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가 레니게이드의 공식 출시에 앞서 기자들에게 먼저 타볼 수 있는 행사를 마련했다. 역삼동 FCA 코리아 사무실에서 출발해 양평에서 점심을 먹고 유명산 오프로드를 달려 정상에 있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찍은 다음 서울로 돌아오는 하루 코스다. 시승에 앞서 지프 홍보 담당자가 일정과 차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잠시 후 파블로 로쏘 사장이 나타나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시승은 정말 즐거울 겁니다.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깜짝 이벤트도 준비했거든요.” 그땐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렇게 엄청난 이벤트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 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지하주차장에서 만난 레니게이드는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뻤다. 지프 고유의 프런트 그릴과 동그란 헤드램프가 안 그래도 귀여운 외모에 방점을 찍었다. ‘X’가 새겨 있는 네모난 테일램프에선 위트가 넘친다.

“지프 혼자 했다면 이런 디자인이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피아트와 손을 잡은 이후로 지프에도 위트 넘치는 디자인 요소가 많이 생겼어요. 이탈리아 물을 좀 먹었다고 할까요?” 지프 홍보 담당자의 말이다. 그러고 보니 레니게이드에는 재미난 디자인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다. 앞유리 구석엔 작은 윌리스 MB 그림이 붙어 있고, 헤드램프에는 지프의 그릴 무늬가 새겨 있다. 센터콘솔 바닥에는 모아브사막 지역의 지도가 그려 있다. 도어 안쪽에도 그릴 무늬가 박혔다. “센터페시아 위쪽에 있는 송풍구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월 E’의 눈을 본떠 디자인했습니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거친 소리를 내며 디젤 엔진이 깨어난다. 발끝으로 가르릉거리는 진동이 전해진다. 매끈하고 차분한 요즘 디젤 엔진의 느낌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지프답다. 지프는 원래 거친 게 매력인 차였다. 국내에 출시되는 레니게이드는 모두 세 가지다. 2.0리터 디젤 엔진을 얹는 모델이 두 개, 2.4리터 휘발유 엔진을 얹는 모델이 하나다. 디젤 엔진 모델은 모두 네바퀴굴림이고 휘발유 엔진 모델은 앞바퀴굴림이다. 이 가운데 시승차는 170마력짜리 2.0리터 디젤 엔진을 얹고 가장 호화롭게 꾸민 리미티드다. 앞좌석 열선 기능에 열선 스티어링휠은 물론 크루즈컨트롤과 차선이탈 경고 플러스 시스템(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넘으면 스티어링휠을 돌려 차를 차선 안으로 밀어 넣는다),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 등 편의장비를 그득하게 실었다.    

도심에서 레니게이드는 묵직하게 내달렸다. 장난스러운 외모와 달리 스티어링과 달리는 감각이 어른스러웠다. 하지만 디젤 엔진은 처음 깨어났을 때처럼 거칠지 않았다. 달릴수록 매끈해졌다. 초반 가속이 굼뜨긴 하지만 탄력을 받으면 기본 이상은 달려준다. 하체가 묵직한 덕에 고속으로 달릴 때도 안정감이 크다. 구불구불한 길을 달릴 땐 노면을 움켜쥐는 실력이 제법이다. 좌우로 출렁거리거나 허둥대지 않고 매끄럽게 코너를 돌아나간다. 우당탕거리며 내달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움직임이 차분하다. 엉덩이를 달그락거리는 미니 컨트리맨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이다.

 

 

조수석 앞 대시보드에 손잡이를 달고 송풍구를 크롬으로 휘감았다.

 

"네 바퀴에 적절히 구동력을 배분하는 실력은 과연 지프다웠다."

점심을 먹은 후 곧바로 오프로드 코스로 진입했다. 1~10까지 난이도를 매기자면 6쯤 되는 코스였다. 지프의 오프로더 DNA를 물려받은 레니게이드는 ‘훗, 이런 길쯤이야’라고 말하는 듯 아무렇지 않게 자갈길과 흙길을 헤쳐나갔다. 네 바퀴에 적절히 구동력을 배분하는 실력은 과연 지프다웠다. 이런 자갈길은 어떻게 넘어야 하고, 저런 진흙길은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 재빨리 판단하고 움직였다.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방해가 되는 건 길 옆으로 길게 뻗은 나뭇가지뿐이었다. 작은 몸집은 좁은 산길을 달리는 데 유리했다. 급하게 방향을 꺾어야 할 때도 한두 번만 뒤로 움직이면 됐다. 레니게이드에는 지프 셀렉 터레인 지형설정 시스템이 기본으로 담겨 있다. 자동과 눈길, 모래, 진흙 가운데 하나로 지형을 설정하면 그 지형에 최적화된 주행 모드로 바뀌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4WD 록(LOCK)과 4WD 로(LOW), 내리막길 주행 제어 장치가 더해져 오프로드에서도 마음이 든든하다. 실제로 셀렉 터레인을 쓸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없어서 못 쓰는 것과 있는데 안 쓰는 건 엄연히 다르니까. 레니게이드는 거칠고 좁은 산길을 잘도 올라갔다. 랭글러 정도는 아니지만 체로키가 갈 수 있는 오프로드라면 레니게이드도 문제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비게이션 지도가 몹시 허술하다는 것과 뒷자리가 조금 불편하다는 것만 빼면 크게 흠잡을 곳이 없었다.

 

 

센터페시아 아래에 있는 수납함 바닥에 모아브사막 지역의 지도를 새겼다.

유명산 정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여덟 명의 패러글라이딩 조종사였다. “여기까진 레니게이드를 타고 올라오셨지만 내려갈 땐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가셔야 해요. 우리가 준비한 깜짝 이벤트입니다.” 자유와 모험, 열정을 부르짖는 브랜드답게 지프는 이벤트도 남달랐다. 어리둥절해하던 난 조종사의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장비를 갖춰 입었다. 솔직히 처음이라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이미 입은 옷과 장비를 벗어던질 수 없었다. 그렇게 강제로 패러글라이더에 매달려 하늘을 날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려오는 동안 3분의 2는 정말 무서웠고 3분의 1은 조금 무서웠다. 거의 내려왔을 때 먼저 내려간 다섯 대의 레니게이드가 착륙장 옆에 조르륵 서 있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 본 레니게이드는 정말 장난감 차 같았다. 지붕에 큼직하게 새긴 ‘X’자 무늬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요즘 차는 얼굴이 너무 무섭다. 하나같이 눈이 쭉 찢어지고, 입이 거대하다. 보닛과 옆구리엔 날카로운 선이 서슬 퍼렇게 잡혀 있다. 그래서 섬뜩하기도 하다. 레니게이드가 반가운 건 그래서다. 보면 볼수록 즐겁고 유쾌하다. 레니게이드는 오는 9월 국내에 출시된다. 지프 담당자들은 가격을 놓고 막바지 고민 중이다. 레니게이드가 소형 SUV에 걸맞은 가격으로만 나온다면 시장을 충분히 흔들 수 있지 않을까?

 

 

SPECIFICTION 기본 가격 미정 레이아웃 앞 엔진, 4WD, 5인승, 5도어 SUV 엔진 직렬 4기통 2.0ℓ DOHC 터보 디젤, 170마력, 35.7kg·m 변속기 9단 자동 공차중량 1610kg 휠베이스 2570mm 길이×너비×높이 4232×1886×2023mm 0→시속 100km 가속 시간 8.4초 복합연비 16.9km/ℓ CO₂ 배출량 155g/km *유럽 기준 제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