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문화를 제대로 훑어보기 위해서는

한 가지보다 여러 방면을 이해하는 편이 좋다.
그 과정에서 조각난 단서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가장 미국적인 차를 묻는다면 누구나 픽업트럭이라고 단번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종이고, 또 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깊숙이 연결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자동차 문화는 특정한 무언가를 대표로 앞세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에 ‘인정’을 뜻하는 톨레랑스(Tolerance)가 있다면, 미국에는 다양성(Diversity)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주 혹은 국가 체제의 결합체보다는 인종, 민족, 종교 집단의 결합력을 우선으로 한다. 국가라는 테두리에 하나로 묶여 있지만, 하나 속의 다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종교와 예술뿐 아니라 자동차 문화 곳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수십 가지의 자동차 경주와 튜닝 문화가 발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미국 자동차 문화를 제대로 훑어보기 위해서는 한 가지보다 여러 방면을 이해하는 편이 좋다. 그 과정에서 조각난 단서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사실 미국인들에게 자동차는 생활필수품이다. 현대의 인간 활동에 가장 기본인 ‘이동’을 위해서는 차가 꼭 필요하다. 넓은 땅덩어리를 대중교통만으로 이동하기가 어렵다. 한국과 차이점도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자동차는 필수품보다 편의를 위한 도구다. 차가 사치품이 되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차를 선택할 때 철저히 실용적이고 솔직하다. 또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이동 거리도 많아서 넉넉한 차체와 푹신한 승차감이 당연하다. 드라이브 스루에서 커피나 햄버거를 사 먹으면서 이동하는 것이 보통이라 여러 개의 컵받침도 필수다. 장거리 주행 중 스티어링휠에서 몇 초간 손을 떼도 차가 똑바로 가도록 조율된 스티어링 특성도 미국의 일상생활에서 반영된 것이다. 미국에선 차를 여러 대 소유해도 세금이나 관리에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차 한 대당 보험료는 오히려 저렴해진다. 따라서 실용적인 차들이 많이 팔리는 동시에 강한 개성을 지닌 차가 공존할 수 있다. 이렇게 각각의 취향과 선택이 공존하면서 지금의 미국차, 미국 자동차 문화가 생겨났다.

 

 

픽업트럭  |  ‘미국에서 가장 평범한 마이클 씨는 지난 일주일을 이렇게 보냈다. 그는 평일 저녁 퇴근길에 홈디포(Home Depot)에 들렀다. 주말 동안 집 발코니 데크를 수리할 목적으로 나무판자를 샀다. 대단히 큰 부피였지만 그의 차(포드 F-150) 짐칸에는 어렵지 않게 들어갈 크기다. 잔디깎이도 샀다.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도 있지만, 배송료가 비싼 데다 열흘가량을 기다릴 수가 없다. 드디어 기다리던 주말. 그는 캐러밴을 픽업트럭에 연결해 가족들과 가까운 바닷가로 캠핑을 떠났다. 캠핑장으로 가는 길은 험했다. 대부분 비포장도로였다. 하지만 그의 픽업트럭은 높은 지상고와 견인력으로 거침없이 앞으로 나갔다.’
픽업트럭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다. 포드 토러스나 토요타 캠리가 판매 1위를 강조하는 것은 순전히 ‘승용차’만 따졌을 때다. 미국에서 픽업트럭은 일반 승용차보다 1.5배가량 많이 팔린다. 그래서 미국 자동차 브랜드가 꾸준히 투자하고 주목하는 시장이다.
 

픽업트럭은 SUV처럼 생겼지만 실내 공간 뒤로 오픈된 짐칸이 달렸다. 사실 픽업트럭은 적재 용량은 생각보다 적다. 짐을 실을 수 있는 능력이 1톤을 넘기는 차가 거의 없다. 대신 우수한 견인력과 높은 최저 지상고가 기본이다. 이런 우람한 모습은 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은 택배 서비스가 발전하지 못했다. 국토가 워낙 커서 배송 시간이 길고, 값도 비싸다. 또 미국인의 대부분이 단독주택에서 산다. 인건비가 비싸서 간단한 집수리나 자동차 수리는 직접 한다. 그래서 이들에겐 큰 부품을 운반하는 차가 필요하다. 이때 픽업트럭이 좋은 해결책이다. 픽업트럭은 견인 능력도 중요하다. 미국은 다양한 레저 활동으로 유명한 나라다. 그래서 자동차에 트레일러나 보트, 캠핑 장비를 끌고 다니는 게 흔한 일이다. 더 강한 엔진, 더 강력한 구동계를 갖춘 픽업이 계속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8 휠 트럭  |  미국은 한국보다 약 44배 큰 땅덩이를 소유했다. 그래서 운송 분야에서 트럭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미국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트럭들이 떼를 지어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한 전용 휴게소가 곳곳에 있을 정도다. 트럭 운전사들은 집보단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수입도 꽤 괜찮은 편이다. 대신 운송하는 화물이 큰 만큼 그들을 노린 범죄에 노출되는 위험 부담이 있다. 영화 <분노의 질주> 1편의 소재도 여기서 시작했다. 달리는 트럭의 화물을 현란한 자동차 기술로 훔쳐 달아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트럭 운전사들 대부분이 총기로 무장한다. 모든 트럭 운전사는 잘 짜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무선통신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며 날씨와 사고, 정보를 공유한다. 미국 고속도로에서 트럭 한 대를 잘못 건드리면 다른 트럭에게 보복성 운전을 당하거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잡힐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큰 트럭을 흔히 ‘18 휠러’라고 한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트럭과 달리 엔진룸이 앞으로 돌출된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파워트레인을 승객석과 분리한 구조로 장거리를 더 쾌적하게 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 이런 트럭은 회전반경이 커지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물론 미국의 큰 도로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머슬카  |  머슬카는 미국 고성능차 문화를 대표하는 카테고리다. 사전적 의미로는 미국산 2도어 스포츠 쿠페에 강한 엔진을 얹은 차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머슬카는 특정 모델의 고성능 버전만을 말한다. 머슬카의 필수 요소인 V8 엔진은 고속도로 주행이 잦은 미국도로에 맞춰 꾸준히 발전했다. 엔진의 넉넉한 토크와 긴 기어비는 항속 주행 시 엔진회전수를 최대한 낮추는 데 도움을 줘 연비와 내구성에 도움을 준다. 엔진 배기량이 큰 대신 구조가 단순해 유지와 관리가 쉽다는 점도 특징이다. 일부 자동차 마니아들은 V8 엔진을 앞머리에 얹은 구조가 코너링 성능을 떨어뜨린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나스카(오벌 코스)와 드래그 레이스(직선)처럼 미국 모터스포츠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트랙 구조를 생각하면, 머슬카의 진화 과정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머슬카는 크고 무거운 차체와 대배기량 엔진 때문에 환경론자들의 비난을 받으며 한동안 맥이 끊겼다. 하지만 최근엔 머슬카의 개성과 유럽 스포츠카들의 효율성을 따라잡은 모델들이 미국 시장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핫로드  |  핫로드는 머슬카와 맥이 이어진다. 머슬카에나 쓰이는 고성능 엔진을 미국의 클래식카에 얹은 차가 핫로드이기 때문이다. 핫로드란 용어는 1930년대 생겼다. 여기에 속한 차들은 한계나 제한이 없다. 작고 빈약한 차체에 엄청나게 큰 엔진을 달았다. 엔진은 밖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이고, 필러를 잘라 지붕을 낮게 개조하기도 한다. 녹슨 차를 새로 도색하고 꾸미는 과정에서 현란한 색이나 불꽃 문양을 넣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의 핫로드는 단순히 튜닝의 한 영역이 아니라 각각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사랑받고 있다. 핫로드는 기형적 튜닝이 전부가 아닌 미국의 중요한 자동차 문화다. 오래된 클래식카를 부활시키는 과정, 레이스를 즐길 수 있는 다양성이 확보된 문화 속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집 차고에서 차를 만지고, 폐차장에서 필요한 부품을 구입하며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렇게 개조한 차를 정식으로 길에서 타고 다닐 수도 있는 미국의 자동차 제도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거대한 크롬 휠  |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같은 대형 SUV에 22인치의 크롬 휠을 끼고 달리는 차를 보면서 번쩍이는 금목걸이와 시계를 찬 흑인을 상상했다면 인종차별적 발상이다(물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긴 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특정 인종이 즐기는 자동차 문화라기보다 미국의 힙합 문화로 이해하는 것이 더 확실하다. 사실 이런 거대한 휠이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이런 휠을 사용할 수 있는 대형 SUV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커다란 대륙과 힘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래서 크고 화려한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대형 SUV라도 혼자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연비나 승차감을 포기하더라도 커다란 휠을 사용하는 게 그들의 문화다.

 

드래그 레이스  |  드래그 레이스는 1950~80년대 캘리포니아 남부 지방에서 시작된 길거리 레이스로 처음엔 불법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용되지 않는 공항 활주로를 통해 그들을 양지로 끌어냈다. 이런 움직임 속에 드래그 스트립이라는 경주장을 통해 드래그 레이스는 합법적인 트랙에서 발전했다. 정지상태에서 400미터를 누가 더 빨리 통과하느냐를 겨루는 드래그 레이스는 알면 알수록 어렵고 매력적인 레이스다. 교차로에서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는 순간 출발했던 길거리 레이스에서 시작한 것처럼 현재도 비슷한 형태로 구성된다(크리스마스트리라 불리는 전문 신호등을 쓴다). 경기는 1대 1로 겨룬다. 시작과 동시에 얼마나 좋은 접지력과 출력을 끌어내 출발하는냐가 관건이고, 빠른 변속도 필수다. 단 한 가지 조건으로 결과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미국에선 400미터 지점을 몇 초에, 시속 몇 킬로미터에 통과했는지가 차의 성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나스카  |  나스카는 오직 레이스를 위해 만들어진 차 프레임에 V8 엔진을 얹고, 껍질을 씌워 만든 형태다. 나스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나스카의 고향 미국 플로리다의 데이토나 해변의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1900년대 초반, 이곳엔 3킬로미터 해변에 걸친 자동차 코스가 있었다. 직선 주로와 같은 길이의 고속도로를 포함해 총 6.6킬로미터 구간이다. 이 두 길은 헤어핀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이 ‘오벌 코스’의 시초였다. 최초의 오벌 코스는 최고속도를 도전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고, 전 세계에서 빠르다는 차들이 몰려들어 기록 경쟁을 벌였다.

 

나스카는 1900년대 시대상과도 연관이 있다. 당시 미국은 금주령으로 술의 유통과 판매가 법으로 제한됐다. 역설적으로 금주령 덕에 가장 돈 되는 사업이 바로 주류 사업이었다. 주류 사업자(주로 마피아)들이 큰돈을 벌면서 부가적으로 술을 운반하는 사업 또한 성장했다. 배달부들은 술을 운반할 때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엔진 출력과 핸들링 성능을 높이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1940년대에 이르러 이들은 자신이 개조한 차로 명예와 돈(도박)을 건 레이스를 시작했다. 이것이 나스카의 기원이다. 현재 나스카는 미국의 상업주의가 가장 잘 반영된 자동차 문화다. 하나의 광고 플랫폼이다. 실로 많은 기업들이 광고에 참여하면서 엄청난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다(미국에서는 NFL 다음으로 많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스포츠다). 미국인들은 나스카가 열리는 주말 동안 캠핑카를 끌고 나와 먹고, 자며 나스카를 관람한다. 그들의 문화다. 레이스 시작하기 전 대표 기도자가 올라올 때 관중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기립하고 눈을 감은 채 ‘아멘’으로 끝나는 기독교식 기도를 한다. 그리고 미국 국가를 부른다. 이 또한 미국만의 뿌리 깊은 문화로 볼 수 있다.

 

 

핫휠  |  핫휠은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장난감이다. 아들이 있는 집이라면 분명 한 개 이상은 가지고 있다. 1968년 미국의 장난감 회사 마텔이 만든 브랜드로 1:64 스케일의 다이캐스트 모델이 주를 이룬다. 여느 다이캐스트 회사처럼 양산차와 라이선스 계약을 하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디자인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핫휠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은 단순히 실제 차를 모형으로 만든 것 때문이 아니다. 나름의 튜닝과 재해석, 리디자인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동차의 가치관을 넓혀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핫휠은 핫로드와 머슬카를 미국 취향의 차로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아이들이 자동차를 친숙하게 여기는 데 영향을 줬다. 최근 핫휠은 다양한 형태의 마케팅 활동에 집중한다. 핫휠 자체 디자인 모델을 실제 차로 만들거나 자동차 회사와 손잡고 특별판을 만들기도 한다(쉐보레 카마로 핫휠 에디션 패키지). <팀 핫휠>이라는 드라마 시리즈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발전시키고 있고, 2015년에는 영화도 개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