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1년 중 중고차 시장이 가장 호황인 때다. 성과급과 명절 보너스, 연말정산 세금 환급 등 직장인에게 목돈이 생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기아 레이의 인기가 높다. 이유야 따져보면 여러 가지지만 가장 큰 이유는 통학이다. 3월 신학기를 맞아 엄마가 아이를 태우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용도로 많이 찾는데 넓은 실내 공간과 깜찍한 디자인으로 겸사겸사 세컨드 카 목적까지 충족한다. 실제 데일리카로 중형 세단을 타고 레이를 주말 레저용으로 찾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구석구석 경차지만 실내 곳곳에 작은 수납공간을 마련해 실용성과 편의성을 끌어올렸다. 어느 곳 하나 버릴 게 없다.

 

 

레이의 서막
2008년 초 엠넷의 <오프 더 레코드>라는 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병행 수입된 닛산 큐브를 끌고 나오기 전까지 국내에 박스카는 생소했다. 큐브는 방송을 통해 ‘효리 카’라는 별명을 얻어 화제가 됐고 2011년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됐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모닝의 플랫폼과 카파 엔진을 공유한 국내 최초의 박스형 경차 레이도 출시됐다.

레이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호불호가 갈렸다. 디자인도 낯설었고 경차인데 실내가 넓다는 말도 믿기지 않았다. 가격도 경차에 기대하는 것보다 높은 편이었다. 기아는 레이를 출시하면서 ‘작은 패밀리카’로 포지셔닝했다. 당시 국내 소비자들은 패밀리카로 작은 차를 탄다는 것에 꽤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하지만 4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소비자는 레이를 받아들였다. SK엔카 장한평 직영점 이상원 대리의 말에 따르면 레이는 주로 여성 고객이 많이 찾으며 항상 매물 조회 수 상위 10위 안에 드는 인기 차종이라고 한다.

레이를 막상 타보면 선입견과 달리 깨알 같은 매력들이 발견된다. 공간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어 실용적이고 심지어 운전 재미도 있다. 무게가 가볍고 자세제어장치가 기본으로 장착돼 빠르고 짜릿하다는 시승담도 여럿이다. 심지어 골프장 주차장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경험담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신차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 효과는 곧 중고차 시장으로 연결됐다.

 

 

 

어엿한 5인승 차 B필러를 없애 실내 공간을 극대화했다.

 

 

시트를 꼼꼼하게 체크해야
국내에서 경차로 인정받으려면 배기량 1.0리터 미만에 길이 3600, 너비 1600, 높이 2000밀리미터 이하여야 한다. 레이는 길이 3595, 너비 1595밀리미터로 각각의 기준보다 딱 5밀리미터 안 되게 맞췄고 높이는 1700밀리미터로 설계했다. 경차인데 승차 정원은 5명이다. B 필러가 없는 박스형 모델이라 실내가 개방적이고 다양한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 이 부분이 다른 경차와 다른 점이다. 2열 시트를 6:4로 나눠 3명이 타고 짐을 넉넉히 실을 수 있다. 2열을 모두 접으면 밴이 된다. 1열도 조수석을 접을 수 있어 스노보드 같은 긴 물건을 실을 수 있다. 그래서 레이는 중고차를 고를 때 시트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딜러에게 전 차주의 라이프스타일을 물어보고 예상되는 오염 부분, 시트가 접히는 면의 마모도, 시트 레일 등을 면밀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안전벨트 버클이 잘 안 물리는 경우도 있으니 이 또한 제대로 작동하는지 봐야 한다.

 

 

 

슈퍼비전 클러스터 레이의 실내는 옵션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된다. 슈퍼비전 클러스터 역시 선택 사양으로 TFT LCD 화면에 주행에 필요한 정보를 보여준다.

 

 

애매한 가격
중고차 시장에서 레이의 가격은 다른 경쟁 경차보다 약간 높은 1000만원 안팎이다. 주로 2013년형에 주행거리는 2만 킬로미터 정도다. 경차는 근거리용으로 타는 차라 다른 중고차에 비해 주행거리가 짧다. 일반적으로 4만 킬로미터 이하의 차를 권한다. 1000만원이면 괜찮은 옵션이 달린 레이를 살 수 있는데 현대 아반떼 MD와 중고 가격대가 겹친다. 물론 레이의 조건이 더 낫다. 10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아반떼 MD는 주행거리 6만~7만킬로미터, 연식은 2011년~2012년형이다. 굳이 경차가 아니라면 소형 세단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한다. 그런데 다시 마음을 레이로 돌려서 오면 기아 모닝이 있다. 꽤 괜찮은 조건의 모닝은 900만원이면 여유롭게 고를 수 있다. 밴도 마찬가지다. 레이 밴의 중고 가격은 900만원 선인데 다마스는 700만원이다. 밴은 보통 회사에서 상용차로 사용하기 때문에 비용 절감이 최우선이다. 일반 레이도 2열을 다 접으면 밴처럼 쓸 수 있는데 굳이 레이 밴을, 그것도 중고로 살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래도 디자인 때문에 찾는 사람이 간혹 있다고 한다. 중고 가격에서만 보면 레이는 경쟁 상대가 꽤 많다. 레이를 중고차로 사려면 ‘난 반드시 레이, 레이 아니면 안 됨’이여야 살 수 있겠다.

 

 

 

 

그 밖의 소소한 구매 팁
현재 레이 신차는 총 10가지 색을 고를 수 있다. 기아차에 따르면 고객이 가장 많이 찾는 색은 순백색으로 총 30퍼센트를 차지하고 다음으로 미드나잇 블랙, 3위는 은빛 실버라고 한다. 그런데 중고차 시장에서는 은색 레이가 가장 인기가 없다. 외모에 걸맞게 하늘색이나 붉은색, 노란색 등 톡톡 튀는 색깔이 인기다. 차를 살 때 색상이 중요한 구매 요인이 아니라면 은색 레이를 추천한다. 같은 조건에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매물이 나올 때도 있다.

경차라고 해서 연비가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레이의 복합연비는 리터당 13.5킬로미터고 터보 모델도 비슷한 리터당 13.2킬로미터다. 차가 아무리 가볍고 배기량이 작아도 박스카의 외모 특성상 공기저항이 커 경차에 기대하는 연비에는 못 미친다.

2011년~2012년형은 팬벨트가 교체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기간에 생산된 레이는 팬벨트에 결함이 생겨 당시 무상교환 캠페인을 벌였다. 지금도 논란이 되는 MDPS 결함과 관련해 기아차는 일부 모델에 한해 MDPS 커플링 무상 교환을 해주고 있는데 아쉽게도 레이는 제외다. 레이에서도 간혹 운전대가 잠기는 위험한 현상이 발생했다. 구매 전 반드시 시승해볼 것을 권한다.

<모터 트렌드> 박규철 편집위원은 작은 차 예찬론자로 실제 레이 터보를 데일리카로 몰고 있다. 그에게 레이의 매력을 물었다. “가장 큰 희열은 주차할 때 옵니다. 중형 세단이나 SUV가 못 대는 공간은 레이의 것이죠. 난 평소 무게중심을 낮추기 위해 시트를 모두 접고 최고속도까지 밟으며 다녀요. 고속도로에서 웬만한 차들은 나를 못 따라옵니다. 고속으로 달리면 마주 오는 바람 때문에 차가 많이 흔들리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차를 바라기보다 차를 살살 달래가며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또 운전의 묘미지요. 레이는 크기, 성능, 기능 모든 면에서 나를 만족시키는 반려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