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엔 수많은 여학교가 있다. 그 안에는 귀신 들리고 살해당하고 실종되는 수많은 여학생이 있다. 왜 모두 여학교일까. 남학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만들어지는 호러 영화, 특히 아시아 호러 영화 배경의 대부분이 여학교다. 그건 남학교가 무대가 되면 장르가 바뀌기 때문이다. 개별 남학생은 희생자가 될 수 있고 그런 학생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우린 남학생 집단을 희생자나 피해자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다르다. 그들은 심지어 가해자일 때에도 상대적인 약자이다. 남학생이 주인공이면 영화는 액션이 되지만 여학생이 주인공이면 영화는 호러가 된다. 

이 외에 여학교에서만 나타나는 또 다른 경향이 있다. 여학교와 소녀는 남학교와 소년보다 더 쉽게 허구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이는 이들을 상상하는 두뇌가 남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여학교 이야기는 대체로 경험이 있는 여성 작가가 집필했고, 여성 독자가 읽었다. 그런 감상이 반복되고 이들이 묘사한 세계가 점점 과거로 밀려나고 현실에서 벗어나자, 여학교와 소녀들은 허구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자리를 마련한다. 남학교는 그런 허구화의 작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세계는 늘 현실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여자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 호러 영화 두 편이 개봉했다. 하나는 일본 게임 원작인 <령: 저주받은 사진>(이하 <령>)이고, 다른 하나는 <천하장사 마돈나>와 <페스티벌>의 감독 이해영의 신작인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하 <경성학교>)이다. 

두 영화 모두 여자 기숙학교를 다루지만,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령>은 <링> 이후 귀신이 나오는 일본 호러 영화 장르에 속박된 창백하고 기운 없는 영화이다. 그리고 <경성학교>는 그냥 <령>에서 하지 않을 것만 골라서 하는 영화라고 하는 게 맞겠다. 

<경성학교>의 시대적 배경은 1938년이다. 무대는 숲 속에 있는 어느 요양병원이다. 영화는 폐병 환자인 주인공 주란이가 학기 중에 병원에 입원하면서 시작된다. 곱게 자란 부잣집 딸인 주란은 엄격한 학교 분위기와 은근히 자기를 배척하는 학생들에게 시달림을 당한다. 그런 주란 옆에 있어주는 유일한 사람은 명덕이라는 소녀다. 매일 주사약을 맞고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회복해가던 주란은 이 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이 수상쩍은 상황 속에서 한 명씩 실종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형적인 여자 기숙학교 호러물의 설정이다. 하지만 감독 이해영은 이 영화가 호러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적어도 이 영화가 <령>이나 <여고괴담>이 속해 있는 아시아 귀신 영화의 전통 안에 있는 게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호러물이 아니라고 하는 건 너무 성급해 보인다. 주란을 비롯한 학생들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그 아이들이 모두 심한 공포에 시달리는 건 여전하다. 단지 이 공포의 원인이 귀신이 아니라는 게 다를 뿐인데, 어차피 호러물에 반드시 초자연적인 현상이 개입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논리를 미리 세우고 복선을 빠짐없이 읽어내어 학교의 비밀을 예측한다고 해도 (둘 다 어렵지는 않다) 중반 이후의 사건 전개는 좀 당황스러운 구석이 있다. 단지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경성학교>는 일제 강점기의 <여고괴담>처럼 시작하지만, 결코 거기에 머물지 않는 영화이다. 이야기는 종종 모호한 방향으로 빠지고 장르는 중간에 서너 번 널을 뛰며 이음새는 거칠거칠하지만 그러는 동안 만들어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든 사람의 취향은 절대 아니겠지만. 

무엇보다 영화는 공허하지가 않다. 호러물을 포함한 모든 장르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장르의 규범 속에 쉽게 안주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령>은 그런 태도의 최대 피해자다. 다행히도 <경성학교>는 그런 함정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빠져나간다. 하긴 얌전히 갇히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인공적인 장르 재료를 썼다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이 시대를 배경으로 장르놀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을 쓴 듀나는 영화평론가이자 소설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