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한국 경제에 좋지 않은 징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애초 3.0퍼센트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2.6퍼센트 성장에 그쳤다. 정부는 올해도 3.0퍼센트 넘는 경제성장을 예견했지만 각종 경제 관련 연구기관은 지난해보다 낮은 경제성장률이 될 것이란 예측을 내놓고 있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대기업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포스코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IMF 때에도 가장 건실한 기업으로 평가받았던 포스코 아닌가. 삼성도 마찬가지다. 그룹 계열사 몇 개를 매각했다. 최근에는 서울 태평로 사옥 빌딩도 팔았다고 한다. 한 해 수십 조 원을 벌어들이는 한국 최대 기업이 어떻게든 현금 보유량을 늘리려 하고 있으니 예사로 치부 할 일은 아니다. 뉴스에서도 연일 한국의 경제 성장 전망치를 낮게 평가하고, 여러 국회의원 후 보들은 자신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말로만 아우성 쳤다.

 

지금 한국을 사는 모든 이들은 경제가 좋지 않고 앞으로도 그다지 밝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차가 많이 팔린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판매량은 141만3295대로 2014년(130만9006대)에 비해 8.0퍼센트 더 많이 팔렸다. 판매 비중도 세단보다 비싼 RV가 41.5퍼센트(2014년 34.0퍼센트)로 크게 높아졌다. 수입차도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지난해 20.4퍼센트 성장하면서 수입차 점유율이 16퍼센트에 이르렀다. 올해는 점유율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업들은 연일 죽겠다며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데 오히려 국민은 자동차를 더 많이 산다. 그것도 비싼 차를 사고자 한다. 경기가 좋지 않고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국민도 기업처럼 지출을 줄여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들어선다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고성장 경제를 살았다는 뜻이다. 자동차 시장은 지난 50년간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이 눈부신 고도성장을 일궈냈다. 1990년 한국의 중산층 평균소득이 82만원이었는데, 2014년에 391만원으로 연평균 6.7퍼센트씩 증가했다고 하니 그동안의 국민소득 증가와 그 증가액에 따른 소비는 점점 선진국형으로 변모했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아직 경제 저성장 시대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게 얼마나 길지도 모르고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저성장 시대가 코앞에 왔음에도 어떻게 대처하고 판단해야 할지 그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세금이 낮을 때 차를 산다. 그 것도 빚을 내서 비싼 차를 산다. 하지만 기업은 다르다. 경제 생태 최전방에 있는 그들은 삼성처럼 저성장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저성장 시대가 오면 어느 순간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을 것이니 지금부터 새로운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저성장 기조를 늦추기 위해 노력한다. 개별소비세를 줄여 소비를 촉진하고 은행 금리를 낮춰 시장에 돈을 푼다. ‘돈이 돌아야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또한 부메랑이 돼 소비자와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소비자들이 대출을 받아 차를 사면서 늘린 가계부채는 국가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되니까. 이미 2015년 말에 가계부채는 1200조원을 넘겼다. 역대 최고다. 월 100만원을 벌면 빚 갚는 데 24만원이 들어간다.

 

어쩌면 우리 국민은 고성장 시대의 끝물에서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경제 불황의 늪이 얼마나 깊은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그 불황의 늪에는 분명 대규모 구조조정도 있고 임금 삭감과 파산도 있을 것이다. 부채를 떠안고 있는 국민은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이제 만찬을 끝낼 때가 아닐까? 정부가 세금을 줄이는 건 차를 사기 좋은 기회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경제 저성장 시대에서는 그 기회가 풀어내기 힘든 족쇄가 될지도 모른다. 세심한 사려가 필요하다. 정부도 무턱대고 소비와 지출을 독려하지 말고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강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1200조원의 폭탄을 안고 저성장 시대로 향하고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