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은 자신감이 모든 것을 변화 시켰다. 남아 있는 것은 원래부터 탄탄했던 기본기와 이름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룹에서 강력한 챔피언 후보가 됐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온 쉐보레 말리부의 얘기다. 본디 쉐보레 제품은 견고한 차체를 바탕으로 탄탄한 기본기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기본기를 제외한 면면의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이전 세대의 말리부도 마찬가지였다. 근육질의 운동선수가 자칫하면 유연성을 잃기 쉽듯, 이전 말리부는 우수한 주행 안정성을 위해 다소 뻣뻣한 승차감과 소음, 진동을 허용했다. 디자인이 빚어내는 이미지도 보수적이었다. 시원함을 강조한 옆모습과 당당한 뒷모습에 비해 앞모습은 너무 점잖았다. 기본기에 치중한 견고한 차체는 좋았지만 편의장비가 부족해 상품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평가도 많았다. 첫 출발은 의욕적이었지만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느낌이었다. 100퍼센트 발휘되지 못한 잠재력이 못내 아쉬웠다.

 

 

반면 확 달라진 말리부는 이런 아쉬움을 찾을 수 없다. 분명한 자신감이 있다.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보여줄 기세다. 디자인부터 훨씬 젊고 강렬하다. 4도어 쿠페 스타일의 차체와 낮게 깔려 보이는 후드 라인은 세련된 스포티함이 느껴지고 프런트 마스크에서 새로운 쉐보레 디자인 DNA가 잘 묻어난다. 여기에 뒷모습은 하극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형님인 임팔라보다 고급스럽고 강렬하다. 면발광 LED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를 사용한 것도 인상적이다. 실내는 각 요소가 큼직한 미국적 디자인과 세련된 최신 트렌드의 중간쯤이다. 이전보다는 아기자기한 디테일에 치중한 흔적이지만, 동시에 브랜드의 색깔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힘썼다. 브랜드의 개성과 요즘 시대의 흐름 사이에서 매우 적절한 선택이다.

 

새로운 말리부는 파워트레인의 구성에서도 매우 공격적이다. 보수적인 고객층이 많은 중형 세단 시장의 특성상 쏘나타와 K5는1.6리터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이 있음에도 2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보존하는 안전한 방향을 선택했다. 그 결과 1.6리터급 터보 엔진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미지 형성에도 실패했다.

 

SM6의 경우는 1.6 TCE가 상위 모델로 자리 잡았지만, 2.0 GDe 모델과의 성능이나 가격 차이가 미미해 오히려 2.0 GDe의 판매를 가로막고 있다. 이런 면에서 올 뉴 말리부가 선택한1.5 터보와 2.0 터보 라인업 구성은 간결하면서도 효율적이다. 경쟁자들은 작게는 네 가지, 많게는 일곱 가지의 파워트레인을 갖춘 것에 비해 말리부는 두 개의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과앞으로 추가될 하이브리드 모델 등이 모두 정확하게 자리를 잡은 구성이다. 풀이하자면 제품 기획이 정확하게 실현된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증거로 보인다.

 

 

 

 

이번에 테스트한 시승차는 1.5 터보다. 경쟁자의 2.0 모델과 상대하는 말리부의 주력 모델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말리부의 1.5 터보가 경쟁자의 2.0 자연흡기의 성능뿐 아니라 실용성이나 승차감에서도 이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성능에서는 1.5 터보가 물론 우수하다. 최고출력은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이지만 토크는 무려 25퍼센트 정도 높고, 동시에 낮은 회전수부터 발휘된다. 그렇다면 실생활에서는 어떨까? 여기에서도 말리부 1.5 터보가 우위를 차지한다. 일단 경쟁모델보다 놀라우리만치 조용하고 매끈하다. 이전에는 “쉐보레 엔진은 조금 시끄러운 것이 정상이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처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 시동을 걸 때 시동이 걸리지 않은 줄알았다. 심지어는 스타트/스톱이 작동할 때도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엔진이 경쾌하고 매끈하게 회전수를 올려간다. 쉐보레 측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다운사이징 엔진의 하나인 폭스바겐의 1.4 TSI 엔진 보다도 조용하다는 것을 강조할 정도다. 힘도 좋지만 엔진의 감촉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장 시간 시승하면서 2.0리터 자연흡기 엔진이 그리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무기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역시 쉐보레의 장기는 탄탄한 기본기에 있다. 더불어 안락하고 포근한 승차감까지 실현했다. 주행 감각에서는 단연 동급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강성이 뛰어난 차체는 굳이 서스펜션을 너무 딱딱하게 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조종 성능과 안정성을 실현한다. 다리의 이음매를 통과할 때나 과속방지턱을 통과할 때 매우 고급스러운 승차감으로 노면의 요철을 삼켜버린다. 이때 타이어나 파워트레인으로부터 전달되는 진동이 거의 없다. 글자 그대로 ‘버터 같은’ 매끄러움이다. 반복적인 테스트 결과 짧은 요철에서만 약간 거슬리는 진동이 올라온다. 시승차에 달린 19인치 휠(옵션)의 특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신 19인치 휠을 사용하는 동급의 어느 모델보다 승차감도 단연 으뜸이다.

 

따끈한 신제품이니만큼 편의장비 수준도 높다. 기본형 LS부터 뒷좌석 사이드 에어백 등 8개의 에어백을 기본 장착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외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트림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도 특징이다. 기본형 LS와 최고급 LTZ는 크롬 도어 핸들과 LED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와 휠 크기 정도가 다르다. 초라한 외관 때문에 하위 트림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까지 배려한 저인망식 라인업 구성이다.

물론 새로운 말리부도 단점이 잇다.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 아니다. 옵션 구성에서는 현대 쏘나타 2.0 CVVL보다 100만~200만원 비싸다. 프리미엄 중형 세단을 표방한 SM6보다는 가격이 낮지만 옵션을 고려하면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약간 아쉬운 실내 마무리나 경박한 방향지시등 소리, 너무 큰 후진 주차 경보음 같은 섬세함은 부족하다.

 

 

그런데도 이 차의 첫인상이 긍정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장점이었던 기본기는 그대로 지키면서 시장이 원하는 방향과 세상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따랐기 때문이다. 동급에서 가장 좋은 승차감과 조종 성능을 실현 했다. 쏘나타만큼 넓은 뒷좌석, 색깔은 다르지만 SM6만큼 인상적인 디자인, 모두가 원하는 장비 수준, 누가 봐도 긍정적으로 변한 쉐보레의 DNA 등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임팔라에서 확신을 얻은 쉐보레가 브랜드의 자신감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고한 자신감은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묘한 아우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