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에게 신형 K5는 단순히 새 차 이상의 의미다. 전 세대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한 ‘후속’이라는 점에서 분명 그렇다. 따지고 보면 전작의 콘셉트를 이만큼이나 유지한 기아차는 지금까지 없었다. 1987년 등장한 콩코드 이후로 기아가 선보인 중형차는 크레도스, 옵티마, 로체 등이다. 이들은 매번 새로운 스타일을 내세우며 신선함을 강조했다. 반면 이런 접근 방식은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는 다소 불리했다.

2007년부터 기아자동차는 거센 변화의 물살을 탔다. 제품에 패밀리룩을 구축하고,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적극적으로 살렸다. 폭스바겐 그룹의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며 제품과 브랜드 이미지를 통폐합했다. 결과적으로 2009년 등장한 포르테 쿱부터 이후 등장한 쏘렌토 R이나 K7 등은 한눈에도 기아차라는 인상이 강했다. 이 시점에서 알파벳 K와 숫자를 이용한 작명법으로 새 중형차인 K5가 나왔다.

2010년 등장한 K5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 140만대 이상 판매되며 기아차의 중심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1세대의 목표는 기아차의 미래, 즉 앞으로의 방향 제시였다. 반면 후속인 신형(2세대)은 완숙미를 추구한다. 그래서 기존의 이미지를 다듬는 데 더 힘썼다. 그런 배경에서 신형은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 세대의 감각이 진하게 배어 있다(소식에 따르면, 기아차는 신형 K5의 이런 변화로 독자적인 정체성이 도드라지길 바랐다고 한다).

이번에 등장한 K5는 ‘두 가지 얼굴’ 디자인을 콘셉트로 한다. 프런트 디자인에 따라 트림이 MX(모던 익스트림)와 SX(스포티 익스트림)로 나뉜다. 이름처럼 한쪽은 모던한(?) 분위기고 다른 쪽은 스포티한 감각이 특징이다. 그중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MX였다. MX는 프런트 마스트의 변화가 돋보이다. 눈매는 한층 날카롭고, 프런트 그릴은 입체형 디테일을 부각했다. 3개 조각으로 나뉜 역삼각형 안개등도 독특한 모습이다. 반면 옆모습과 뒷모습은 이전과 전체적인 이미지가 비슷하다. 브랜드의 의도는 모르지 않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형과 차별성이 크지 않아 아쉽겠다.

신형에서 가장 큰 변화는 확 바뀐 실내 분위기다. 운전자를 중심으로 좌우 비대칭이었던 센터페시아 디자인이 사라졌다. 복잡했던 버튼과 요란했던 디자인 기교가 깔끔하게 정리됐다. 최신형 기아차의 분위기에 충실히 따랐다. 반면 세부 디자인이 너무 단순하게 정리된 것은 아닌가 싶다. 너무 갈끔해서 답답하기도 하다.

물론 감탄사가 절로 나왔던 부분도 있었다. 예컨대 와이드 파노라마 선루프가 그랬다. 선셰이드와 선루프가 여느 차들보다 재빠르게 움직인다(마치 비디오테이프를 1.3배속으로 감은 듯했다). 국산 중형차 최초로 사용된 ‘워크인 디바이스’도 눈에 띈다. 앞 동승석 등받이에 달린 리모트 버튼으로 운전자가 동승석 위치를 손쉽게 조정하는 기능이다.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 상황에 따라 뒷좌석을 더 넓게 쓸 수도, 동승자를 더 편하게 태울 수도 있다.

안전 및 편의장비도 짜임새가 좋다. 에어백은 사이드와 커튼과 함께 운전석 무릎까지 더해서 7개가 달린다. 그 밖에도 자세제어장치(VSM)와 경사로 밀림 방지, 타이어 공기압 경고, 급제동 경보, 후방 주차 감지, 유아용 시트 고정장치 등이 기본이다. 편의장비도 빵빵하다. 인조가죽, 앞좌석 열선, 진폭 감응형 댐퍼 등을 기본 트림에 준비한 것이 매력적이다.

K5는 기본이 되는 2.0 가솔린을 포함해 총 5가지 엔진 라인업으로 꾸며진다. 이 중 MX는 2.0 가솔린과 1.7 디젤, LPI 2.0만, 1.6과 2.0 터보 엔진은 SX 트림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 2.0 가솔린은 최고출력 168마력, 20.5kg·m를 발휘한다. 이전 모델(172마력)보다 최고출력은 오히려 줄었지만, 반대로 연비는 리터당 12.6킬로미터(16인치 모델 기준)로 구형보다 리터당 0.7리터 좋아졌다. 그 밖에도 차체에 사용한 초고장력 강판 면적을 기존보다 2.4배 늘리고,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의 데이터 처리를 개선해(16비트에서 32비트로) 한층 민첩한 반응과 안락한 승차감을 구현했다.

이런 변화는 실제로 체감으로 느껴진다. 차가 움직이는 첫 느낌은 일단 부드럽고 정숙하다. 서스펜션은 저속에서 제법 통통 튀는 세팅이지만, 속도가 붙으면서 차분하고 또 안락하다. 요철이 심한 노면을 빠르게 지날 때 생각보다 부드럽게 처리하며 달렸다. 고속 주행 능력도 만족스럽다. 탄탄한 서스펜션의 도움으로 시속 150킬로미터에서 차의 움직임이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진 안정성은 좋았고 타이어 접지력은 꾸준했다.

외부 소음처리 능력도 놀랍다. 시속 60킬로미터에서 엔진은 1500rpm(5단)을 유지했다. 이때 실내에서 들리는 외부 소음은 딱히 흠잡을 부분이 없다. 전동식 스티어링휠(MDPS)은 적당한 피드백을 전할 줄도 안다. 속도나 움직임, 타이어 접지력의 변화를 운전자에게 꾸준히 전달한다. 뚝뚝 끊기며 반응하는 이전의 이질감을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엔진이 출력을 토하는 방식은 다소 답답했다. 좋게 말하면 초기 스로틀을 열었을 때부터 끝까지 반응이 부드럽다. 반대로 말하면 움직임이 버겁다. 노멀이나 에코모드에선 가속이 살짝 굼뜨다. 그나마 스포트 모드에서 가속페달에 힘을 싣고, 변속기를 수동으로 조작해야만 엔진이 깨어나며 본격적으로 달렸다. 이 엔진의 최대 회전은 6500rpm이지만, 실제로는 고회전을 자주 쓰는 것보다 3500rpm 이상, 최대 4800rpm 이하에서 터지는 토크 밴드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물론 중형 세단이라는 기준이나 전반적인 세팅을 고려할 때 약간 부족한 출력이라도 크게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전체적으로 조율을 잘했다.

신형 K5는 군더더기가 없는 차였다. 기존 모델의 디자인과 기본기를 활용해 돈을 아껴가며 ‘쉽게’ 만든 모델이 아니었다. 1세대가 만든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구석구석 진화한 모습이 공존했다.

SPECIFICATION 기본 가격 2204만~2817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FWD, 5인승, 4도어 세단 엔진 4기통 2.0ℓ DOHC 직분사, 168마력, 20.5kg·m 변속기 6단 자동 공차중량 1470kg 휠베이스 2805mm 길이×너비×높이 4855×1860×1465mm 복합연비 12~12.6km/ℓ CO₂ 배출량 138~145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