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로체리아의 존재가 희미해진 건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부터다. 자동차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디자인 부서를 크게 부풀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카로체리아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3대 카로체리아로 불리던 이탈리아의 피닌파리나와 이탈디자인, 베르토네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이탈디자인은 2010년 5월 람보르기니에 지분 90.1퍼센트를 매각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베르토네는 2014년 6월 최종 부도 처리돼 법인 정리 절차를 밟고 소멸됐다.

페라리 디자인으로 유명한 피닌파리나는 자산을 매각하고 투자를 받으며 10년 연속 적자에도 간신히 버텨나갔다. 그러다 피닌파리나는 2015년 12월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과 인수에 합의하고 정식으로 절차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이번 인수는 마힌드라&마힌드라와 IT 사업을 벌이는 계열사 테크 마힌드라가 각각 4:6의 지분을 갖는 합작투자사에 의해 이뤄진다. 피닌파리나의 지분은 현 대주주인 핀카의 지분 100퍼센트, 총 지분의 76.06퍼센트를 주당 1.1유로에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총 규모는 2530만 유로 수준이다.

아난드 마힌드라 마힌드라&마힌드라 회장은 “피닌파리나는 테크 마힌드라의 엔지니어링 서비스 사업 영역에 엄청난 가치를 더할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피닌파리나의 고급화되고 수준 높은 디자인 신뢰도가 마힌드라 그룹 전체의 디자인 역량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IT 기업인 테크 마힌드라의 시너지를 콕 집어 얘기한 거다. 사실 인수 주체가 테크 마힌드라 쪽에 기울어 있긴 하다. 때문에 굳이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산업디자인은 물론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과 설계에서 피닌파리나의 역량이 빛을 발해온 건 맞다. 하지만 피닌파리나의 실력은 누가 뭐래도 자동차에 가장 특화돼 있다. 그 말은 곧 같은 마힌드라&마힌드라의 회사로 편입된 쌍용차가 이번 M&A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단 얘기다. 실제 자동차와 농기계 부문이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쌍용차 내 기대도 컸다. 한 관계자는 “회사에서도 상당히 기대하고 있죠. 내부적으로 어떻게 정리할지 모르겠지만 자동차 디자인 역량이 계열 자동차 제조사에까지 영향을 미쳐 시너지를 낼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주가로 드러난 외부의 시선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인수 발표가 있던 지난해 12월 14일 피닌파리나의 주가는 4.20유로로 시작했으나 1.31유로까지 떨어졌다. 그 후 이틀간 1유로 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1월 15일 마감 기준으로 2.95유로에 머물러 있다.

아무튼 피닌파리나가 마힌드라&마힌드라에 인수되더라도 직원들과 이사회 의장은 그대로 이어가기로 했다. 되도록 피인수 기업의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의 방침이 피닌파리나의 미래를 어디로 이끌지 무척 흥미로워진다.
 

 

 

첫술에 배부르랴
피닌파리나와 한 식구가 됐지만 쌍용차 디자인이 당장 달라지진 않을 거다. 기초부터 다지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도 엔진의 시대다
자동차는 문명의 방향을 바꿨고 생활 영역도 크게 확대시켰다. 성생활 같은 개인적인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고, 소비자 권리 신장을 견인하기도 했다. 화석연료를 쓰지만 역설적이게도 환경보호론자의 상징이 된 적도 있다. 그렇게 현재를 달리면서도 미래를 향해 가는 지표가 됐다. 폴 인그래시아가 쓴 <엔진의 시대>에는 자동차와 문화사의 컬래버레이션이 총 15개 대표 모델을 통해 낱낱이 기록돼 있다. 미국 중심의 이야기라 낯선 면도 있지만 시대와 지역을 넘어 지금의 우리와 부합하는 지점이 있어 나와 내 주변을 관찰하는 느낌도 든다. 마치 문화사적인 자동차판 <응답하라>처럼. <엔진의 시대> 사이언스북스, 2만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