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가 서울로 올라와 살면서 가장 의아했던 것은 먹을거리와 관련해서였다. 부산에서 즐겨 먹던 돼지국밥, 밀면, 복국 같은 음식이 서울에서는 웬일인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가 반갑게도 밀면 전문점이나 돼지국밥 전문점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끝내 오래가지는 못했다(요즘 들어서는 좀 바뀐 듯도 하다). 전국 팔도를 샅샅이 뒤지진 못했지만 아무래도 그 세 가지를 모두 즐겨 먹는 곳은 부산이 유일한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그 맛있는 것을 다른 지방 사람들은 왜 즐겨 먹지 않을까? 나는 몹시 궁금했고 아쉬웠다(어묵이면 어묵이지 왜 하필 ‘부산 어묵’인지도 몹시 궁금했고 그에 대해서 따로 조사한 결과도 있지만 이 지면의 성격과 딱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다른 기회를 기약하겠다).

 

아쉬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서울 사람들은 곧잘 말했다. “부산 사람들은 잘 속는다”고, “조금만 분위기를 맞춰주면 금방 신나서 선심을 쓰곤 한다”고. 나는 그 주장에 반박하지 못했다. 나부터 그랬으니까. 나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부산 사람들은 으레 그랬으니까. 물론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부산 사람들이라는 통칭 속에는 그런 경향과 기질이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나는 기죽지 않았다. 그런 기질이 다른 사람에게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신 부산 사람들에게 왜 그런 기질이 생겼는지 궁금해졌다. 왜 그럴까? 왜 부산 사람들은 사람들 말을 잘 믿고 선심을 잘 쓰는 것일까? 

 

지난해 10월 5일은 부산이 직할시가 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에 따라 부산시는 그 전날 ‘부산시민의 날’ 행사를 가졌는데 그때 선언문이 발표됐다. 부산의 향후 100년의 정신적 푯대가 될 미래가치를 포용성, 역동성, 해양성, 쾌적성, 의리성이라고 규정한 선언이었다. 쉽게 말해 부산 사람들의 기질이 그 다섯 가지로 대표된다는 주장이고 단정이었다. 해양성과 쾌적성이야 사람이 아니라 부산이라는 도시의 환경과 관계된 항목. 그렇다면 부산 사람들은 스스로를 남을 잘 포용하고 역동적이며 의리 있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부산 사람들은 다른 곳 사람들보다 ‘남의 것’을 더 잘 받아들인다. 자갈치시장만 가보면 그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말씨가 조금만 달라도 어디서 왔는지부터 묻고 웃으며 반긴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그 친절이 단지 장삿속만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해양도시라는 지리적 특성만으로 간단히 설명되지 않는다. 역사적 경험을 들춰봐야 비로소 그 진정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역사적 경험이란 바로 광복과 한국전쟁을 뜻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끌려간 수많은 사람들이 광복을 기점으로 배를 타고 돌아와 부산에 터를 잡았다. 한국전쟁 때는 전국에서 피란민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그처럼 짧은 시간 동안 전국 사람들이 압축적으로 몰려들어 살게 된 이른바 ‘멜팅 폿(Melting Pot)’은 전국에서 부산이 유일하다. 그 북적거리는 삶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지혜를 터득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남을 무시하거나 배척해서는 자신부터 잘 살 수 없음을 경험으로 알게 됐고, 그러면서 타인과 더불어 사는 요령을 다른 곳의 어느 누구보다 잘 알게 됐을 것이다. 그 요령이 다름 아닌 타인에 대 한 배려와 신뢰였던 것이다. 

 

부산 사람들의 포용성에 관련해서는 다른 이유도 있다.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은 그것을 부산 사람 특유의 ‘뱃사람 기질’로 설명한다. 

 

“상상해보십시오. 망망대해에 배 한 척이 떠 있고 그 위에서 선원들이 작업합니다. 그 작은 사회에서 어떤 개인이 다른 구성원들을 무시하고 배척한다고 칩시다. 바다 위에서 그 개인이 제대로 버텨낼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을 겁니다. 오래전부터 배를 타고 어업에 종사했던 부산 사람들은 서로 도와야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부산의 정서는 바로 그 뱃사람 기질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기질은 다시 역동성과도 연결된다. 선원 한 사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운데에서 적극적이지 않아서는 살아남기 힘들어진다. 끊임없이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힘든 상황 속에서 생존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동적이지 않아서는 곤란했고, 그런 과거가 지금 부산 사람들의 역동적인 기질을 탄생시켰다고 봐야 한다. 

 

물론 그 기질은 때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나부터 그렇다. 고향 친구들과 만나 술을 나누는 자리에서 “좀 조용히 해주세요” 하는 경고를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원래 좀 시끄럽습니다” 하고 얼버무리며 멋쩍어하곤 하는데 시끄러운 속성을 좋게 포장하기는 힘들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면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 사람들이니만큼 의리가 있을 것은 당연하다. 요즘 유행하는 ‘으리’가 부산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유행어가 돼 있었던 것이다. <해운대>라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가. “부산에서 태어났으면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게 당연하다”는 설경구의 그 대사 말이다. 부산 사람들은 부산에서 태어났다면 자이언츠를 응원해야 하는 것을 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리는 부산 사람들의 정서에 아주 깊게 뿌리박혀 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부산 사람들은 왜 남의 말을 잘 믿을까? 왜 조금만 맞춰주면 금방 신나서 선심을 쓰곤 할까? 나는 이 포용성과 역동성, 의리가 버무려지면서 그런 경향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세 가지가 뒤섞이며 만들어진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부산 사람들에게는 허풍이 좀 있다. 열에 일고여덟은 큰소리치기를 즐긴다. 주위를 살펴보라. 부산 사람치고 쭈뼛쭈뼛한 이를 본 적이 있는지. 그들은 대부분 활기찬 동시에 허풍을 떨어댈 것이다(물론 나를 포함해서다). 이런 기질은 아마도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형성됐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수입차협회 통계가 흥미롭다. 부산의 수입차 시장 부문이 특히 그렇다. 부산 시장에서 아우디, 벤츠, BMW의 고성능 모델이 서울보다 많이 팔렸다는 결과 때문이다. 특히 벤츠가 유난히 많이 팔렸다. 크고 고성능인차들이 서울보다 많이 팔렸다. 컨버터블도 많이 팔렸다는 점도 눈에 띈다. 나는 이런 결과가 우연이 아니라고 여긴다. 남과 더불어 살면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기껏 보여줄 바에는 좋은 면을 드러내는 것이 기왕이면 다홍치마. 좋은 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열망, 이것이 크고 성능 좋은 자동차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급기야 벤츠와 컨버터블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 이런 추측은  <친구>의 대사가 뒷받침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와 그랬노?”라는 상택의 질문에 준석이 뭐라고 답했는지 생각해보라. “쪽팔리서” 그랬다는 것 아닌가. ‘쪽팔리기’ 싫어하는 것은 건달만이 아니다. 부산 사람들 일고여덟은 ‘쪽팔리기’를 아주 싫어한다. 그런 사람들이 크고 좋은 자동차를 선호하는 것은 되레 당연하다. 

 

부산 사람으로서 나는 그런 부산 기질이 싫지만은 않다. 때로는 지나치게 시끄러운 기질이 창피하고 못마땅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순수하다는 증거라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 속내가 음흉하다면 그럴 수 있겠는가? 속마음이 시커멓다면 남의 말을 잘 믿고 조금만 분위기를 맞춰주면 선심을 쓸 수 있겠는가? 그러기 쉽지 않을 것이다. 부산 사람들은 순수하다. 그리고 친절하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말투는 거칠지만 속은 아주 여리고 곱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