술을 가볍다고 말할 수 있는 이, 누구일까. 일요일도 없이 하루 8시간 이상, 여든 중반의 그는 여전히 붓과 씨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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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페르난도 보테로,발레리나,르네상스 고전 양식,콜롬비아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NEIGHBOR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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