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 <Untitled>
최근 한가람미술관에서 본 마크 로스코 전시의 마지막 작품을 목도한 기억이 선명하다. 그림 속에는 분명 창작에 목숨을 걸고 고통을 짊어진 작가의 애환이 있었다. 로스코의 생애를 더듬어볼 때, 그리고 나 역시 한 사람의 작가로서 동병상련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실제로 내 작품 중에는 그를 그리며 완성한 <로스코를 위하여>라는 옻칠 작품이 있다. 작업실 서재 한쪽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힌 로스코의 작품집을 보며, 와인 한잔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낙이다. 이왕이면 그의 작품 <Untitled>와 꼭 닮은 레드 와인이면 더 좋다. 허명욱(공예가이자 수집가) 

 

 

프랜시스 베이컨 <3부작>
어떤 그림을 볼 때 술을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치 ‘진공 상태’에 있는 것처럼 생각이 텅 비워지는 것이다. 그러고는 문득 묘한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대학생 시절 처음 알게 된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볼 때 특히 그렇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세 쪽으로 나뉜 그림 ‘트립틱Triptych’을 자주 그렸는데, 그중에서도 강렬한 붉은색의 <3부작>을 감상할 때면 마치 술에 취한 것과 흡사한 경험을 한다. 알딸딸한 기분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프랜시스 베이컨이 주는 충격은 진이나 보드카에 탄산수를 섞어 마실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마영범(인테리어 디자이너) 

 

 

휘종 <상서로운 학> 
술을 잘하진 못한다. 어떤 주종이든 한 모금이면 얼굴이 벌게지니까. 그렇다고 술맛을 모르겠는가. 술을 좀 더 잘 마셨으면 했다. 술을 벌컥벌컥 잘 마셔서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어울리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그냥 수고한 나를 위해 한 잔, 두 잔쯤 마시고 싶다. 궁궐을 찾은 학을 그린 이 그림은 송나라 휘종의 작품이다. 휘종은 송나라 황제로, 예술을 즐겼고 직접 많은 서화를 남겼다. 저 지붕을 바라보며 향기로운 곡주를 한잔하고 싶다. 허윤선(<얼루어> 피처 디렉터이자 <그림과 문장들> 저자)  

 

 

 

 

1 더 스미스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
정말 오랜 나날 동안 반복적으로 들어온 선율이고 가사지만, 여전히 그 감흥은 줄지 않는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친구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싶어진다. 
‘나를 데리고 나가줘, 오늘 밤 / 어디든 좋아. 어디든 상관없어. 관계없어. / 정말정말 집에 가기 싫어. / 어차피 돌아갈 집도 없으니. 가진 집도 없으니. / 절대로 꺼지지 않는 빛. / 절대로 꺼지지 않는 빛이 있는 곳으로.’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조태상(‘모임 별’ 소속 작곡가이자 디자이너)

 

Take me out tonight / where there＊s 

music and there＊s people and / they＊re young and alive (醞楞) / Oh, There is a light and it never goes out / there is a light and it never goes out 

 

 

2 모임 별 ‘빛으로 만들어진 도시’
평소 굉장히 좋아하던 뮤지션 ‘모임 별’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기존 곡인 ‘빛으로 만들어진 도시’의 가사를 조금 바꿔 여자 버전으로 만들고자 하는데, 그것을 내가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주문 사항은 술에 취한 듯이 연기해줄 것. 실제로 술을 마셔도 좋고, 녹음은 아이폰으로 해도 OK. 그때 아마도 나는 필리핀의 한 영화제에 참석 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제안받고 얼마 후, 영화제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호텔로 돌아와 혼자 방에 앉아 있는데 순간 강렬하게 느낌이 왔다. 곧장 녹음을 해서 몇 가지 테이크를 모임 별에 보냈고, 그것이 이렇게나 멋진 곡으로 완성됐다. 김꽃비(영화배우) 

저기 쟤 프랑스 남자 같지? / 어때 내가 쟤한테 말을 걸어서 데리고 와볼까? / 왠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3 백설희 ‘봄날은 간다’
술은 맛있다! 잘 차려진 안주나 분위기 있는 음악 같은 것이 없어도 술은 술술 넘어간다. 그럼에도 나는 술 앞에서 이런 장면을 그리워한다. 어디선가 노래 자락이 들려오는 것이다. 누군가 읊조리듯 부르고 있다. “연분홍 치마~아가 봄바~아람에…” 그곳은 바람 흩날리는 시골 마을의 평상이거나 후미진 동네 골목 구멍가게이거나 시장통 국밥집이거나 할 것이다. 목소리는 흥도 있고 한도 있어 담담할 것이다. 간혹 누군가 곁에서 젓가락 장단도 놓을 것이다. 노래는 흘러 여기까지 간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자, 이제 어쩔 것인가.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운다는데! 술을 마실 것이다. 이런 장면 앞이라면 나는 좀 많이 마실 거다. 양양(뮤지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