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성적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자동차 회사 얘기다. 한 해를 마무리한 회사들이 공시 의무에 따라 2015년 실적을 공개했다. 최종 기록만 보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별일 없이 흘러간 듯 차분하다. 하지만 분기별 기록을 보면 약간의 부침도 보인다. 긍정적인 외부 요인으로 순항한 곳도 있고, 부정적인 내부 요인에 발목을 잡힌 곳도 있다. 모두 감소세일 때 성장한 브랜드도 있고, 막판에 스퍼트를 내 체면을 세운 브랜드도 있다. 여기 길었던 1년의 짧은 기록을 소개한다.

 

 

1st QUARTER 2,520,000

불안한 1등
토요타가 1분기부터 앞서나갔다. 다만 폭스바겐과 3만대 차에 불과해 아슬아슬했다.

 

2nd QUARTER 5,040,000

선두 탈환
폭스바겐이 무서운 기세로 쫓아오더니 결국 토요타를 누적판매 2만대 차이로 앞서나갔다.

 

 

 

3rd QUARTER ?

응? 뭐지?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가 터진 3분기. 판매량이 폭락한 건 별일 없던 현대·기아다. 웬일인지 11.4퍼센트나 주저앉았다.

 

4th QUARTER 28.5%

뒷심 폭발
GM은 269만대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뒷심을 발휘했다. 물론 3분기 대비 28.5퍼센트나 판매량이 늘어난 현대·기아도 있다. 숫자에 집착하지 않겠다더니.

 

 

 

셀프 위기
폭스바겐은 기어코 2014년 세계 1000만대 판매를 달성하고 말았다. 당초 목표보다 4년을 앞당긴 성과였다. 2015년이 돼서도 기세는 꺾일 줄 몰랐다. 1분기를 토요타에 3만대 뒤진 249만대로 마감한 폭스바겐은 2분기에 255만대를 팔아 누적판매 504만대를 기록했다. 502만대의 토요타를 결국 2만대 차이로 앞질렀다. 하지만 9월 18일(미국 현지 시간) 미국환경보호청에서 폭스바겐이 디젤엔진 배출물 조작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심었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폭스바겐의 조직적인 사기극으로 드러나며 신뢰도가 급락했다. 3분기와 4분기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4퍼센트, 6.6퍼센트 하락했다. 끝내 1000만대를 넘기지 못한 993만대로 마무리됐다.

 

 

 

한 지붕 두 가족
닛산이 재정위기를 겪던 1999년 르노가 지분 투자로 손길을 내밀며 둘의 동행이 시작됐다. 2012년엔 세계 800만대 판매를 돌파하며 모범적인 협력 관계를 자랑했다. 하지만 닛산과 함께 르노의 공동 최대주주였던 프랑스 정부가 지난해 5월 지분율을 15퍼센트에서 19.7퍼센트로 늘리자 갈등이 불거졌다. 닛산은 신주 발행으로 43.4퍼센트인 프랑스 정부의 자사 지분율을 40퍼센트 미만으로 끌어내리고 자사의 르노 지분은 25퍼센트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의결권 확보 때문이다. 이렇게 파열음이 들리는 동안에도 둘은 지난해 822만대를 판매했다. 전년 대비 2.5퍼센트, 3년 전보다 9.7퍼센트 성장했지만 추이가 더디다. 그나마 카를로스 곤 회장의 장악력 덕이라는 평이 많다. 그의 임기는 2018년까지다.

 

 

 

약속의 12월
현대차그룹에게 2015년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전년 동기 대비 1분기부터 -3.2퍼센트로 시작하더니 2분기 -1.7퍼센트, 3분기 -3.2퍼센트 등 줄곧 뒷걸음질만 쳤다. 특히 3분기는 2분기에 비해 11.4퍼센트 떨어진 178만대 수준까지 내려갔다. 목표치였던 820만대는커녕 800만대 달성도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현대·기아는 4분기에 승부를 걸었다. 3분기 대비 28.5퍼센트나 판매량을 늘리며 결국 801만5745대로 마무리한 것이다. 특히 12월이 화려했다. 82만4499대나 팔아치웠다. 당시까지 월간 최다판매 기록이던 2014년 12월의 75만5406대보다 8.7퍼센트 높은 수치다. 아울러 지난해 월 평균 판매량과 비교하면 무려 17만750대나 많이 팔았다. 아무리 12월에 자동차 수요가 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수혜를 누린 건 현대·기아뿐이다.

 

 

 

차분히, 무리 없이
토요타는 2013년 연간 1000만대 판매 달성이 예측됐었다. 하지만 당시 “이미 목표치인 991만대를 초과 달성했다”며 “무리하지 않겠다”고 했다. 최종 성적은 998만대였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1032만대 판매를 목표로 했다. 연말쯤 1000만대 초과는 기정사실이 됐고 목표 달성 여부가 관심을 끌었다. 토요타는 이번에도 “무리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세계 최초 1000만대 판매 달성에 의미를 두며 1023만대로 마무리했다. 지난해에는 어땠을까? 연초 목표로 제시했던 1015만대를 딱 맞췄다. 치밀하게 목표치를 채워나갔던 걸까? 아니다. 애초에 목표치를 전년 대비 0.8퍼센트 낮게 잡았다. 토요타는 분기별 실적 기복도 가장 적은 회사다. 이번에도 역시 무리하지 않았다.

 

 

 

사두용미
GM은 지난해 1분기를 240만대로 시작했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토요타, 폭스바겐과의 차이가 10만대 전후로 벌어졌다. 2분기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42만대 수준으로 판매량을 늘렸으나 상위 제조사들과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는 3분기부터 찾아왔다. 폭스바겐이 -6.3퍼센트, 르노닛산이 -5.2퍼센트, 현대·기아가 -11.4퍼센트씩 판매 저하를 겪던 와중에 -3.5퍼센트 하락으로 선방한 것이다. 이에 반등한 GM은 4분기에는 약 269만대까지 치고 올라갔다. 모든 제조사를 통틀어 지난해 분기 최대 판매량을 달성한 거다. 3분기까지 누적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약 3퍼센트 하락했던 GM은 갈수록 힘을 내 결국 연간 최다 판매인 984만대를 기록했다.

 

 

 

어두웠던 과거, 밝아올 미래?
쉽지 않은 한 해였다. 5대 자동차회사 모두에게 그랬다. 2015년 성적을 2014년과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업계 1, 2위를 다투는 토요타와 폭스바겐의 판매량은 각각 0.8퍼센트와 2.1퍼센트 떨어졌다. 3위부터 5위까지 차지한 GM과 르노닛산, 현대·기아는 그나마 증가세이긴 하다. 하지만 각각 0.2퍼센트와 0.7퍼센트, 0.1퍼센트 성장에 그쳤다. 아주 소소(小小)한 증감으로 소소(so-so)한 기록만 남긴 셈이다. 그런데 그럴 만한 해였다.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기관 LMC 오토모티브는 지난해 세계 자동차 수요를 중대형 상용차 포함해 모두 9081만4000여 대 규모로 추정했다. 9043만7000여 대로 집계된 2014년과 비교해 0.4퍼센트 정도 성장에 그치고 말았다. 북미와 서유럽, 인도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자동차 시장에 한파가 불어닥쳤다. 특히 러시아와 브라질 시장의 감소폭이 컸다. 각각 35퍼센트와 26.6퍼센트 하락했다.

다행히 올해는 전망이 밝다. LMC 오토모티브는 올해 자동차 수요를 9463만7000여 대로 예상했다. 중대형 상용차를 포함한 규모인데 전년 대비 4.2퍼센트 커질 거라 관측했다. 미국과 서유럽은 경기 회복세가 지속돼 수요가 소폭 늘어날 것으로 봤다. 중국은 1600cc 이하 소형차 취득세가 10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인하되고, 도시 개발이 계속 진행돼 구매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8.6퍼센트 확대를 예상했다. LMC 오토모티브는 러시아와 브라질도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근거가 빈약해 신뢰하기 어렵다. 유가와 원자재값 반등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기에 수요 증가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단순히 경기 회복만 더딘 게 아니라 화폐 가치가 떨어져 구매력 회복이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중대형 상용차를 제외하고 러시아와 브라질의 수요가 각각 4.4, 9.0퍼센트 줄어들 것이라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