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987년 태어난 인피니티 브랜드가 30세 되는 해다. 인피니티는 렉서스에 이어 일본의 두 번째 럭셔리 브랜드로 선보였지만 그만큼의 성공을 보이지 못했다. 정교하고 안락한 고급차를 저렴한 값에 제공하겠다는 현실적 전략을 취한 렉서스와 달리 인피니티는 본격적인 럭셔리 스포츠 세단을 일본식으로 완성하려 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고성능과 스포티함이라는 이미지는 성공적이었지만 상품성에선 경쟁자들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시장인 미국에서조차 렉서스의 3분의 1 수준, 심지어 혼다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어큐라보다 판매량이 적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지난 2012년부터 판매량도 회복세에 접어들어 지난해에는 브랜드 역사상 처음 전 세계 판매 20만대를 넘었다. 북미 시장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도 벗어나고 있다.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 시장이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회복 조짐은 한국 시장에서도 보인다. 6퍼센트를 바라보던 인피니티 브랜드의 수입차 시장 점유율은 한때 0.7퍼센트까지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지난 2014년부터는 회복세가 완연하다. Q50 2.2d의 판매 호조 덕분이었다. 그런데도 찜찜한 구석이 있다. 인피니티다움이 흐려지고 있는 제품 라인업 때문이다.

전략적 제휴가 빚어낸 중심 이동
인피니티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새 전략의 중심엔 메르세데스 벤츠와의 전략적 제휴, 정확하게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와 다임러 그룹의 전략적 제휴가 있다. 여기엔 르노 트윙고와 스마트의 공동개발 및 생산, 광범위한 엔진 공유, 인피니티 모델 공동개발 등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르노의 1.5리터 디젤 엔진과 1.6리터 가솔린 엔진은 벤츠 A·B·CLA·GLA 클래스 등 콤팩트 라인업과 C 클래스에 사용되고, 인피니티 Q50은 벤츠의 2리터 가솔린 엔진과 2.1리터 디젤 엔진을 쓴다. 인피니티의 C 세그먼트 진출작인 Q30 해치백과 크로스오버 SUV QX30은 아예 A 클래스와 GLA의 벤츠 MFA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이 같은 전략적 제휴는 르노-닛산과 다임러가 서로 주력하고 있는 시장과 세그먼트가 다르고 각자의 장점이 뚜렷했기 때문에 이뤄질 수 있었던 이상적인 사례다.

앞서 언급한 인피니티 모델들을 보면 분명한 경향이 보인다. 신모델이 C-D 세그먼트, 바꿔 말해 한국 기준으로 준중형과 중형차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미국 중심이던 시장 전략의 탈피, 둘째는 중형차 이하 세그먼트의 세계적 강세에 대한 대응, 셋째는 전략적 제휴 파트너인 벤츠와의 플랫폼 공유 개발이다. 제품 전략의 능동적인 수정과 시장 트렌드 변화에 대한 대응, 그리고 파트너와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신속하게 실리를 챙기는 방향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모델이 생겨났다. Q50 및 Q60 이상 모델(Q70)과 QX30을 제외한 대부분의 SUV 제품들(QX50, QX60, QX80 등)이다. 이들은 새로운 명명 체계에 따라 주어진 이름을 제외하면 이전 모델과 큰 차이가 없다. 7~8년 차에 해당하는 제품들이 아직도 현역이라는 얘기다.

 

최근 선보이는 인피니티 새 모델들을 보면 분명한 경향이 있다.
C와 D 세그먼트, 바꿔 말해 비교적 작은 차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피니티 Q30과 QX30은 벤츠 MFA 플랫폼(가운데 사진)을 공유했고, 벤츠 OM651 디젤 엔진(오른쪽 사진)은 Q50의 판매를 이끌고 있다. 르노-닛산과 다임러 그룹이 맺은 전략적 제휴의 결과다.

 

 

 

성공적 출발 후 급격한 추락 그리고 불안한 회복
인피니티가 한국에 등장한 건 지난 2005년이다. 전시장은 BMW와 벤츠의 메인 쇼룸이 있어 수입차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도산사거리 한복판에 들어섰다. 그것도 가장 크고 화려한 단독 건물에. 지금은 현대 모터스튜디오가 있는 그곳을 아직도 인피니티 전시장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인피니티의 등장은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닛산은 한국을 인피니티 브랜드의 파일럿 시장으로 지정했다. 인피니티 브랜드를 미국 이외 해외 시장에 진출시킬 계획을 수립하면서 까다로운 한국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어떤 나라 고객도 만족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인피니티는 당시 단종 예정이던 I 시리즈를 제외한 G 세단과 쿠페, M 세단, 플래그십 세단 Q45, 그리고 SUV인 FX 등 풀 라인업을 한국에 동시 투입했다. 그리고 반년 만에 500대 넘는 판매를 기록하는 등 성공적인 브랜드 론칭으로 이어졌다. 이후 2008년까지 인피니티는 승승장구했다. G35, G37 등은 뛰어난 성능과 함께 인피니티 특유의 동물적 곡선이 강조된 디자인으로 렉서스와 다른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FX 시리즈도 가솔린 엔진밖에 없는 SUV라는 무시할 수 없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스포티한 성능과 디자인으로 입지를 단단하게 굳혔다.

그런데 그 다음이 없었다. G 시리즈의 스포티함과 일본차답지 않게 세련된 디자인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강하게 심었다면 그 다음은 브랜드를 높은 세그먼트로 끌어올리거나 보다 대중적인 시장으로 확장하는 2단계 전략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공교롭게도 2008년 말 미국발 금융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때를 기점으로 수입차 시장엔 급격한 디젤화가 이뤄졌고 한국의 인피니티는 치명상을 입었다. 그들에겐 연료효율이 떨어지는 고성능 V6와 V8 엔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흔한 직분사 가솔린 엔진도 없었다.

 

 

 

새로운 모델은 꾸준히 투입됐다. 하지만 시장 흐름과 맞지 않고 인피니티 브랜드의 약점을 보완하는 제품들도 아니었다. M56, FX50, QX56 등 8기통 5000cc 이상 모델이 줄줄이 나왔지만 불황에 기름 퍼먹는 대형 가솔린 모델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11년 G25를 투입해 판매를 끌어올렸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SS모터스와 한미모터스 등 주요 딜러들이 사업권을 반납한 것이다. 주요 딜러들이 떠나면서 판매는 치명타를 입었다. 2007년 5.63퍼센트를 정점으로 2011년 2퍼센트까지 떨어졌던 인피니티의 수입차 시장 점유율은 이듬해 결국 1퍼센트 아래까지 내려갔다. 신형 M에 마침내 디젤 엔진이 추가됐지만 판매는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2013년은 더 참담했다. 시장 점유율은 0.7퍼센트 수준까지 떨어졌다. 판매대수는 고작 1100대 정도인데 세부 모델은 무려 21가지나 됐다. 그 가운데 5대 미만 팔린 모델이 13가지나 될 정도로 모델 라인업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다행히 이듬해부터 회복세를 보였다. 판매량은 2777대를 기록했고 시장 점유율은 1.41퍼센트까지 올랐다. 이유는 단 하나, G 시리즈 후속인 Q50 2.2d가 벤츠 C 220 블루텍과 똑같은 디젤 엔진을 달고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Q50 2.2d 판매가 2321대로 인피니티 전체 판매의 84퍼센트나 차지할 만큼 의존도가 컸다. 이런 흐름은 2015년에도 비슷했다. 인피니티 전체 판매량(2974대) 중 2062대가 Q50 2.2d였다. 전체 판매의 69퍼센트니까 Q50 2.2d의 비중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Q50 2.2d 판매가 주춤하자 인피니티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이 다시 1.22퍼센트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금 인피니티는 벤츠 디젤 엔진 하나에 업혀가는 신세가 됐다.

 

 

 

Q70의 강점은 인테리어다. 디자인과 품질에서 최고라는 아우디에 뒤지지 않는다. 달리는 감촉 또한 매우 본격적이다.

 

 

진짜 인피니티, Q70
10년 공부가 물거품이 됐다. 고작 독일 디젤 엔진 하나에 의지해 사는 인피니티의 신세가 처량하다. 보다 큰 문제는 이런 딱한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그리고 더 강해질 거라는 점이다. Q50은 엔진만 벤츠 것이지만 앞으로 소개될 Q30과 QX30은 뼈대부터 벤츠 것이니 이대로 가다간 인피니티의 혈통 자체가 무너질지 모른다. 실제로 Q50은 이전 G 시리즈에서 느낄 수 있었던 바닥에 착 가라앉은 듯 묵직한 스포티한 맛이 무뎌졌다. 벤츠에서 플랫폼을 가져와 쓴 Q30과 QX30에선 인피니티의 맛이 희석될 가능성이 더 크다. 상품성이 좋아져 단기적으로는 판매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분명 두려운 일이다.

Q50 이하 모델에서 벤츠의 영향이 커지면서 인피니티 브랜드의 정체성이 흐려진다면 이를 상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북미 시장에선 QX50·60·80 등 SUV 라인업이 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6기통 이상 가솔린 엔진을 가진 SUV에 의미 있는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 특히 닛산 VQ 엔진들은 아직도 직분사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한 채다. 성능과 감성이 뛰어난 엔진이긴 하지만 한국에는 연비 나쁜 고성능 엔진의 SUV가 설 자리가 거의 없다. 대체 무엇으로 만회해야 할까? 딱 한 모델 남아 있다. Q70이다.

Q70은 M 시리즈 시절부터 꾸준한 모델이었다. 기함 Q45가 단종된 뒤에는 M45가 인피니티 브랜드의 기함 역할을 했다. G 시리즈가 스포티한 이미지로, Q50은 벤츠 디젤로 바람몰이를 할 때도 이들이 편안하게 활개칠 수 있도록 브랜드의 외연과 이미지를 책임져줬다. 비록 한국에선 EU6 배기가스 기준 때문에 디젤 모델이 단종됐지만 Q70 3.7 모델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해에도 Q70은 317대 판매로 Q50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인피니티 제품이었다.

이 차의 강점은 단연 인테리어다. 아우디 인테리어가 디자인과 품질에서 최고라고 말하지만 그럴 때마다 난 Q70도 한번 보라고 권했다. Q70 인테리어는 높은 품질의 소재와 결벽증에 가까운 조립품질, 우아함과 고풍스러움이 공존하는 디자인 등 감히 시대를 잊은 걸작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두툼한 시트 감촉과 시각적 존재감만으로도 고급차에 타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달리는 감촉 또한 매우 본격적이다. 묵직하게 노면을 눌러가며 달리는 느낌과 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매끈하고 명료한 조향 감각은 전자장비가 장악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제대로 된 섀시의 참맛을 간직하고 있다. VQ37 엔진은 비록 기름은 많이 먹지만 성능과 감성으로 그 값을 톡톡히 한다. 한마디로 Q70은 정통 럭셔리 스포츠세단이다. 전자제품 만들듯이 프로그래밍과 제어장치에 의존해 차를 만드는 브랜드가 넘쳐나는 요즘, 정공법을 고수하고 있는 Q70은 오히려 전통 기법을 따르는 장인의 걸작과 같은 값어치가 있다.

가치를 지켜라
Q70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정통 인피니티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점뿐만 아니라 중형 이하 제품만을 가진 럭셔리 브랜드는 실질적으로 생명력을 갖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Q70마저 없다면 인피니티는 럭셔리 브랜드의 명함을 거둬들여야 한다. 실상 Q70도 프리미엄 브랜드의 기함으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A8 데뷔 이전의 아우디도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럭셔리 브랜드 대접을 받은 역사가 있다. 인피니티는 Q70의 가치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Q50 고객들이 Q70을 통해 진정한 고품질을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적어도 Q70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방치하는 실수는 반복해선 안 된다. Q70의 존재는 럭셔리 브랜드 인피니티의 최소 요건이기 때문이다.  
에디터/김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