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섹스를 좋아해요!”

무심하게 톡 치기만 해도 연이어 쏟아져 나올 말은 아마도 이 말. “왜요? 섹스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안 되나요? 제가 여자라서요?”

여성 페미니스트들에게서 자주 관찰되는 눈망울에 대한 느낌이다. 그런데 섹스에 대해 당당히 말하는 것이 페미니스트들의 기조처럼 보이는 요즘, 그들이 성형수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풍경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섹스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성형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우는 것은 어딘지 어색한 구석이 있다는 얘기다.

 

섹스를 좋아한다는 고백은 성욕의 존재에 대한 자기 인정, 다시 말해 ‘본능에 솔직하겠다’는 선언이다. 물리적 방법을 동원해 외형을 고치는 행위 역시 인간의 본능에서 기인한 것인데, 그렇다면 그 본능에 대해서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성형을‘왜’하는가. 괜찮은 외양을 갖기 위해서다. ‘괜찮다’는 것의 기준은 각 사회마다 시대마다 흐름을 갖는데, 성형 트렌드도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괜찮은 외양을 ‘왜’ 갖고 싶은가. 섹스하고 싶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상대를 직접 골라 섹스할 수 있는‘경쟁력’을 갖추고 싶은 본능 때문이다.

 

성형은 과학 기술이 집약된 화장술의 일종이다. 화장도 성형도 경쟁력 있는 암컷으로 거듭나기 위한 본능적 선택 행위 중 하나인 것이다. 타고난 모습을 영구히 바꾸는‘성형수술’을 택하거나‘메이크업’정도의 임시방편을 택하거나. 혹은‘나의 외형을 물리적 수술로 바꾸면서까지 경쟁력 있는 암컷이 될 생각은 없다’고 결정하는 것은 모두 개인 자유의 영역이다. 반면 타인의 성형수술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며 반대하고 나설 자유 같은 건 그 누구에게도 없다. 페미니즘이‘여성들 스스로 성형을 택하는 현상’의 반대편에 서는 건 심각한 모순이며, 인간 본능에 대한 부정에 해당한다. 

 

‘경쟁력 있는 암컷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편’은 역사 속에 늘 존재해왔다. 인간이 스스로 본능에 의해 끊임없이 여러 방편을 만들어왔고, 현대의 가장 궁극적인 방편은 기술 발전에 힘입은‘성형수술’이 된 것이다. 페미니즘의 핵심 정신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것이니, 이성에게 관능적으로 어필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과 그로 인해 파생한 방편들을 인정하는 것은 페미니즘 철학에도 부합하는 일이 된다.

 

그럼에도‘진정한 페미니스트라면 성형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언제나 있어왔는데, 그들은 남성에게 섹스어필하기 위해 외형을 꾸미는 행위 바탕에 있는 원초적 본능 자체를 인정하기 싫어하곤 한다. 

 

‘이성에게 외적으로 어필해야 한다’는 잣대가 여성에게만 적용된다는 주장도 종종 있는데, 그 역시 맞지 않다. 남자들에게도 관능적인 외양을 가진 경쟁력 있는 수컷이 되고 싶은 본능이 똑같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가부장제 사회에서는‘경제적 능력’이라는 요소가 남성에게 더 강조되니 외양에 치중해야 하는 부담은 여성 쪽에 상대적으로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무게의 차가 있을 뿐 이성에게 외적 관능미를 어필해야 하는 과제는 결코 여성들만의 몫이 아니며, 그렇기에 남자들의 세계에서 ‘잘생긴 남자를 밝히는 여성’은‘돈 많은 남자를 밝히는 여성’만큼이나 자주‘얄미운 속물’로 치부되기도 한다. 

 

여성들만 있는 자리에 갈 때에도 열심히 꾸민다는 것을 근거로 들며‘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는 류의 주장을 펴는 일은 그만두자. 그‘자기만족’이라는 것도 결국 동성 사이에서‘경쟁력 있는 암컷’이 됐다는 무의식적 안위에서 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남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반여성주의적인 선택이 아니다. 

 

내가 아는 페미니스트 여성 중에는 유독 상고머리를 한 이가 많다. 상고머리를 하고 싶어서 한 것은 페미니즘 정신에 부합하지만, 짧은 머리를 원치 않았음에도 여성성에 연연하는 것으로 보일까 긴 머리를 싹둑 자른 경우라면 그건 페미니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다. 

 

짧은 머리든 긴 머리든 화장이든 성형이든,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욕구가 흐르는 쪽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고, 그게 바로 페미니즘의 본질이다. 남성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애써 맞추기 위해 자기 억압을 택하는 것은 나쁘지만, 남성이 정한 기준에 속박되는 것으로 보일까봐 도리어 스스로의 욕구를 억압하는 쪽을 택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

 

답답한 브래지어를 벗든 몸을 조이는 코르셋을 집어 던지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되 페미니즘을 구실 삼아 그 같은 시도에 전체 여성을 동참시키려 들지는 말아야 한다. 목에 주렁주렁 끼운 링의 개수나 전족으로 목이 얼마나 길어지고 발이 얼마나 작아졌는지가 미의 기준이 되는 사회도 아니지 않은가. 

 

더불어 외모지상주의를‘극복’하자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본능을 열심히 거슬러보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미디어의 발달 등 몇몇 요소에 의해 점점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일 뿐, 심미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갈구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나도 섹스를 좋아한다’는 여성들의 선언에 동반되어야 할 것은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자기 욕구에 대한 인정이다. 성형이 됐든 그 무엇이 됐든 그 욕구가 발현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선언하자면, 나는 6초에 한 번씩은 섹시한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지? 

 

about 정소담은 프리랜스 아나운서이자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다. 최근 한 매체에 기고한 ‘여성주의를 주의하라’라는 주제의 칼럼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