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동차부터 중장비, 탱크까지 엔진이 들어가는 모든 것을 오로지 나무 하나로 만든다. 2,3 그의 작품은 단순히 모양만 흉내 낸 모형이 아니다. 작품의 디테일에는 27년 동안 중장비 기사로 일한 노하우가 적용됐다. 4 작품을 대하는 그의 손길은 장인에 가깝다 

 이명균 씨를 처음 본 건 어느 블로그에서였다. 그의 작품을 누군가 스크랩해 소개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봤는데 계속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됐다. 그러다 굴착기 엔진의 스크롤이 회전하는 것을 봤다.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경기도 오산의 어느 목공 작업실에서 그를 실제로 만났다. 복층으로 된 공방은 각종 기계와 도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쪽엔 만들다가 만 탱크가 있었다. 수납공간에는 원목이 가득했다. 위층엔 그동안 만든 완성품들이 갤러리처럼 전시되고 있었다. “2~3년 동안 50여 점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팔지는 않아요. 그런데 얼마 전 미국에서 사는 한 교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정말 갖고 싶은 모형이 있는데 본인에게 팔지 않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트럭믹서와 신진자동차 트럭을 최초로 팔았습니다.” 명균 씨는 이 중 신진자동차 트럭은 다시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자동차 모형 회사를 찾아봐도 아직 없다고 한다. 

처음엔 가구였다. 간단한 가구는 DIY로 직접 만들어 쓰던 것이 취미가 됐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나무로 장난감 자동차를 만들어 줘봤더니 반응이 꽤 괜찮더라고요. 그러면서 조금씩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왔네요.” 명균 씨는 지금도 두 딸의 독서대와 모니터 받침대 정도는 손수 만들어준다. 

작품을 보면 꽤 정교하다. 제작 과정이 궁금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작업실엔 나무만 잔뜩 있고 흔한 컴퓨터 하나 없었다. 화이트보드에 스케치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뿐이었다. 그는 길을 가다 눈에 띄는 자동차나 중장비가 있으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반복해서 본다. 눈에 익고 머릿속에서 모든 부분의 모양과 비율이 그려지면 그제야 나무를 자르기 시작한다. 요즘엔 온라인에서 도면을 구입해 만든다. 예를 들어 탱크같이 정교한 모델은 도면이 있으면 실제와 더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한 가지 고수하는 작품 철학이 있다면 ‘색’이다. 작품들을 보면 공통으로 거의 채색이 없다. 나무 고유의 색이 그대로 나타난다. 주로 황색, 녹색, 검은색 계통의 나무들을 많이 사용한다. 모양은 실제 모델과 거의 비슷하지만 나무라는 정체성은 꼭 살리고 싶다고 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습니까?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은 지금 만들고 있는 작품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위해 작품들을 다시 둘러봤다. 몇몇 작품은 손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디테일을 살렸다. 전기모터만 있으면 원격 조정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피노키오처럼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넣을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안 그래도 요즘 그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바퀴도 잘 굴러가고 문도 열려요. 타워크레인 같은 경우는 동력만 있으면 실제로 움직일 수 있게 했어요. 결국 최종 목표는 RC입니다. 하지만 비용 부담이 있어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어요. 중장비 경력만 올해로 27년입니다.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다 알고 있죠. 기회가 된다면 딱 한 점만 시험 삼아 RC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습니다.” 

최근 들어 그의 작품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4월에 열리는 서울 모터쇼에서도 만날 수 있다.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아쉬워요. 우리나라도 자동차를 만든 지 60년이 다 됐지만 도로에는 최신 모델들뿐이죠. 자동차와 중장비의 역사를 나무 모형으로 천천히 기록해두고 싶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과 교감하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