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의 이유
한국 수입차 시장 초창기였던 1990년대, 볼보는 수입차 톱3였다. 볼보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더불어 고객이 세 마디 질문만 하고 계약하는 브랜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이게 볼보(벤츠)군!” “이거 얼마지?” “언제 받을 수 있어?” 볼보가 벤츠의 훌륭한 대안이라고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당시 볼보의 대표 모델은 740·760 또는 940·960으로 이어지는 각지고 보수적인 디자인의 후륜구동 차였다. 하지만 볼보는 갑자기 흔들렸다. 2000년을 전후해 시장점유율이 5퍼센트 전후를 오르내리더니 2007년 2200대를 정점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판매량은 2000대 아래로, 시장점유율은 1퍼센트대로 쪼그라들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수입차 시장에서 완전히 소외된 것이다. 사브의 몰락에 이어 브랜드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다. 사실 그사이 볼보는 안팎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1998년 국내에 현지 판매법인이 설립됐지만 이듬해인 1999년 본사가 미국 포드로 매각되는 혼란을 겪었다. 모델 라인업도 기존 베스트셀러였던 대형 후륜구동 모델들이 물러나고 준중형부터 중대형까지의 한층 젊어진 모델로 교체됐다. 볼보라는 브랜드와 기업, 그리고 제품군까지 이전 것은 하나도 남지 않은 ‘총체적 변환기’였던 셈이다. 이름만 남아 있고 모든 것이 달라진 볼보에 기존 고객들은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포드 휘하에서는 재규어, 애스턴마틴, 랜드로버와 함께 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PAG)으로 묶였다. 서로 다른 배경과 역사를 가진 자존심 강한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함께 공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딜러 시스템부터 브랜드 아이덴티티, 제품 개성 등 여러 면에서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는 판매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한때 침체에 빠졌던 볼보는 최근 완연한 회복세다. 여기엔 새로운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과 신개념 안전장비들로 대표되는 혁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드라이브-E는 볼보에 기술적 유연성을, 안전기술은 브랜드 위상의 상승을 가져왔다. 

 

볼보의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40만대 수준을 견고하게 유지하며 착실하게 성장하다가 2008년 금융 위기와 함께 다시 크게 흔들린 것이다. 볼보의 전 세계 판매량은 2009년 33만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적자는 계속 누적돼갔다. 이윽고 포드는 PAG 휘하 프리미엄 브랜드들을 매각하기 시작했고 볼보는 중국 지리자동차 그룹에 매각됐다. 10년 사이 두 번이나 주인이 바뀐 것이었고 한국 현지법인 이름도 이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이 같은 회사의 정체성 불안은 앞서 얘기했듯 국내외 시장에서의 실적 저하로 직결됐다. 

 

 

 

부활의 비결
볼보는 지난 10여 년의 암흑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시장 평균 성장률의 두 배가 넘는 51.8퍼센트라는 비약적 성장세를 보였다. 볼보의 부활은 꾸준한 혁신으로 시장에서 주어진 기회를 붙잡은 결과다. 한국에서는 보수적 세단 브랜드로 이해돼온 볼보지만 사실 그들은 240 시리즈부터 이어지는 왜건 시장의 강자였다. 지금처럼 크로스오버 SUV들이 득세하기 전에는 왜건이 대표적 레저용 차량, 즉 라이프스타일 모델이었다. 볼보는 애초 라이프스타일 모델의 강자였다. 과거 240·740·940 등에서 에스테이트(Estate)로 불리던 볼보 왜건은 새로운 모델명 정비와 함께 독자적인 V 모델(V50·60·70·80) 라인업을 구성한다. 나아가 볼보 소프트 오프로더의 시효인 V70 XC의 기반이 된다. V70 XC의 성공은 이후 XC70을 시작으로 XC60 등 아예 새로운 XC 라인업으로 확대됐다. XC90은 보다 정통 SUV에 가까운 대형 크로스오버 SUV로 포진했다. 결과적으로 볼보는 새로운 크로스오버 SUV 장르인 XC 라인업을 통해 라이프스타일 모델의 강자로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06년 전 세계 판매 실적에서도 라이프스타일 모델인 V와 XC 모델은 볼보 전체 판매의 61.1퍼센트를 차지하는 강세를 보였다. 이 추세는 세계적인 라이프스타일 모델의 강세에 힘입어 더욱 강력해졌다. 판매 비중이 82.6퍼센트에 달하는 두 모델(V와 XC)에 힘입어 볼보는 지난해 전체 판매량이 20퍼센트 이상 성장했다. 최근 다른 유럽 브랜드처럼 중국시장 공략을 위해 세단을 현지 생산하지만 세단 점유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볼보 라이프스타일 모델의 경쟁력을 말해준다. 

한국에서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 같은 추세가 반영됐다. 2006년 국내에서 볼보는 세단(S40·60·80) 모델이 전체 판매의 73.3퍼센트를 차지하는 매우 보수적인 비율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엔 세단 비율이 50퍼센트 수준으로 급격하게 줄었고 XC와 V 모델이 49퍼센트를 차지하며 급성장했다. SUV 바람에 부응한 XC 모델의 성장은 예견된 부분이긴 하지만 V 모델도 6퍼센트에서 20퍼센트 수준으로 성큼 성장했다. 이는 해치백과 왜건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V40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것에도 기인한다. 실제로도 볼보는 국내 수입차 시장 평균보다 왜건과 SUV의 판매 비중이 높다. 또 볼보는 독일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는 승용 디젤의 광풍을 제대로 탔다. 여기에선 두 가지 무기가 있었다. 하나는 드라이브-E 차세대 파워트레인, 다른 하나는 D2 1.6리터 엔트리 디젤 라인이다. 볼보코리아가 보도자료를 통해 강조했듯 V40·V60·S60·S80에 적용된 D2 엔진은 총 1118대가 팔려 전체 판매량의 37퍼센트를 차지했다. 

 

 

좁은 뒷좌석은 S60의 약점으로 꼽힌다. 섀시 구성의 밀도도 보완돼야 할 부분. 하지만 그 외 부분에선 크게 흠잡을 게 없다. 동급 최고의 안전 사양을 토대로 한 뛰어난 상품성은 물론 안정된 주행성능까지 갖춰 경쟁력이 충분하다. 볼보 특유의 공간활용성은 세단인 이 차에서도 반짝반짝 빛난다.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은 단순히 판매량으로만 얘기하기에는 부족하다. 엔진 다운사이징 트렌드에 더해 볼보는 아예 4기통부터 8기통까지의 모든 휘발유와 디젤 엔진을 하나의 4기통 엔진 패밀리로 대체하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볼보처럼 40만~50만대 규모의 브랜드는 여러 가지 엔진을 개발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다른 회사에서 엔진을 사다 쓰거나 다른 회사에 의뢰해 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최신형 엔진을 쓸 수 없거나 커다란 비용이 지출될 수밖에 없었다. 볼보의 드라이브-E는 하나의 엔진 패밀리로 여러 엔진을 통합하되 값비싼 고급 기술을 적용하고 출력의 범위와 연료의 종류를 다변화하는 기술적 유연성을 적용한 것이다. 그 결과 중간 규모 회사가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비를 줄이는 동시에 고성능-고효율 엔진으로 일취월장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혁신은 시티 세이프티로 대표되는 신개념 안전장비들이다. 볼보는 항상 시대의 한 획을 긋고 지금까지도 적용되는 다양한 안전 개념을 제시했다. 크럼플존, 3점식 안전벨트, 에어백, ABS 등이 모두 볼보에서 시작했다. 시티 세이프티와 보행자 에어백 등도 볼보가 새롭게 제시했다. 요즘 많은 브랜드가 능동적 안전장비와 주행 보조장비들을 앞다퉈 제공하고 있는데, 볼보는 그것들을 ‘제대로’ 만드는 몇 안 되는 브랜드다. 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는 시티 세이프티와 같은 긴급 자동제동 기능(AEB)을 제공하지 않는 차에는 ‘가장 안전한 차+(Top Safety Pick+)’ 등급을 주지 않는다. 볼보가 기준을 바꾼 셈이다. 볼보의 혁신은 회사 규모를 초월하는 브랜드 위상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볼보 부활의 큰 원동력으로도 작용했고. 
 

S60과 드라이브-E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은 먼저 181마력 D4 디젤 엔진으로 시작됐다. 이전 D4 엔진보다 17마력 강해졌고 연비가 리터당 14.0킬로미터에서 17.1킬로미터로 향상돼 수치적으로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점은 질감이다. 일본 아이신에서 공급받는 8단 자동변속기와 신세대 4기통 엔진으로 구성되는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은 회전감각이 대단히 매끄럽고, 회전수를 가리지 않는 매우 유연한 출력 특성도 가지고 있다. 특히 D4 엔진은 한국에 소개된 4기통 2.0리터 디젤 엔진 가운데 소음·진동이 가장 적으면서 회전감각까지 최고 수준이 아닌가 싶다. 181마력이면 요즘 4기통 2.0리터 터보 디젤로는 엄청난 고출력이 아니다. 하지만 드라이브-E D4 엔진은 트윈터보를 사용한다. 터보 한 개에 의존하는 엔진보다 훨씬 여유롭게 출력을 발휘하는 배경이다. 

세련된 고성능의 D4 파워트레인은 세단인 S60에 매우 잘 어울린다. 좋게 말하면 질박하고 인간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덜 세련된 이전 디젤 엔진은 S60을 비롯한 볼보 세단이 독일 라이벌에 밀린 결정적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다. 능동적 안전장비도 동급 최고인 만큼 상품성도 좋다. 다만 파워트레인이 말쑥해지고 나니 이제는 섀시 구성의 아쉬움이 드러난다. 전동 스티어링의 어색한 감각이 아쉽고 요철에서 간간이 허둥대는 서스펜션 움직임도 더 도드라진다. 하지만 뒷좌석이 약간 좁다는 점만 제외하면 S60이 동급 최고의 상품성과 안정된 주행성능을 갖고 있다는 점에 이의가 없다. 
 

 

V40 크로스컨트리는 볼보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모델이다. 단단한 차체와 부드러운 서스펜션이 빚어내는 유연한 주행감각은 압권. 지붕과 분리돼 있는 루프레일, 트렁크에서 조수석까지 곧게 이어지는 적재공간 연출 등에서 여전한 저력을 읽어낼 수 있다.

 

 

 

V40의 잠재력
V40은 C30의 후속모델이라고들 한다. 이는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C30의 자리를 채운 건 맞지만 C30과 같은 전형적인 해치백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붕 면적이 C30보다 조금 더 긴 V40은 해치백과 왜건의 중간 혹은 긴 해치백으로 보는 게 옳겠다. 이 차에 V40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걸 보면 볼보는 기존 V 모델 라인업에 다이내믹한 이미지를 더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물론 콤팩트 해치백 시장 공략은 기본이고. 따라서 이 차에 고성능 휘발유 엔진과 R디자인 패키지 적용은 필수다. V40 T5 R디자인이 바로 그렇게 빚어진 차다. 

시승차는 볼보의 고성능 모델인 폴스타(Polestar)에 적용되는 레벨블루 컬러를 입었다. T5 엔진도 245마력으로 핫해치 수준에 걸맞다. 외관 디자인도 고성능 모델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하지만 섬세한 조율에 이르러서는 한계가 보인다. ‘뜨거운’ 차를 만들어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서스펜션은 딱딱하기만 하고 차분하지 못하다. 강성이 뛰어난 차체를 활용하면 굳이 서스펜션을 이렇게 딱딱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스티어링도 노면 감각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인공적인 어시스트가 노골적으로 느껴져 한계치가 높은 차체를 십분 활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S60과 같은 세단, 나아가 V40 크로스컨트리 같은 크로스오버 모델에선 크게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이다. 가속페달은 초기 반응이 과장돼 있어 코너에서 탈출하며 가속하기가 까다롭다. 하지만 기본기는 충분하다. 조금 더 노력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답이다. 

 

V40 T5는 섀시가 가진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지만 크로스컨트리는 다르다. 앞으로 출시될 신모델의 스포츠 모델도 기대하게 하는 성능을 보여준다. 볼보는 크로스오버 SUV인 XC 계열과는 다른 소프트로더로서 크로스컨트리 모델 라인을 보강해갈 예정이다. 

 

 

 

크로스컨트리의 재발견
V40 크로스컨트리는 이번에 시승한 석 대의 볼보 중 가장 최근에 출시된 모델이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모델이다. 이 차는 단단한 차체의 잠재성능을 유연하게 끌어내는 부드러운 서스펜션이 살짝 높아진 지상고와 어우러져 요철이 심한 노면에서도 한결같은 주행안정성을 만든다. V40 계열의 D4만 190마력으로 9마력 더 높은 이유도 알 수 있다. 다른 모델에서는 급가속 때 접지력이 살짝 불안해지고 토크 스티어가 느껴지지만 V40에서는 그런 기미가 없다. 섀시 전체의 잠재력이 높다는 뜻이다. V40 그리고 앞으로 출시될 신모델의 스포츠 모델들에 기대를 걸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V40 크로스컨트리의 유연한 주행에 감탄하면서 느낀 점 하나. 역시 볼보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라이프스타일 모델에 장기가 있다. 기존 XC 모델 라인업이 있음에도 왜건·해치백인 V 모델 라인업에 소프트로더인 크로스컨트리(CC) 라인을 추가한 건 자신의 장기를 십분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볼보는 자기가 잘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따라서 스포츠 모델처럼 아직 배울 것이 많은 모델도 잘해나갈 거라고 믿는 이유다. 
 

90에 담긴 미래 
볼보는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먼저 세계시장에서 보면 현재 40만대 수준인 판매 볼륨을 2018년까지 80만대 수준으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모델 라인업을 완전히 재정비해 2019년까지 모두 신모델로 대체할 예정이다. 제품군은 세단(S)-왜건(V)-XC(크로스오버 SUV)로 단순화되고, 세그먼트는 C(40)-D(60)-E(90) 세그먼트로 정렬한다. 여기에 왜건을 토대로 한 소프트로더 크로스컨트리(CC)가 곁들여진다. V40 CC를 시작으로 V60과 V90의 CC 버전이 잇따른다. 

90 시리즈는 보수적 이미지가 강한 프리미엄 마켓을 상대한다. 이전 포드 산하에선 재규어나 랜드로버 같은 상위 브랜드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볼보가 책임져야 할 프리미엄 브랜드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가벼웠다. 하지만 이제는 지리 그룹의 최상위 브랜드로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최근 풀 모델 체인지한 XC90은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과 차세대 커넥티드 인포테인먼트 센서스(SENSUS), 안전 및 주행보조 통합 장치인 인텔리세이프(InteliSafe) 등 볼보가 자랑하는 기술적 특징을 망라했다. 하지만 볼보는 이런 특징이나 첨단, 최고, 최초 같은 수식을 강조하는 대신 ‘단아한 럭셔리함’과 ‘안락함’을 힘주어 말한다. 하이테크 브랜드가 아니라 독일 3사와 경쟁하는 본격적인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고자 하는 거다. 
 

 

 

2000년대 초의 1세대 XC90이 그랬던 것처럼 신형 XC90은 볼보가 여는 새로운 시대의 기준점이 된다. 기술적 특징이 집약된 모델일 뿐 아니라 브랜드와 라인업의 성격과 방향성까지 명확하게 제시하는 명실상부한 플래그십이다. 나아가 볼보는 지리자동차 그룹의 최상위 브랜드로서도 기능해야 한다. XC90의 성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청사진 그리고 과제 
세단인 S90이 아니라 XC90을 출사표로 선택한 건 세계적으로 강한 크로스오버 SUV 열풍에 편승하겠다는 안전장치인 동시에 볼보가 강한 라이프스타일 모델로부터 시작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아울러 XC90은 T6와 T8 같은 고성능 4기통 엔진으로 6기통과 8기통 시장을 성공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분수령이기도 하다. XC90을 시작으로 기함인 S90과 V90의 출시로 최상위 90 라인이 완성되는 2016년은 볼보 브랜드가 세계와 특히 중국 시장에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본격적인 경쟁을 개시하는 시점이다. 따라서 90 라인업의 커뮤니케이션은 볼보에겐 향후 10년을 좌우할 시금석이 된다. 

E 세그먼트의 90 라인이 브랜드 위상을 업그레이드하면 뒤이어 출시되는 동생들의 어깨도 가벼워진다. 다음은 신형 XC60(2017년)과 S60·V60(2018년) 등의 D 세그먼트 모델이 지금보다 격상된 위치에 정착하는 일이고, 젊은 이미지의 완전히 새로운 모델 XC40이 더해지면 볼보의 뉴 라인업이 일단락된다. 볼보는 젊은 V40이 참신하고 다이내믹한 이미지와 함께 선전해주기를 기대한다. 여기서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인간적이고 포근한 이미지의 기존 볼보에 충성심을 보여온 장년층 이상 고객이 위화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90 라인과 V 모델 등 기존의 보수적·패밀리카 이미지에 근접한 모델들이 감당해야 할 임무다. 

한국 시장에선 크게 두 가지 과제가 있다. 하나는 D2 라인의 성공적 대체다. EU5 기준에 부합하는 D2는 신형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 이전 세대의 것이다. 따라서 올해 안에 사라지거나 대체돼야 한다. 이미 볼보는 드라이브-E의 저출력 모델인 D3 등의 개발을 마무리한 상태이며 3기통 드라이브-E 엔진도 시험 중이다. 다만 걱정되는 건 가격이다. 드라이브-E 엔진은 기존 엔진보다 고급이다.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산 모델의 공급도 한국의 볼보 입장에선 버릴 수 없는 카드다. 이미 미국엔 최초의 중국산 볼보인 S60 LWB가 S60 인스크립션(Inscription)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판매는 올여름부터다. 가격경쟁력을 갖춘 이 모델이 진출하면 이는 한국 자동차 시장에도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볼보에겐 장단기적, 세계적 또는 지역적 숙제가 많다. 이유는 하나다. 지리자동차가 볼보에 어떤 간섭도 하지 않고 아낌없이 투자해왔기 때문이다. 지리는 볼보에게 맡길 임무도, 얻고 싶은 이득도 많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에디터•김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