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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는 왜 포뮬러 E를 선택했나?

재규어가 모터스포츠 복귀로 포뮬러 E를 선택했다. 복잡 미묘한 결정이지만 따져보면 얄미울 정도로 합리적이고, 그래서 기대감은 더욱 크다

2016.02.02

 

지난해 12월 15일, 해외 모터스포츠 관련 뉴스를 장식한 건 재규어의 모터스포츠 복귀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재규어와 랜드로버의 멋진 새 차와 그에 따른 판매 성공 기사를 보면서 가장 기다리던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2013년, 스포츠카인 F 타입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부활을 알린 재규어에 모터스포츠는 심장과도 같은 분야이기에 기대는 더욱 컸다. 그런데 이들이 진출하려는 분야는 충격적이게도 포뮬러 E다. 2013년 말에 시작해 이제 겨우 두 번의 시즌을 치르는, 모터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생소한 분야다. 많고 많은 모터스포츠 중에서 ‘왜 하필이면?’이라는 의문은 당연하다.


재규어는 레이싱 헤리티지를 간직한 브랜드다. 특히 1990년 르망 24시 우승으로 일곱 차례나 르망을 휩쓸었다. 하지만 이후 모터스포츠에서 이름을 감췄다. 물론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포드 그룹 산하에 있던 시절 F1 그랑프리에 재규어 레이싱 팀이 참가하긴 했다. 하지만 재규어의 기술이 아닌 코스워스-포드 팀에 재규어의 이름을 붙인 수준이었고, 에디 어바인과 마크 웨버 같은 뛰어난 드라이버가 있었는데 포디엄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재규어 입장에서는 직접 레이스에 나가 겨룬 것도 아닌데 수모를 뒤집어쓴, 그야말로 의문의 1패를 당한 셈이었다.


2000년대 초반 이런 일을 겪으며 와신상담(臥薪嘗膽), 기회를 엿보던 재규어가 판매가 늘어나고 새 차도 거의 나온 이 시점에 헤리티지를 되살리기 위해 모터스포츠로 돌아가려는 건 당연하다. 다만 시기와 분야에서 온갖 추측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F 타입 쿠페로 GT 경기에 나설 것이다’ ‘르망 24시에 복귀하는 게 브랜드 헤리티지에 가장 잘 어울린다’ ‘F1에 참가하는 윌리엄스 팀하고 친하다던데, 설마 F1에서 복수전을?’ 등등. 그런데 막상 발표는 포뮬러 E라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답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 포뮬러 E 출전을 발표한 재규어 랜드로버의 닉 로저스 엔지니어링 디렉터는 “자동차 업계에서 앞으로의 5년은 지난 30년보다 훨씬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세월의 레이스 헤리티지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는 말이다. 특히나 전기차가 재규어 랜드로버의 미래 제품군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은 물론이고, 포뮬러 E를 통해 새로운 기술 개발은 물론 이를 극한의 상황에서 테스트하게 될 것이라며 굉장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물론 전기차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이고, 테슬라 모델 S의 성공과 지난해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사건 이후 확장세를 키운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재규어 랜드로버는 고유의 제품 포트폴리오 때문에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서라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재규어와 랜드로버 모두 ‘프리미엄’을 공통으로 추구한다. 재규어는 고출력 스포츠카와 중대형 세단 위주의 라인업이, 랜드로버는 중형급 이상의 묵직한 SUV들로 구성된 라인업이 ‘친환경’이라는 추세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게 결정적인 문제다. 소문만 무성한 재규어 해치백이 브랜드 가치 때문에 현실화되기 어려운 것도 전기차가 힘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벤츠가 A와 B 클래스 같은 소형 해치백으로 프리미엄 브랜드의 소형화를 열기는 했지만 재규어는 그런 차를 개발해본 경험도,  재규어 배지를 단 해치백을 사줄 고객도 없다.


그래서 전기차는 묘수다. 특히나 테슬라 모델 S가 나온 이후 크고 고급스러운 전기차도 승산이 있다는 게 입증됐다. 테슬라 모델 S는 ‘특이하고 신기한 전기차’가 아니라 ‘잘 만들어진 럭셔리 자동차’였기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렇게 한번 뚫린 길을 따라 가는 건 어렵지 않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포르쉐의 미션 E 콘셉트카를 떠올려보라. 제한된 주행거리나 이질적인 운전 감각에 거부감이 없고, 고급스러운 내외장과 비싼  값을 받아주는 소비자가 있는 브랜드라면 전기차는 당연히 도전할 분야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재규어가 들어가야 할 시장은 당연히 전기차다.


물론 그룹 안에서 전기차가 가장 급한 브랜드는 랜드로버다. 그래서 지난해 9월, 랜드로버는 ‘콘셉트 e(Concept e)’라는 이름으로 세 가지 전기차 플랫폼을 발표했다. 레인지로버 이보크에 얹은 마일드 하이브리드(MHEV)는 3기통 디젤 엔진과 48볼트 전기모터를 연결했고, 레인지로버 스포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는 2리터 휘발유 엔진과 350볼트의 전기모터를, 플랫폼만 공개된 100퍼센트 전기차 플랫폼(BEV)에는 두 개의 350볼트 모터와 70킬로와트시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얹었다. 현재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전기차 관련 파워트레인을 공개한 것이다. 시작은 랜드로버였지만 2018년 재규어의 F 페이스에 전기 파워트레인을 얹는 모델이 더해질 것이라는 소문을 보면 모델 전체에 전기차가 확장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첫 출전이지만 레이스 성적도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재규어 랜드로버에는 윌리엄스 어드밴스드 엔지니어링(Williams Advanced Engineering)이라는 믿음직한 파트너가 있다. 동명의 F1 팀의 한 부분인 이 회사는 재규어와도 인연이 깊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007 스펙터>에서 악당의 차로 나와 유명해진, 하이브리드 하이퍼카의 시작과 같은 C-X75를 재규어와 공동으로 개발했다. 4기통 1.6리터 터보+슈퍼차저 엔진과 두 개의 모터를 활용한 파워트레인은 다섯 대의 프로토타입을 통해 내구성과 시스템의 안정성을 입증했다. 이 과정에서 재규어와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윌리엄스 어드밴스드 엔지니어링은 포뮬러 E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첫 시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경주차에 200킬로와트시 급의 배터리팩을 공급하고 있다. 전기차의 성능은 배터리의 용량과 모터의 성능뿐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시스템을 운영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는데, 2년 동안 열 번의 경기를 치르며 총 48대의 경주차에 배터리를 공급한 윌리엄스에게 얼마나 많은 노하우가 쌓여 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더욱이 2015~2016 시즌부터 모터 등 주요 파워트레인을 각 팀에서 제작해 사용하는데, F1의 회생에너지 제어 시스템(KERS)을 만드는 윌리엄스의 기술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첫 모터스포츠 복귀전을 치르는 재규어 입장에서는 꽤나 든든한 지원군인 셈이다.


포뮬러 E 출전은 실제 판매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포뮬러 E는 매해 가을 시작해 다음 해 6월이나 7월까지 아시아와 유럽은 물론 북미와 남미 등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열 번의 경기를 치른다. 소음과 배출가스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전용 경기장이 아닌 도심 한복판에서 열려 사람들의 관심도 높다. F1 그랑프리에서 이름을 알린 자크 빌르너브, 넬슨 피케와 브루노 세나 같은 드라이버도 포진해 있다. 특히 매해 첫 경기의 시작은 중국 베이징으로, 재규어의 가장 큰 시장이기도 하다. 단일 팀으로 참가하는 재규어 경주차가 이곳을 달리면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WEC보다 더 큰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자동차는 우리가 창조한 것 중 살아 있는 무언가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재규어 창립자 윌리엄 라이언스 경의 말이다. 단순한 기계를 넘어 살아 숨 쉬는 생명체 같은 차를 만들어온 재규어가 전기차 레이스에서 어떤 맹수로 나타날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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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Photo 전호석(일러스트레이션) 출처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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