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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C 클래스, W205 시리즈가 바라는 바는 명확하다. 클래스가 다른 클래스, 세그먼트에서 가장 고급한 세단이다

2014.07.15

“어때요? 많이 좋아진 것 같나요?” 조수석에 앉은 이가 물었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뻔히 알고 하는 질문이었다. “무지무지요.” 거짓은 섞지 않았지만 뻔하고 무미건조한 대답이었다. 동승자가 무안했을까? 그러다 무언가 하나를 발견했다. “이걸 봐요. 운전대 왼쪽에 있는 인포테인먼트 리모컨 버튼이 되게 편하게 바뀌었어요. 최신 스마트폰처럼 메인 메뉴로 바로 접근하는 홈 버튼이 생겼거든요!” 그는 실소하며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서정적인 풍경이 담긴 창문으로 아예 고개를 돌렸다. 변명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관뒀다. 대신 덤덤하게 한마디를 보탰다. “정말 베이비 S 클래스라고 불러도 되겠어요.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괜한 공치사가 아니었다. 새로운 C 클래스는 클래스가 다르다는 인상을 안겼다. 제품 세계에서 고급과 저급의 차이는 공들인 세부에서 비롯한다. 운전대의 리모컨을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해하기 쉽고 다루기 편한 장치였다. 단순한 인터페이스지만 절차가 번거로웠던 이전 장치의 단점이 말끔히 해소돼 있었다. 공들인 세부는 그뿐만 아니었다. 와이퍼는 소리 없이 물기를 훔쳤고, 문은 조용하게 자물쇠를 채웠다. 창문은 시아버지 방문을 여닫는 며느리처럼 슬그머니 열렸다 살그머니 닫혔다(물론 어떤 모터 소음도 없었고). 그럴싸한 치장으로 적당히 흉내만 낸 고급 과 달랐다. 상위 차종에 버금가는 진짜 고급을 담았다는 인상이었다. 프랑스 마르세유에서의 글로벌 론칭 이벤트에서 만난 미하엘 크래머 중형차 생산그룹 담당 부사장의 한마디가 이를 뒷받침했다. “품질, 안전, 드라이빙 경험 어느 면에서건 클래스 이상의 클래스를 추구했습니다.”

C 클래스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실마리는 지난해 출시된 신형 S 클래스였다. 8년 만의 풀 모델 체인지는 S 클래스를 다시 한 번 대형 럭셔리 세단 시장의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스타일링과 인테리어부터 주행성능과 승차감, 안전성에서 품질에 이르는 거의 모든 항목에 있어 세그먼트의 꼭짓점에 다다라 있었다. 신형 C 클래스의 태도도 다르지 않다. 동급에서 가장 고급한 제품을 지향한다. 데뷔와 함께 시장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S 클래스의 존재는 신분 격상을 꿈꾸는 뉴 C 클래스의 유리구두나 다름없다.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다. “인상이 왠지 페이스리프트한 E 클래스하고 비슷해진 느낌이네.” 내 생각은 달랐다. C 클래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S 클래스에 가까웠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의 윤곽부터 옆구리를 가로지르는 두 가닥의 날카로운 선, 매끈하게 떨어지는 C필러에서 힘차게 쫑긋 솟은 트렁크 뒤끝 처리까지 신형 디자인은 S 클래스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하지만 디자인의 밀도는 S 클래스보다 C 클래스 쪽이 훨씬 나아 보였다. “S 클래스를 통해 선보인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스포티한 방식으로 해석했습니다.” 벤츠 디자인을 이끌고 있는 고든 바그너 부사장의 설명대로였다. 보닛을 길게 빼고 그린하우스는 뒤쪽으로 성큼 물린 덕에 신형 C 클래스의 디자인은 전례 없이 날렵해졌다.

새로운 얼굴은 두 가지 표정을 담는다. 아방가르드와 익스클루시브의 두 종류 트림에 따라서인데, 전통적인 벤츠 얼굴에 가까운 건 후자 쪽이다. 후드 끝에 세 꼭지별 장식이 달리고 라디에이터 그릴은 세 가닥의 가로줄로 차분하게 단장한다. 아방가르드엔 과감한 치장이 더해진다. 큼지막한 세 꼭지별을 담은 스포츠 그릴이 적용되고 두툼한 콧잔등도 보디 컬러로 통일된다. 여기에 AMG 라인까지 더해지면 분위기가 자못 험악하다. 활짝 입을 벌린 흡기구며 프런트 범퍼의 번쩍거리는 아랫입술을 보면 C 클래스가 언제부터 이렇게 야했나 싶다.

“새로운 C 클래스와의 드라이브는 즐거우셨습니까? 잠시 후 여러분은 프랑스 남부 카시 지역의 유일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비야 마디에서 에메랄드빛 지중해 바다를 감상하며” 부메스터 오디오의 은색 스피커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까지 들려온 내비게이션의 길안내 음성은 분명 아리따운(?) 독일 여성의 것이었다. 안내하는 내용도 길안내 정보치고는 꽤 친절하고 세세했다.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고 옆자리의 그가 말했다. “독일 본사에서 따로 입력해둔 모양이에요. 요즘 이런다는 얘기는 듣긴 했는데 저도 ‘당해보긴’ 처음이네요.” 그러잖아도 옆자리의 그와 ‘가진 건 많은데 표현할 줄 몰라 번번이 당하는’ 벤츠의 고지식함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었다. 순간 차가운 인상의 독일 중년남자가 뻣뻣한 웃음을 지으며 손님을 환대하는 모습이 떠올랐고,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중년남자의 물음에 답하자면 C 클래스와의 드라이브는 충분히 즐거웠다. 무엇보다 가볍고 깔끔한 움직임 덕에 운전이 피로하지 않았다. 신형은 이전보다 훌쩍 커졌다. 휠베이스와 너비가 각각 80밀리미터, 40밀리미터씩 늘어나 자세가 한층 당당하다. 하지만 알루미늄 비중이 48퍼센트까지 늘어난 하이브리드 섀시 덕분에 차체 무게는 오히려 최대 100킬로그램가량 가볍다. 문과 보닛, 앞 펜더와 트렁크 리드 등 차체 패널도 알루미늄이 대폭 쓰였다. 승객석을 덮고 있는 지붕 패널 역시 알루미늄이다. 자연스레 무게중심도 지면에 더 가깝게 당겨졌다.

가벼워진 차체가 벤츠 특유의 안정감을 해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기우였다. 도로의 팬 곳이나 둔덕을 넘을 때의 충격은 꿀떡꿀떡 삼켜버렸고 2차 진동은 부드럽게 정리됐다. 굽은 길을 휘저을 때의 몸놀림은 면도날처럼 매섭기보다 흐르는 물처럼 유연했다. 머리가 가볍게 코너를 찌르면 엉덩이가 자연스럽게 뒤를 따랐다. 자극은 크지 않지만 억지도 없는, 모범적인 움직임이었다. “운전을 참 매끄럽게 잘하시네요.” 동승자가 말했다. 차가 매끄럽게 움직여줘서 그런 거란 설명은 보태지 않았다.

윤택한 주행 품질은 고속에 다다라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차체의 네 귀퉁이를 붙들고 있는 에어매틱(에어 스프링) 시스템의 공이 컸다. 콤팩트 세그먼트 차 최초로 달린 에어 스프링은 한결 가뿐해진 차체를 힘있게 노면으로 당기며 C 클래스가 지녔던 예의 안정감을 유지했다. 새롭게 마련된 어질리티 셀렉트(Agility Select) 주행 모드의 역할도 도드라졌다. 이 기능은 에코와 컴포트, 스포트와 스포트 플러스 그리고 인디비주얼의 다섯 가지 세팅 안에서 파워트레인과 스티어링, 섀시를 제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에어컨의 세기까지 조절한다. 주행감각의 변화는 즉각적이었다. 에코와 스포트 플러스 모드의 차이는 신발 끈을 느슨하게 묶거나 탄탄하게 조이고 전력 질주할 때의 차이만큼이나 현격했다. 하지만 온몸에 긴장감이 감도는 스포트 모드에서의 고속주행은 어딘가 낯설었다. 묵직한 가운데 부드러운 이전 C 클래스의 느낌을 기억하는 내 몸은 컴포트 모드로의 주행을 더 반겼다. 주행감각에 풍요로움을 더한 에어매틱은 마르세유에서 경험한 모든 C 클래스에 올라가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추가 옵션. 수비 범위가 넓은 신형 C 클래스 섀시에 대한 최종 평가는 에어매틱이 없는 모델을 몰아본 뒤 내려도 늦지 않겠다.

신형은 파워트레인 구성도 크게 달라졌다. 가솔린은 3가지 엔진이 4종류의 라인업을 짠다. 구형에 올라갔던 1.8리터 터보는 새로운 2.0리터 터보로 바뀌어 184마력(C 200)과 211마력(C 250)의 힘을 내고, 아래로는 완전 신형 1.6리터 터보 156마력(C 180)이 더해졌다. 최상위 C 400 4매틱은 333마력의 3.0리터 V6 터보 엔진을 얹는다. 디젤은 기존의 2.2리터 4기통(163마력, 170마력, 204마력)과 새로 개발된 1.6리터 4기통(116마력, 136마력) 두 종류로 6가지 라인업을 꾸린다(C 180, C 200, C 220 에코, C 220, C 250, C 300 하이브리드). 이 중 국내에는 C 200(가솔린)과 C 220 블루텍(디젤)이 소개된다.

마르세유에서 미리 겪어본 제품은 C 220 블루텍으로 2.2리터 4기통 170마력과 7G트로닉 플러스 7단 자동의 익숙한 조합이다. 하지만 엔진의 진동과 소음이 깔끔하게 정리되고 변속도 한층 매끈해졌다. 낡은 느낌은커녕 세련된 감각이 이전보다 훨씬 진하다. 2.2리터 4기통 디젤은 오래됐다고 무시하기엔 장점이 아주 또렷하다. 1400rpm부터 나오는 40.8kg嫥의 힘이 2800rpm까지 이어질 만큼 토크밴드가 넓고, 터보 지체 현상도 크지 않다. 7단 자동은 변속이 정말 부드럽다. 가장 자극적인 스포트 플러스 모드에서조차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다. 컴포트 모드는 거의 에코 모드에 가깝다. 그만큼 변속에 소극적인데, 에코 모드를 겪어보고 나면 생각이 바뀐다. 이때는 아예 변속할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C 클래스의 모든 엔진은 유로6 배기가스 기준을 통과했다. 나아가 괄목상대한 C 220 블루텍은 한국에서 리터당 17.4킬로미터의 복합연비를 얻어냈다. 구형의 연비는 리터당 15.6킬로미터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괜찮겠죠?” 거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조수석의 그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대답할지 뻔히 알면서 묻기는하지만 그의 질문은 끝난 게 아니었다. “3시리즈하고 비교하면 어때요?” 이런, 정말 말하기 곤란한 주제다. 주저하는 척했지만 마음속엔 이미 어떤 확신이 들어차 있었다. 신형 C 클래스는 시장을 긴장케 할 만한 상품이다. S 클래스와 닮은 화려한 외모 때문만이 아니다. 주행감각은 질 좋은 가죽 같다. 승차감은 여유작작이다. 파워트레인은 차분함과 효율을 더했다. 하나 우려됐던 건 한국 시판사양의 편의장비 구성이었는데, 출시된 정보를 훑어보니 걱정할 일이 없겠다. 손목받침 겸용인 터치패드 컨트롤러(손글씨 입력과 멀티터치 조작이 가능하다)가 기본이고 아이패드처럼 생긴 센터콘솔의 커맨드 컬러 디스플레이도 8.4인치로 화면이 시원시원하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엔트리 모델인 C 200을 제외한 전 모델에 기본 장착된다. 에어매틱 시스템은 추가 옵션이지만 대신 가변 댐퍼 기반의 어질리티 컨트롤을 갖추고, 자연스러운 반응이 돋보이는 전동기계식 다이렉트 스티어 시스템 역시 기본 장비로 마련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차는 인테리어가 정말 일품이다. 값비싼 소재가 아낌없이 쓰였고, 스포티한데 우아하기까지 하다. 인테리어의 품질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과거는 깨끗이 정리됐다.

3시리즈와의 경쟁 구도라면‘고급’이라는 대목에선 3시리즈뿐 아니라 세그먼트의 어떤 모델도 새로운 C 클래스에 미치지 못한다. 핸들링이라는 관점에서는 충분히 날카롭고 정교하며 동시에 차분하다. 하지만 뮌헨의 경쟁모델처럼 도로에 착착 감기는 쾌감과 자극은 적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많은 걸 가진 신형 C 클래스는 뮌헨 태생 라이벌과 다른 길을 가려 한다. 스포츠 세단보다 럭셔리 세단에 방점을 찍은 행보다.

나는 에둘러 말했다. “경쟁사에서 긴장은 하겠어요.”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그는 이내 마르세유 구 항구의 복잡한 골목 풍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나저나, 무슨 향수 쓰세요? 아까부터 기분 좋은 향이 나는데 제가 향수는 통 몰라서.” 그가 답했다. “저 향수 안 써요. 이 차에 에어 밸런스 패키지가 추가돼 있나 본데요?” 아닌 게 아니라 글러브 박스 안에는 예쁜 향수병이 담겨 있었다. 에어 밸런스 패키지는 설레는 향기뿐 아니라 살균, 공기청정 등의 기능도 겸한다. 추가해 써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옵션이다.

CREDIT

EDITOR : 김형준PHOTO : MOTORTR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