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는 오로지 달리는 재미만 생각한다. 일반 승용차보다 겉모습이 멋지고 빠르게 달리지만 실용성은 떨어진다. 성능을 더 내기 위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한다. 엔진은 클수록 좋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대신 무게를 줄이면 된다. 가장 쉬운 방법은 편의장비를 덜어내는 거다. 과거엔 에어컨은 물론이고, 오디오를 달지 않은 스포츠카도 많았다. 케이터햄 세븐 같은 차가 문득 떠오른다. 엔진은 작지만 가벼운 무게 덕에 여유로운 성능을 기대할 수 있는 차다. 

스포츠카는 운전자만 타면 되지만 애써 조수석을 없앨 필요는 없다. 요즘은 2+2 시트 구조도 많은데 네 사람이 타기보다는 공간에 여유를 두기 위함이다. 짐은 싣지 않아도 괜찮다. 승차감 따위는 사치다. 그보다는 폭발적인 가속성능과 핸들링, 그리고 브레이크 성능이 중요하다. 브레이크가 강하면 코너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 차가 가볍다면 솔직히 파워스티어링도 필요 없다. 

스포츠카를 타고 최고속도로 내달리는 것도 좋지만 내 취향은 구불거리는 산길을 빠른 속도로 달리는 거다. 그럴 때 코너마다 끈끈하게 들러붙는 접지력과 핸들링이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차가 필요하다. 배기음은 클수록 좋다. 정숙성은 논하지 마라. 머플러 배기 사운드보다 즐거운 음악은 없으니까.
컨버터블도 좋긴 하지만 쿠페는 스포츠카의 본질에 더욱 충실하다. 가볍고 단단한 차체는 트랙을 달리는 데 유리하다. 이상적인 스포츠카를 머릿속에 그리며 미국 스포츠카의 아이콘 포드 머스탱과 레이스 전통에 빛나는 영국 스포츠카 재규어 F 타입을 불렀다. 2도어 쿠페 스타일의 두 차를 보며 난 전혀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다.

 

 

JAGUAR F TYPE 
왠지 스포츠카의 시작은 영국 같다. 자동차가 귀족의 장난감이던 여명기부터 그들은 자동차 경주를 하고, 랠리와 힐 클라이밍 같은 자동차 스포츠를 즐겼다. 1960년대 등장한 영국의 많은 로드스터도 떠오른다. MG, 재규어, 로터스, 트라이엄프, 오스틴 힐리 등 주옥같은 차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F 타입은 1960년대의 명차 재규어 E 타입을 잇는 차다. 안팎으로 고급스럽지만 한편으로 콤팩트한 크기가 과거 영국 스포츠카를 대표한다는 생각이다.

이언 칼럼이 빚은 F 타입은 아름다운 차체가 눈부시다. 보닛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차가 조금만 더 낮았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지만 이제는 눈에 익은 조형미가 완벽하다. 초경량 알루미늄 모노코크 차체는 어느 곳 하나 손댈 곳 없는 쿠페 라인이다. 정해진 길이 안에서 최상의 실루엣을 뽑아냈다. 데뷔 이래 큰 변화를 꺼리지만 LED 헤드라이트 등 가볍게 손을 본 F 타입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다이내믹하고 어쿠스틱한 매력을 어필한다. 재규어는 F 타입이 살아 있는 감성체, 그리고 브리티시 럭셔리를 추구한다고 했다.

운전석에 앉자 장갑차에 탄 느낌이다. 나를 둘러싼 유리창이 나지막한데, B 필러 옆으로 롤케이지 같은 지지대도 보인다. 마그네슘 프레임의 ‘슬림 라인’ 시트가 몸을 단단히 지지한다. 스포츠카는 시트를 뒤로 젖힐 수 없다. 오직 달리기 위한 차에서 뒤로 누울 생각은 없다. 뒤 해치도어를 열면 작은 트렁크 공간이 나타나는데 스페어타이어가 한가운데 자리해 아무것도 실을 수 없다. 이 차의 구조상 타이어 수리 키트만 싣는 게 정상이지만 스페어타이어를 실으면서 물건 싣기를 포기했다. 여행용 가방 하나 싣지 못하는 차를 보면서 이 차는 정말 뼛속까지 스포티하다는 생각이 든다. 멋과 스포츠를 위해 제대로 된 자동차이기를 포기했다.

 

시승차는 F 타입 모델 중 380마력짜리다. 3.0리터 V6 슈퍼차저 엔진은 일상적인 달리기에서 부드럽고 조용하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이 4.9초이며 최고속도는 시속 275킬로미터에 이른다. 하지만 차가 무척 부드러운 탓에 380마력이 실감나지 않는다. 짧은 시승 시간 동안 F 타입의 진가를 알고 싶었다. 기어 레버를 S 모드에 두고, 체커기가 표시된 버튼을 눌렀다. 다이내믹 모드에서 스로틀이 민감해지고 트랜스미션 반응이 빨라진다. 머플러 사운드 버튼도 눌렀다. 차가 그르렁대며 전혀 다른 성격을 드러낸다.

시프트 패들로 8단 기어를 조작하며 달리는 맛이 즐겁다. 찢어지는 듯한 배기음과 무지막지한 박진감 속에 달리는 기분이 삼삼하다. 좁고 한가한 국도는 ‘S’자로 이어진다. 노면이 거칠어 충격이 크고, 접지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 스티어링휠은 정확하지만 안정감은 크지 않다. F 타입의 조금 높아 보이는 무게중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속으로 갈수록 긴장감이 커진다. 이게 재미다. 룸미러로 뒷유리를 보니 안정감을 더하려고 트렁크 리드의 스포일러가 벌떡 일어났다. 

일반 승용차를 몰 땐 그렇지 않은데 갑자기 과격해지는 건 F 타입이 스포츠카이기 때문이다. 타는 사람마다 거칠게 다루는 것은 스포츠카의 숙명이다. 노멀 모드에서 F 타입은 다시 부드럽고 조용한 차가 됐다. 조금 심심한 것도 같지만 머스탱에서 찾을 수 없는 우아함과 세련됨, 그리고 영국 스포츠카의 후광이 F 타입의 매력이다. F 타입은 한 차종에 8800만원부터 2억2460만원까지 다양한 트림과 모델을 갖췄다. 비교적 아랫급 모델인 오늘 시승차에 2억원짜리 슈퍼카의 기운이 감돈다.

 

안팎으로 디자인을 다듬은 새로운 머스탱은 우락부락함이 더해져 머슬카의 매력이 진하다. F 타입은 이언 칼럼이 빚은 차체가 눈부시다. 어느 곳 하나 손댈 곳 없는 쿠페 라인이다.

 

 

 

 

FORD MUSTANG 
“스포츠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머스탱이다”라고 답해도 된다. 머스탱은 1964년 데뷔 이래 900만대 이상 팔린 베스트셀링 스포츠카로, 지난 3년 동안 세계 스포츠카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한 해 12만대 이상 팔리는데 그중 3분의 1이 해외 판매로, 유럽에서 인기 있는 미국차이기도 하다. 머스탱은 처음부터 멋지고 실용적이며, 값이 적절했다. 싼값에 누구나 원하는 드림카를 가질 수 있었다. 2018년에도 머스탱은 미국인의 드림카로 뽑혔다. ‘메이드 인 USA’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젊음과 야성, 그리고 힘을 표현하는 머스탱은 그 어느 차보다 미국인의 감성에 호소한다. 미국인들은 하나같이 머스탱을 타면 차 안의 내가 멋져 보인다고 말한다.

오늘 온 머스탱은 2015년에 출시된 6세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미국차로는 아담한 크기에 보닛이 긴 2도어 패스트백 실루엣이 눈에 익는다. 전통 깊은 머스탱 디자인에 우락부락함이 더해진 신형은 머슬카의 매력이 진하다. 시승차는 앞쪽에 커다란 립 스포일러와 뒤에 큼직한 윙 스포일러를 달았다. 

291마력을 내는 2.3리터 에코부스트 엔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이미지 리더는 V8 엔진을 얹은 모델이다. 시승차는 5.0이라는 커다란 엠블럼이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차례로 하나씩 켜지는 방향지시등 역시 머스탱의 중요한 디자인 요소다. 그 아래 네 개의 배기 파이프가 우람하다. 12인치 LCD 계기반이 만드는 다양한 변화가 재미있다. 머스탱의 대시보드는 몇 가지 계기가 추가됐지만 스포츠카보다는 일상적인 차로 타기에 편하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많이 팔렸다. 센터콘솔에 달린 핸드 브레이크 레버는 차를 잡아 돌리는 재미를 기대하게 한다.

 

2+2 시트의 성격을 강조한 비좁은 뒷자리는 머스탱이 스포츠카임을 분명히 한다. 해치백도 아닌 차의 비좁은 뒷자리는 스포츠카의 불편함을 은근히 즐기는 눈치다. 시동을 걸자 엔진이 으르렁거린다. 가만히 서 있는 머스탱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최고출력 446마력. V8 엔진의 위엄이다. 노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트랙, 드래그라고 이름 붙은 주행모드가 무시무시하다. 10단 기어는 평지를 달릴 때도 쿨렁거린다. 부글대고 으르렁대며 온갖 잡소리가 흥겨운 머스탱은 이렇게 전형적인 미국차로 만들어졌다. 이 차는 마초 맨의 머슬카다. 이 차에서 정숙성을 찾는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미국차 머스탱은 덜컹거리긴 해도 내구성이 좋은 차로 영원히 달릴 기세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이 4.3초에 불과한 차로 2차로의 좁은 길에서 과속하기는 불안하다. 익숙해지면 좀 더 과감하게 몰아가겠지만. 스포츠카는 차의 성격을 알고 달래면서 최상의 성능을 뽑아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중적인 스포츠카가 완벽하기를 바라진 않는다. 단점을 알고 달래가며 내가 차에 익숙해져야 한다. 리지드 액슬을 단 불과 4년 전의  머스탱을 생각하면 지금 차의 주행성능은 나무랄 데가 없다. 마그네라이드 댐핑 시스템은 자기장을 이용해 100분의 1초 단위로 감쇄력을 조절한다. 브렘보 브레이크를 믿기에 마음껏 몰아칠 수 있다. 거친 야생마도 고속도로에서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마음 편하게 몰고 다니는 차로 충분하다. 머스탱의 성공 이유 중 하나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차선 이탈방지 시스템 등 스포츠카에 이런 게 필요한가 싶지만 머스탱을 출퇴근용으로 타는 사람도 많으니 수긍이 간다. F 타입의 절반 값인 머스탱에는 온갖 장비가 넘쳐난다. 아침 일찍 드라이브를 나갈 때면 조용히 시동을 걸고, 이름 모를 계기반 화면에서 온갖 주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짧은 시승 동안 시도해보지 못한 장비가 넘쳐난다.

오늘 시승에서도 새삼 느끼지만 포드의 매력은 ‘가치’가 크다는 것이다. 값을 생각할 때 많은 것을 얻는다. SUV 생산에 밀려 승용차 생산을 그만두려는 포드지만 머스탱의 미래는 확고하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차 머스탱은 포드 엠블럼을 붙이지 않는다. 포드가 자신의 차라는 것을 내세울 필요가 없는 차, 머스탱은 그냥 머스탱인 거다.   

 

머스탱은 스티어링휠에 야생마 로고를 붙였다. 큼직한 스티어링휠에서 머슬카의 매력이 묻어난다.

 

 

 

 

 

 

모터트렌드, 포드, 재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