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칼럼을 만난 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서울모터쇼에 이어 두 번째 아니냐고? 아니다. 세 번째다. 2012년 9월 5일 영국 런던 근교에서 열린 F 타입 프리뷰 행사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재규어는 그해 파리 오토살롱에서 F 타입을 정식으로 공개하기 전에 기자들을 모아 프리뷰 행사를 열었다. 그의 첫인상은 음, 유쾌한 영국 아저씨 같았다. F 타입을 소개하는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매우 들떠 있었고, 신나 보였다. “F 타입은 제가 정말로 디자인하고 싶었던 차입니다. 이런 차를 디자인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그는 작은 것 하나하나 세세히 설명하며 이 차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야기했다. 내가 실내를 유심히 들여다볼 때도 어느새 옆에 다가와 말을 건넸다. 심플한 표면을 위해 도어 손잡이를 숨겨놨다며 손으로 툭 쳐 손잡이를 빼내기도 했다. 그의 행동은 자유로웠고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했다.

이언 칼럼을 다시 만났다. 세 번째 만남은 한국에서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레어 디자인 스튜디오(Rare Design Studio)’를 열고 브랜드의 디자인 수장인 이언 칼럼을 초청해 XJ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론칭 행사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디자인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다. 두 행사 모두 이언 칼럼이 중심이었다. <모터 트렌드>는 모든 기자가 달려들어 이 중요한 행사를 꼼꼼히 취재하기로 했다. 무대 뒤의 인간 이언 칼럼도 알고 싶어 시간대별로 그의 동향도 좇았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임무는 김태영과 고정식 두 명의 기자가 책임졌다. 서인수

 

 

영국 노신사
XJ는 과거보다 젊고 감각적인 소비자를 겨냥하지만 마치 본인이 타려고 만든 차처럼 이언 칼럼 자신과도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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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Said:
“나는 언제나 규칙을 깨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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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데”
재규어 뉴 XJ와 이언 칼럼, 지금 재규어를 이끄는 두 주역이 레어 디자인 스튜디오의 주연배우로 무대에 올랐다.

 

 

#DAY-1
13:00     일요일 정오. 휴일이었지만 특급 호텔의 로비는 생각보다 북적거렸다. 조금은 부산스럽게, 조금은 소란스럽게도 느껴질 만큼 사람이 많았다. 잠시 후 올라간 펜트하우스의 레스토랑은 마치 딴 세상인 것처럼 달랐다. 시끄러운 목소리 대신 차분한 클래식 음악이 깔린 가운데 바쁜 행보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거기에 그가 있었다. 이언 칼럼, 21세기의 재규어를 송두리째 바꾼 디자이너였다.

13:30     사진가가 가까이 다가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의 표정은 밝았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눈치도 없었다. 20년 가까이 재규어를 대표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온 이답게 노련함이 느껴졌다. 관계자가 “당신과 24시간을 함께할 사람입니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일단 쉬고 싶다고 했다. 그가 물었다. “우리 내일 보나요? 아니면 이따?” 내가 대답했다. “이따 보죠. 기다릴게요.”

17: 25     이언 칼럼은 애초 오후 4시 반에 행사 리허설을 위해 DDP로 향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는 긴 비행에 보기보다 꽤 지쳐 있었다. 일정은 예정보다 1시간 늦은 5시 30분에 떠나는 것으로 변경됐다. 그는 바뀐 일정보다 5분 빨리 1층 로비로 내려왔다. 좀 쉬었는지 물었다. 그는 조금도 쉬지 못했다고 했다.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잠이 들지도 않았다고 했다. 처음 인사를 나눌 때와 달리 표정도 약간 굳어 있었다. “피곤해요. 긴 비행 후에는 늘 이렇죠.” 약간의 푸념이 섞여 있었다. 앞으로도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그였다. “영국으로 돌아가면 3일 쉬고 인도에 가야 합니다. XF 발표가 있거든요. 그리고 다시 집에 갔다가 캐나다로 가야 하죠. 그 다음에도 제네바 모터쇼, 뉴욕 모터쇼 등 일정이 쭉 잡혀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다음 날 신형 XJ 출시 행사에서 쓸 발표 원고를 검토하고 수정했다. 학생들과 만나는 자리인 디자인 마스터 클래스에서 학생들에게 말해줄 내용도 정리했다고 한다. 학생들과의 만남은 이번 일정 중 그가 가장 기대하는 시간이다. “젊은 사람들 만나는 자리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열정적이고 창의적입니다. 그리고 티가 없어요. 뭐든 담을 수 있고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죠. 재규어 디자인 팀도 젊게 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재규어를 더 강하게 만들 겁니다. 확신해요.” 강한 어조였다. 잠시 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관계자가 나왔다. 그가 DDP로 향하는 XJ에 오르며 물었다. “같이 가나요?” 같이 가고 싶었지만 우리 일행이 모두 XJ에 탈 수는 없었다. “따라갈게요.”

 

 

 

17:40     그가 행사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덩치가 크지 않다. 하지만 행사 관계자 8~9명을 우르르 데리고 행사장을 둘러보는 그는 마치 독재자 같았다. 모두가 쩔쩔매는 모습이다.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모든 전시물의 설명을 들었다. 디자인 히스토리 부분에 자신이 나오자 웃으며 “건너뛰자”고 했다.

18:00     그가 리허설을 위해 무대로 향했다. “준비 잘 됐나요?”라고 묻자 “준비하러 갑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대에 올라서는 동선 확인과 세부적인 사항만 조절했다. 웅장한 노래와 함께 XJ가 베일을 벗자 씩 웃었다. 마음에 드는 눈치다. 특히 음악이 멋지다고 칭찬했다. 세 개로 분할된 화면 가운데만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뜨고 양쪽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자 “가운데 그림만 맘에 들어요. 양쪽은 별로”라며 농담을 했다. 리허설은 15분 만에 마무리됐다. 행사 관계자들은 너무 빨리 끝난 것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한 눈치였지만 “환상적인 무대예요”라는 그의 한마디에 비로소 긴장을 풀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행사장 천장을 바라본 뒤 특이한 건물이라며 손짓으로 라인을 따라 그렸다.

18:20     리허설이 끝났다. 그는 쉬고 싶다고 했다. 따로 저녁식사 자리도 갖지 않겠다고 했다. 그저 얼른 들어가서 쉬고 싶다고만 했다. DDP에 온 지 40분 만에 이언 칼럼은 자신이 디자인을 송두리째 바꾼 XJ의 뒷자리에 올라타고 숙소로 향했다.

 

 

#DAY-2
9:00     호텔 로비에서 그를 기다렸다. 이언 칼럼은 오전 7시에 행사장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출발 시간은 8시 15분으로 미뤄졌다. 그리고 얼마 뒤 8시 45분까지 늦춰졌다. 그가 나타난 건 예정보다 15분 늦은 시간이었다. 신형 XJ 출시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시작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는 30분 전부터 호텔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XJ로 서둘러 걸어갔다. 간밤에 잘 잤을까? “전혀요. 긴 비행 후 첫날 밤엔 보통 그래요. 잠을 못 자요. 그런데 같이 갈까요?” XJ엔 빈자리가 없었다. “택시 타고 갈게요. 행사장에서 만나요.” 이언 칼럼이 웃으며 차에 올랐다.

10:00    그는 행사 시작 몇 분을 남기고 2층에 마련된 대기실 겸 라운지에서 나왔다. 긴장한 기색은 없었지만 그래도 긴장이라도 풀어줄 요량으로 한국에서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물었다. “갈 수가 없어요. 시간도 없습니다.” 공식 일정표상에는 분명 비는 시간이 있었다. 그것도 꽤 많이. 어쨌든 그는 이번 방문기간 중 어디에도 갈 계획이 없다고 했다. 대신 3년 전 방한했을 때 수산시장에 갔던 얘기를 무용담 늘어놓듯 꺼냈다. 살아 있는 생선을 거래한다는 게 그에겐 꽤나 낯선 풍경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춥네요. 북유럽 같아요.” 그가 온 기간은 하필 최강 한파로 온 나라가 꽁꽁 얼어 있을 때였다. 잠시 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백정현 대표가 다가왔다. 공식 행사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행사장으로 향하는 그의 얼굴은 이미 완전히 살아나 있었다.

 

 

 

과거와 현재
오리지널 XJ와 뉴 XJ는 더 이상 닮은 구석이 없지만 시대를 반영하며 흥분을 자아내는 재규어라는 공통분모는 변함없다.

 

 

PRESS CONFERENCE    
행사가 열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아침부터 들썩거렸다. 재규어 뉴 XJ가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거니와 이 차 디자인을 총괄한 거물급 디자이너의 방한은 어떤 언론에도 놓칠 수 없는 기삿거리니까. 아니나 다를까, 행사 시작 전부터 많은 기자가 운집했다. 물론 이언 칼럼이 자동차 옆에서 살짝 모습만 비치고 가는 행사였다면 이렇게 많은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을 거다. 그는 2013년 서울모터쇼에서 F 타입을 선보이는 자리에 있었지만 제품에 대해 간략한 소개만 하고 떠나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다. 3박 4일간 한국에 머물면서 재규어 디자인 아이덴티티와 자신의 디자인 철학, 그리고 뉴 XJ의 디자인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다. 지난 1월 25일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는 그 시작이었다.

재규어가 DDP에 준비한 ‘레어 디자인 스튜디오’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공간을 구조적으로 나누고 활용한 것이 눈에 띄었다. 행사장은 정문을 통과하고 다리를 건너야 하는 독특한 구조다. 이 다리가 컨퍼런스홀과 디자인 스튜디오 공간을 나누는 역할도 했다. 다리를 건너면 자연스럽게 재규어 XJ의 역사와 이언 칼럼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여러 전시물과 동영상과 마주한다. 재규어 관련 전시물과 동영상은 재규어 역사가 시작된 1922년부터 시작됐다. 프리미엄에의 기치, 고성능에 대한 열망, 레이싱 열정의 역사가 연도별로 자세히 정리됐다. 그리고 XJ의 역사가 시작된 1968년에 이르게 된다. 전시장 한가운데엔 1968년형 XJ 시리즈 1 오리지널 모델이 전시됐다. 그 옆에는 1987년형 XJ 시리즈 3가 자리했다. 이 차들은 세계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다. 재규어 브랜드와 XJ의 역사와 전통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rare) 공간. 이 행사의 이름이 ‘레어 디자인 스튜디오’인 이유다.

많은 기자가 눈앞에 펼쳐진 XJ의 역사와 단편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 옆에서 XJ 시리즈 1과 3를 가만히 살피니 고혹적인 디자인에 사로잡힌다. 극도로 얇은 A 필러와 날카로운 노즈는 강화된 안전규정 때문에 지금은 구현할 수 없는 디자인이다. 오랜 세월을 보낸 자동차가 지금 봐도 아름답고 고혹적인 것은 디자이너가 더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었던 환경도 있지만 무엇보다 재규어 특유의 강렬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모든 전시물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컨퍼런스홀로 이어지고, 이곳에서 뉴 XJ의 발표가 이뤄졌다. 새 모델은 겉모습에 큰 변화는 없다. XJ의 디자인은 이미 완성도가 높았다. 다만 이번 페이스리프트에선 디테일을 더 고급스럽게 가다듬고 기술 진보에 맞춰 각종 편의장비를 추가했다. 앞부분에선 더블 J 주행등이 눈에 띈다. 과거의 XJ는 두 개의 원형 헤드램프가 시그니처 디자인이었는데 사실 이는 전구를 사용하던 시절의 효율성을 고려한 디자인이었다. 지금은 훨씬 효율이 높은 LED를 사용하니 굳이 원형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대신 양쪽에 두 개의 J자 모양 주행등을 달고 깊이감을 주면서 디자인 전통을 계승했다. 실내에선 재규어가 처음 선보이는 인컨트롤 터치 프로(InControl Touch Pro) 시스템으로 엔터테인먼트 환경을 업그레이드했다. 높은 해상도의 터치 패널, 직관적이고 간편한 멀티미디어 환경이 장점이다. 뒷자리에도 폴딩이 가능한 10.2인치 디스플레이를 달았다.

뉴 XJ는 재규어의 기함이다. 재규어 브랜드의 진정한 가치와 전통, 철학을 가장 뚜렷하게 소비자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재규어 레어 디자인 스튜디오는 XJ의 가치와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게 뭐냐고? “재규어 소비자들은 가장 아름다운 고성능차를 타야 한다”고 했던 재규어 창업자 윌리엄 라이언스 경의 철학이다.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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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Said:
“F 페이스와 랜드로버는 굉장히 다른 차다. 물론 판매에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포르쉐보다는 재규어에 빼앗기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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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3시간에 걸쳐 30분 간격으로 5번의 개별 인터뷰가 진행됐다. 세 번째 인터뷰 세션에서 만난 그는 부쩍 피곤한 얼굴이었다. 연달아 하품을 했다. 평소보다 덜 바쁜 일정이라곤 해도 쉽게 넘어갈 수준은 아니다.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 기자도 적지 않았다. 그때마다 그는 가볍게 웃은 뒤 질문자를 똑바로(무섭게) 쳐다보며 신중하게 답변해갔다. 인터뷰가 예정보다 조금 일찍 끝나자 그는 곧바로 호텔로 돌아갔다.

19:10    이언 칼럼이 다시 돌아왔다. 저녁엔 VIP 고객을 위한 XJ 발표 행사가 있다. 좀 쉬었는지 물었다. 내 팔을 토닥이며 “훨씬 나아졌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표정은 많이 어두웠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시간을 조금씩 조정했다. 이틀째 봐서 정이 들었는지 내 마음이 다 찡했다. 행사 시작 시간이 다가왔다. 무대 쪽으로 나아간 그에게 진행 요원이 다가와 마이크를 채웠다. 이언 칼럼이 다시 웃었다. 마이크를 차느라 벗었던 정장 상의를 다시 입은 그는 자신의 순서가 되자 무대에 올랐다. 그의 가장 밝은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은 역시 무대였다.

 

 

 

대담함 그리고 섬세함
존재감이 뚜렷해지고 세부는 고급스러워진 뉴 XJ. 인컨트롤 터치 프로와 같은 최신 엔터테인먼트 기능도 빼놓지 않았다.

 

 

VIP SESSION
레어 디자인 스튜디오에선 오후 7시부터 재규어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VIP 행사가 열렸다. 프레스 컨퍼런스와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열리는 행사인데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자들은 기술적이거나 산업적인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크다. 당연히 이언 칼럼의 강의 내용은 조금 더 무게감 있고 딱딱하다. 질문도 많다. 각종 안전규제에 대처하는 디자인 변화라든가 다른 브랜드의 디자인에 대한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VIP 세션은 사뭇 달랐다. 우선 피아노 선율이 듬뿍 담긴 말캉한 음악이 우아하고도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고객들은 자유롭게 전시물을 관람한다. 취재와 기록이 아닌 재규어 오너로서의 관심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빛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입장 때 나눠준 기기로 설명(김진표 녹음)을 듣는 이들도 보인다. 각종 모델카에 관심을 가진 이는 “판매하는 것 아니냐”며 구매 의사를 내비친다. 대부분의 VIP 손님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관람을 마치자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백정현 대표가 무대에 올랐다. “오늘 여러분께 재규어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에서 뉴 XJ를 가장 먼저 만나시게 될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대형 스크린에서 재규어의 ‘우아한 고성능’을 풀어낸 동영상이 흘렀다. 이윽고 뉴 XJ를 덮고 있던 베일이 벗겨지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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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Said: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모든 재규어의 공통점을 알 수 있다. 앞과 뒤는 좁고 가운데는 볼록한 라인이 두드러진다.

재규어는 팽팽하게 끝이 좁아지는 모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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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차례는 이언 칼럼. 적지 않은 나이에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여느 때처럼 밝았다. “우리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창조합니다. 이게 재규어 디자인의 철학입니다. 심플한 라인에서 디테일의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이죠. 그리고 재규어는 모든 모델에 고성능의 가치와 기품을 담아냅니다. 이게 바로 여러분이 타고 계신 재규어입니다.” 이언 칼럼이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강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용은 프레스 컨퍼런스와 같지만 멘트는 훨씬 깔끔하고 여유가 있었다. 큰 박수를 받으며 이언 칼럼이 내려가자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무대에 올랐다. 국내 최정상 기타리스트인 그도 재규어 XJR의 오너다. “XJR은 너무나 멋있는 차입니다. 자동차 디자인뿐 아니라 각종 광고를 보면 재규어는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함춘호와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협주곡이 울려 퍼지자 컨퍼런스홀이 순식간에 콘서트홀로 바뀌었다. 돔형 구조의 DDP는 음악 공연을 위한 콘서트홀로도 손색없어 보였다. 그렇게 150여 명의 재규어 고객들은 그들이 타는 차를 직접 그린 디자이너의 강연을 듣고, 재규어를 타면서 얻은 영감으로 만든 음악을 들으며 저녁식사를 했다. 재규어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정말 잊지 못할 시간이었으리라. 이진우

 

 

 

 

#DAY 3
13:45    이언 칼럼이 가장 흥미로워한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디자인 마스터 클래스는 2시부터 시작이다. 라운지 쪽으로 가봤다. 우연히 그가 나왔다. 한 손에 땅콩인지 쿠키인지 모를 작은 걸 들고 있었다. “점심이에요.” 겨우 그게 식사냐고 하니까 정말이라고 했다. 피곤한데 잘 먹어야 하지 않나? 그때 백정현 대표가 나왔다. 둘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이었다. 이언 칼럼은 어제 결국 잠을 이뤘다고 한다. 매우 잘. 그래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전날 식사도 매우 좋았다고, 아주 잘 먹었다고 했다. 그래선지 몸도 한결 좋아 보였다. 둘은 다시 라운지로 들어갔다. 이언 칼럼은 라운지 문이 닫히기 전 나를 한 번 쳐다봤다. 그런데 아무 표정이 없었다. 웃을 줄 알았는데 무표정하게 한 번 바라보곤 휙 들어갔다.

 

 

 

창의적인 파괴
F 페이스를 향한 논란에 대해 이언 칼럼은 이렇게 말했다. “창의적인 파괴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합니다.”

 

DESIGN MASTER CLASS    
그가 들어오자 풋풋한 디자인 꿈나무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들이대는 학생, 옆의 친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이언 칼럼, 이언 칼럼” 하는 녀석, 연예인 보듯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친구 등 각양각색의 설렘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이언 칼럼은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는 국내 대학생들과 만났다. 재규어의 디자인을 이야기했고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허심탄회하게 꺼내 보였다. 나도 대학생 틈에 섞여 앉았다. 그리고 잠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빙의해 이언 칼럼과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 사람은 재규어 안에 녹아 있는 디자인을 알아보는 것 같아요.” 이언 칼럼이 기분 좋게 디자인 이야기의 운을 뗐다. 그가 생각하는 ‘굿 디자인’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었을 때 나타난다. 의도가 분명해야 하며 모호함이 없어야 한다. 또한 매혹적이고 극적인 시각 요소로 구성돼야 한다. 한마디로 멋져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멋져서만은 안 된다. 1950년대 미국 자동차 디자인은 과장되고 화려했다. 겉보기엔 휼륭했지만 엔지니어와 소통이 부족해 비용과 기능 면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오늘날 디자이너는 엔지니어와 함께 숨 쉬어야 한다. 법규, 비용, 패키징 등 다양한 요소를 생각하며 가져갈 것과 뺄 것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 하나하나가 디자인 명언이었다. 학생들의 눈빛에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느껴졌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스코틀랜드풍의 타탄플래드 체크 패턴이 나타났다. 이언 칼럼 가문에서 사용하는 전통적인 체크 패턴으로 가문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했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디자인에는 기획 의도가 명확한 메시지가 있어야 하고 디자이너는 시각적으로 말하는 ‘이야기꾼’이 돼야 한다. 이언 칼럼의 고백이 이어졌다. “이전 모델인 7세대 XJ는 당시 자동차의 첨단 기술이 모두 들어가 있는 차였어요. 차체는 모두 알루미늄으로 만들었고, 운전 재미도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몰랐죠. 스토리텔링에 실패한 겁니다. 지금의 XJ는 이를 교훈 삼았습니다. 외모에서부터 어떤 차인지 확연히 드러나도록 디자인에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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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Said:
“F 타입은 아주 특별한 차다. 비율과 자세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고, 흐르는 선과 탄탄한 근육이 잘 조합됐다.

자신감이 있고 아주 강하다. 하지만 저속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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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과정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그만의 고집과 철학이 더욱 확연하게 느껴졌다. “난 아직도 매일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시간이 날 때는 포토샵을 이용해 더욱 구체화하죠. 그리고 디자이너들에게 요청합니다. 이런 디자인을 이야기해줄 수 있겠느냐고. 결국 그들은 해냅니다. 예를 들어 F 타입의 디자인에는 ‘잠재된 힘’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클레이 모델링도 강조했다. 클레이 모델링이란 렌더링된 스케치를 설계도 삼아 특수 찰흙으로 실제 차 모형을 만드는 작업이다. 모형을 360° 둘러보며 실제적인 디자인 비평을 할 수 있다. 생산 부서에는 절대적인 제작 가이드가 된다. 이언 칼럼은 클레이 모델링이야말로 자동차 디자인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처음의 스케치가 갖고 있던 생동감이 클레이 모델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끝이 아닙니다. 생산 단계에서 디자이너가 의도한 대로 잘 만들어지는지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제품에 디자인의 혼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이언 칼럼의 자동차 디자인 공식도 밝혀졌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아름다움’과 ‘흥분’이다. 재규어 디자인에선 여기에 ‘헤리티지’를 더했다. 아름답고 흥분되지만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헤리티지를 그려냈다. 젊은 소비자의 눈에 들기 위해 브랜드를 재해석했고 디자인이 브랜드를 젊게 바꾸었다. 물결이 흐르는 듯한 전체적인 라인과 곳곳의 감성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져 한눈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도록 디자인했다. 비결은 각 요소들의 비율과 순수한 표면이다.

“비율은 자동차 외관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차의 자세와 균형미를 결정짓지요. 비율이 완벽해야 200미터 밖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일단 예뻐지고 볼 일이에요. 아름답지 않으면 안에 타고 싶지도 않으니까요.”

황금 비율은 초반 스케치에서 찾아내야 한다. 법규와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엔지니어들과의 꾸준한 대화로 효율과 현실 가능성도 가늠해야 한다. 이언 칼럼은 너무 진지했다고 생각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은 지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중에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테니까요.” 그는 재규어의 깨끗하게 다듬어진 표면이 차의 세련미를 끌고 간다고 했다. 재규어는 항상 최소한의 선만 허락한다. 표면은 최대한 단순하게 디자인하는데, 오히려 이 작업이 더 어렵고 복잡하다. 비우는 것은 채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

뉴 XJ의 소개로 그의 강연은 끝났다. 이언 칼럼은 학생들이 미리 응모한 디자인 작품 중 다섯 점을 골라 간략한 품평과 함께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기자 간담회 못지않은 뜨거운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자동차 디자인의 비전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을 오갔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이언 칼럼은 말했다. “사람들이 모르는 당신의 상상력을 지식으로 만드세요. 여기까지.” 조두현

 

 

 

미래의 이언 칼럼
디자인 마스터 클래스를 찾은 예비 디자이너들. 그들과의 만남은 이언 칼럼에게도 가장 기대되는 일정이었다.

 

15:00    학생들의 질문을 받는 그는 즐거워 보였다.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웃는 일이 잦았다. 그는 학생들의 눈높이로 되도록 쉽게 답했다. 통역이 진행되는 동안엔 모든 학생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정해진 시간이 끝났지만 그는 계속 손을 든 학생의 질문까지 모두 받아주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역시 그 순간을 즐기는 듯 보였다.

 

 

 

INTERVIEW
“한국에 온 지 3일째인데 오늘이 가장 즐거워 보이더군요.”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 대상의 디자인 마스터 클래스가 막 끝난 참이었다. 이언 칼럼이 싱긋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어제는 한숨도 못 자서 완전히 바닥이었어요. 오늘은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거라 아무래도 편하더군요. 고객께는 더 큰 그림을 말씀드려야 하고, 기자들에겐 제가 하는 일을 전부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라 아무래도 더 긴장되거든요.” 그렇다곤 해도 자동차 디자이너 지망생들을 대하는 그의 모습엔 분명 어떤 각별함이 묻어났다. 그 자신이 누린 혜택과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미래의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도. “젊은 학생들에게 제 경험을 조금 더 말해주면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어차피 저와 같은 것을 발견하고 경험하게 될 텐데 미리 알면 시간을 아낄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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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Said:
“디자인은 그림이 주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다.

절대로 그림이 생각을 장악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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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네 살 때 이미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14세 때는 전시장에 놓인 새로운 재규어를 보고 매료돼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다’는 편지까지 재규어에 보냈다. 당시 재규어 부회장은 이 당돌한 소년에게 친절하게 답장을 보냈다. 이언 칼럼은 훗날 이 편지 덕에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려고 했던 마음을 더욱 굳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답장을 보낸 이는 1950년대의 명작인 XK 엔진을 개발한 빌 헤인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차는 오리지널 XJ였다. XJ는 재규어에 영광의 역사인 동시에 오랜 두통거리였다. 오리지널 모델은 24년간 40만대 이상 팔리는 성공을 거뒀지만 후속 모델들은 신통치 못했다. 재규어도 입지가 점점 좁아졌다. 경영 악화로 다른 회사와 합병하거나 매각, 인수되기를 반복하는 질곡의 세월을 보냈다. XJ는 그런 재규어에 남은 거의 유일한 간판 모델이었다. ‘미스터 재규어’ 윌리엄 라이언스 경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상징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재규어는 시장에서 XJ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걸 알아도 섣불리 고치거나 바꾸기 힘들었다. XJ는 그렇게 1968년의 모습으로 41년을 살아가야 했다.

 

 

 

2009년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8세대 XJ(X351)가 모습을 드러낸 건. 그보다 앞서 선보인 XK나 XF를 통해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을 거란 짐작은 있었다. 하지만 XJ의 디자인 변화는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네 개의 헤드램프도, 거기에 따라 날카롭게 그어진 네 가닥의 보닛 주름도, 호(弧)를 그리며 차체 측면을 파고든 캐릭터 라인도 온데간데없었다. 모두가 변화의 칼자루를 휘두른 이언 칼럼의 입을 주목했다. “1961년에 재규어 마크 X 세단이 선보였어요. 네 개의 헤드램프가 달린 모델이었죠.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스타일이었고 재규어는 그걸 따랐던 거예요. 이전 재규어는 싱글 헤드램프를 썼었죠. 그때 친구 아버지가 했던 말을 아직 기억합니다. ‘이건 재규어가 아니야. 너무 달라 보이잖아.’ 오리지널 XJ가 처음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마크 시리즈하고 너무 다르게 생겼는데? 전혀 재규어 같지 않아.’ 하지만 XJ는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스타일은 40여 년간 유지됐습니다. 우리는 시대에 맞춰 계속 발전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 지금의 XJ는 21세기에 맞는 차입니다. 오리지널 XJ가 당시의 최고로 꼽히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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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Said:
“무언가를 봤을 때 이게 왜 좋은지, 왜 사랑받는지를 고민해본다. 그러면 명확한 나만의 가치관이 생기게 마련이다.

결국 그 느낌을 포착해 영감을 얻는다. 신형 XJ는 그때 당시

정말 색다르고 특별했던 오리지널 XJ의 가치를 살려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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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포드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한 그는 1999년 재규어에 합류했다. 조프 로손의 뒤를 잇는 수석 디자이너로서였다. 이언 칼럼은 전임자가 이미 완성해둔 클래식한 스타일의 작업물(X 타입과 S 타입)이 시장에 선보이는 걸 조용히 지켜봤다. 그러면서 변화의 밑그림을 그리고 일련의 콘셉트카를 통해 시장 반응을 살폈다. 2003년의 R-D6와 2007년의 C-XF 콘셉트카가 그것이었다. 뒤이어 XK(2006년)가 등장하고 XF(2008년)가 출시됐다. 2009년의 XJ는 정체됐던 재규어의 디자인 변혁을 매듭짓는 첫 번째 마침표였다. 그는 8세대 XJ 출시 당시 영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재규어 세 종류(XK, XF, XJ)를 세상에 내놨습니다. 이는 10년 전부터 구상해온 비전입니다.”

그가 구상한 21세기 스타일의 재규어는 성공적으로 시장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60년대에 마크 X나 최초의 XJ가 선보였을 때와 같은 저항도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다. 새로운 스타일, 새로운 시도에 대한 당위가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F 페이스 콘셉트카를 그렸을 때가 딱 그랬습니다.” 이언 칼럼이 2년 전을 떠올리며 말했다.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정말 대단했어요. 대체 어떤 권한이 있길래 재규어가 SUV를 만드는 거지? 브랜드 철학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나? 그냥 재규어 스타일이 아니야! 그때 전 이렇게 말했죠. ‘윌리엄 라이언스 경이 아직 살아 있다면 이미 하나 만들었을걸!’ 모두가 수긍하더군요.”

 

 

 

창업자 윌리엄 라이언스 경이 이끌던 시절, 재규어는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화려한 족적을 여럿 남겼다. 전성기의 시작은 1949년 처음 소개된 더블오버헤드 캠 설계의 직렬 6기통 XK 엔진이었다. 1949년 시속 213.4킬로미터로 세계 최고속 양산차 기록을 세운 XK120을 시작으로 XK 엔진은 무려 40년 동안 재규어 차의 심장으로 활약했다. 1950년대의 르망 24시간 레이스는 재규어를 위한 무대였다. 1951년 XK-120C와 1953년 C 타입 경주차의 우승에 이어 강화된 XK 엔진과 에어로다이내믹 보디, 디스크 브레이크로 무장한 D 타입 경주차는 1955~1957년 3년 연속 르망 24시간 우승컵을 차지했다. 1961년의 E 타입은 엔초 페라리로부터 “역대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라는 찬사를 얻어내는 등 당대를 대표하는 스포츠카로 군림했다. 정점은 1968년의 오리지널 XJ가 찍었다. 최초의 XJ는 주행품질, 퍼포먼스, 엔지니어링 등 어느 모로나 시대를 앞서 있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이 아름다운 가운데 힘차고, 우아하면서도 섹시한 XJ의 디자인에 매료됐다.

라이언스 경 시절의 재규어엔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빠르고 아름다웠으며,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혁신적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재규어가 차를 만드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한다. 21세기 들어 재규어를 완전히 뜯어고친 이언 칼럼조차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마다 “라이언스 경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정도로. “사실 그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저도 잘 몰라요. 다만 라이언스 경이 차를 만들었을 당시가 어땠을지 생각해보는 거죠. 그때 그 차는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나왔구나, 하고 살피다 보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많거든요. 세부적으로는 책을 쓸 정도로 이야기가 많겠지만 기본적인 골자는 같습니다. 시대적인 배경과 결과물,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했던 판단이죠.”

라이언스 경이 초창기 재규어를 지배한 인물이었다면, 이언 칼럼은 21세기의 재규어에 없어선 안 될 인물이다. 그래서 우려도 적지 않다. 라이언스 경의 마지막 작품(오리지널 XJ)이 40여 년간 재규어를 지배한 것처럼 이언 칼럼이 세운 새로운 스타일이 향후 수십 년간 재규어를 지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말이다. 어쩌면 이미 시작됐는지 모른다. 2세대 XF와 XJ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이전 세대의 제품과 디자인에 있어 큰 차이가 없다. 디자인이 보수화돼 가고 있단 얘기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예전엔 지나치게 오랫동안 보수화돼 있었기 때문에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몇 년 전만큼 커다란 변화는 아니겠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해갈 겁니다. 저는 이미 새로운 세대의 재규어를 작업하고 있고, 그 차가 나오면 분명 변화가 일어났구나 하고 느껴질 겁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변화가 있든 차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겁니다.”
미의 기준은 시시때때로 달라진다. 하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달라지지 않는 절대적인 미의 기준도 분명 존재한다. 흔히 황금 비율이라 말하는 균형미의 얘기겠다. 이언 칼럼 역시 재규어의 아름다움은 비율에서 비롯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과연 재규어가 가장 재규어답게 보이는 비율은 무엇일까? 재규어만의 황금 비율이라는 건 정말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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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Said:
“나는 과거의 요소를 현대적인 디자인에 녹여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게 영국차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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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율은 제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디자인 철학입니다. 사실 그 철학은 재규어로부터 배운 것이에요. 오리지널 XJ가 나왔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너무 감동한 나머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멋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하게 됐는데 그 결론이 비율이었지요.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비율을 중요하게 생각하겠지만 재규어의 비율엔 좀 더 특별한 게 있습니다. 라이언스 경의 작품을 보면 거의 모든 차의 비율이 과장돼 있습니다. 캐리커처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과장된 가운데에도 아름다운 비율만큼은 어김없이 지켜집니다. 이 비율 때문에 차가 더 흥미롭고 재미있어 보이고요. 재규어만의 비율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매우 긴 이야기예요.”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이미 지난 터였다. 재규어 비율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그를 밤새 붙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인터뷰가 끝나면 한국에서 그의 공식 일정도 끝이다. 브랜드 홍보대사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비로소 자신의 본업인 디자이너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도 바로 디자인이에요. 지금 큰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하고 있거든요. 영국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디자인 스튜디오로 가야 합니다. 제가 떠나오기 전에 디자이너들에게 시켜놨던 작업이 얼마큼 진행됐는지 확인한 뒤 2~3일 심도 있게 작업할 예정입니다. 다시 인도로 가야 하는데 그 전까지는 계속 디자인 스튜디오에 머물면서 그 프로젝트에 대한 방향성을 논의할 겁니다.”

 

 

 

누가 봐도 재규어
심플한 표면과 창의적인 디테일, 절제된 라인과 균형 잡힌 비율은 재규어 디자인의 상징이 됐다.

 

큰 프로젝트? 방향성? 대체 영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챙겨야 할 만큼 중요한 ‘그 프로젝트’란 무엇일까? 설마 코드네임 X352로 알려진 차세대 XJ? 그로부터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었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가 무엇이든 이것만큼은 분명했다. 또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 미래의 재규어는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아름다울 거란 사실 말이다. 김형준

 

 

 

 

THE MAN BEHIND JAGUAR
재규어 디자인 디렉터는 이런 사람이었다
1 영국 중부 워릭에 살고 있다
이언 칼럼은 지금 영국 코벤트리 남부에 있는 워릭에 살고 있다.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약 160킬로미터 떨어진 코벤트리는 재규어 본사가 있는 곳이다. 그는 코벤트리와 인연이 깊다. 코벤트리 대학에서 운송디자인을 배웠다.
2 1968년형 로버 미니를 종종 탄다
그는 여덟 대의 차를 갖고 있다. 출퇴근할 때 주로 타는 차는 재규어 F 타입. 직접 운전하는 걸 누구보다 즐긴다. 클래식카도 몇 대 갖고 있는데, 1968년형 로버 미니는 요즘도 종종 탄다. 구형 미니는 그가 좋아하는 차 중 하나다.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도중 미니 얘기가 나오자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했다.
3 일상에서 요즘 최대 관심사는 집 짓기다
워릭에 새로운 집을 짓고 있다. 여덟 대의 차를 세울 수 있는 넓은 차고가 있는 집이다. 시간이 날 땐 틈틈이 계단을 어떤 모양으로 할지 스케치하고 있다.
4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한국에 오기 전날 갑자기 식단을 채식 위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영국에서 함께 온 홍보 담당자가 채식주의자여서 자신의 식단도 채식 위주로 바꾼 것이다. 실제로 그는 고기를 좋아한다. 방한 기간에도 고기를 향한 욕망까지 완전히 감추진 못했다. 둘째 날 점심, 양고기 파스타를 맛있게 먹었다는 후문이다.
5 권위적이지 않다
‘자동차 회사 임원이라면 가까이 다가가는 게 어렵지 않을까?’ 기우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갔고, 직원들과도 자유롭게 얘기했다. 스토커처럼 졸졸 따라다니던 내게도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호텔에선 먼저 내려와 직원을 기다리기도 했다. 기자들과 인터뷰할 때 농담을 던질 만큼 유머도 넘쳤다.
6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입술을 앞으로 내밀며 ‘푸’ 하는 소리를 낸다
기자들과 인터뷰 자리에서다. 대답하기 곤란하거나 어려운 질문을 받을 땐 입술을 앞으로 내밀며 ‘푸’ 하는 소리를 냈다. 세 번쯤 이런 모습을 봤는데 “디자이너로서의 꿈이 뭔가요?” “앞으로 자동차 디자인 흐름이 어떻게 될까요?” “재규어의 미래 디자인은 어떻게 바뀔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다. 서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