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세간의 입길에 올랐다. 입길 사이로 좋은 이야기만 있었다면야 회고록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좋은 말보다는 평가의 대부분은 비판적인 의견들이었다. 우선, 회고록 출간이야 본인 자유지만, 출간 시점이 빨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남북이 미묘한 대치 상황을 거듭하는 와중에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내용 등 민감한 정치적 상황을 지나치게 빨리 꺼냈다는 것이다. 덧붙여 내용의 진실성 여부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충실하게 복원하지 못하고 있어 회고록의 진정한 가치에 부합하느냐는 말이 많았다.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여 적은 기록.’ 회고록의 사전적 정의다. 비록 짧은 한 문장이지만, 이 정의는 회고록이 담아야 할 중요한 가치를 포괄하고 있다. 우선 자료의 정확성이다. 회고록은 ‘지난 일을 돌이켜’라는 대목이 보여주듯,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서 써야만 가치가 있다. 회고록은 SF 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이 진리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그럼에도 서점가에는 정확한 사실에 기반해 출간된 회고록이 그다지 많지 않다. 선거철만 되면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그렇고 그런 자서전도 그렇고, 조금만 인기가 있으면 우후죽순 출간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맨의 에세이들이 대표적이다.  

‘지난 일을 돌이켜’ 정확한 자료에 입각해서 쓴 대표적인 회고록이라면 단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김대중 자서전>을 앞자리에 둘 만하다. 자서전이 인물 개인의 역사를 중심에 놓는다면, 회고록은 개인의 삶과 연관된 역사적 함의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김대중 자서전>은 스스로의 삶과 그가 걸어온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조목조목 짚어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청와대를 떠나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온 직후부터 이듬해까지 자서전을 구상했고 이내 구술 작업에 들어갔다. 2년 넘는 시간 동안 모두 41번의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을 정도로 그는 공을 들였다. 무엇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꼼꼼한 기록의 사람이었다. 1984년 처음 출간된 <김대중 옥중서신>에서 보듯, 가족에 대한 사랑과 국가에 대한 애정, 세계사에 대한 다채로운 편력을 한 장의 엽서에 써넣을 정도로 치밀한 사람이었다. 고단한 수감 생활 중에도 껌종이나 과자 포장지 등에 메모를 남겨 아내 이희호 여사에게 전달했는데, 그 치열한 기록 정신은 <김대중 자서전>의 모태가 되었다. <김대중 자서전>은 출간 직후 2권 1200쪽에 달하는 묵직한 책임에도 10만 질 가까이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록이 살아 있는 또 하나의 회고록이라면 독일연방의 대통령을 지낸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의 <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서독의 대통령이자 이후 통일독일의 대통령을 지낸 바이츠제커의 회고록으로, 분단 45년, 동서 화합 20년의 시간을 각종 문헌의 기록에 의지해 오롯이 살려냈다. 전범 국가로 분단의 천형을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독일이었다. 마찬가지로 통일 역시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하나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결국 바이츠제커는 독일 통일이라는, 투명해야만 하는 역사의 기록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쓴 장동석은 출판평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