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는 금고다
살면서 뭘 숨기려 고민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중고등학생 때 보던 도색잡지나 야동 비디오테이프는 초등학교 때부터 갖고 놀던 과학상자 박스 안에 넣어두면 안전했다. 용돈은 늘 부족했다. 생기는 대로 썼으니 숨기고 모아둘 일이 아예 없었다. 그런데 요즘 비상금 때문에 골치다. 숨길 곳이 없다. 사무실에 보관하자니 쉬는 날에 필요하면 굳이 회사로 가야 한다. 집에 보관하자니 불안하다. 앨범에 꽂아놓으면 뜬금없는 추억팔이에 오금이 저리고 안 입는 옷 속주머니에 넣어두면 희한하게도 세탁소 직행이다. 그래서 눈길이 향한 곳이 레이다. 레이는 온갖 곳에 수납공간이 있다. 그런데 아내는 글러브 박스와 센터콘솔 이외의 수납공간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절대 직접 세차하지도 않는다.

레이는 주중엔 거의 그녀에게 있지만 별로 불안하지 않다. 처음 생각한 곳은 앞좌석 천장에 붙은 공간이었다. 지붕이 높아 천장 맨 앞쪽에 좌우로 수납공간이 있다. 바닥이 스웨이드 비슷한 재질로 돼 있어 물건이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밀려 떨어지지 않게 그물망도 쳐져 있다. <모터 트렌드> 몇 권도 들어갈 만한 크기니까 책 사이에 넣어두면 되겠다. 지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쿠션형 담요 속에 넣어도 될 것 같다.

앞좌석 컵홀더 아래 있는 작은 서랍도 괜찮다. 아이팟과 손 세정제, 카드지갑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다. 카드지갑 뒤쪽에 테이프로 살짝 붙여놓으면 되겠다. 세 등분으로 된 낮은 칸막이가 있어 카드지갑이 앞으로 넘어가 뒤쪽이 보일 일은 거의 없다. 조수석 시트 아래 있는 서랍도 괜찮아 보인다. 높이는 낮지만, 살짝 깊다. 지금은 운전용 장갑과 비상용 우산만 들어 있어 공간이 많이 남는다.

비상금을 잘 말아 장갑 손가락에 끼워두면 왠지 딱 맞겠다. 물론 지폐를 말고 있는 내 뒷모습은 초라하겠지만…. 뒷좌석 바닥 수납공간도 은밀하다. 매트로 가려져 있어 더 그렇다. 그 안에 있는 내 로퍼 속에 숨기면 절대 모를 것 같다. 트렁크 바닥도 훌륭하다. 스페어타이어 쪽은 폐차할 때까지도 안 들키겠지? 그런데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피아노 의자 바닥의 봉투 뭐야?’ 이런, 완전히 망했다!

기본 가격 1653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FWD, 5인승, 5도어 왜건 엔진 3기통 1.0ℓ 터보, 106마력, 14kg·m 변속기 무단변속기 무게 1070kg 휠베이스 2520mm 길이×너비×높이 3595×1595×1700mm 연비(복합) 13.9km/ℓ CO₂ 배출량 123g/km 구입 시기 2013년 10월 총 주행거리 2만5405km 평균연비 11.1km/ℓ 월 주행거리 1252km 문제 발생 없음 점검항목 없음 한 달 유지비 25만원(유류비,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