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단에서 시속 160킬로미터로 달리던 난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어깨 뒤에서 8.0리터 16기통의 거대한 엔진이 ‘쉬익’ 하는 소리를 냈고, 부가티 시론은 지평선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난 정확히 6556rpm에서 5단으로 변속했다. 네 개의 터보차저가 26.8psi에 달하는 부스트를 만들어내고, 매초 991리터나 되는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리고 연결돼 있는 로드에 각각 1300킬로그램의 최고 압력이 주입된다. 냉각을 위한 워터펌프는 당신의 욕실에 있는 욕조를 11초 만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속도로 순환을 계속한다. 스로틀이 완전히 열린 상태에서 연료펌프는 100리터짜리 연료탱크를 약 7분 만에 모두 빨아들일 수 있다. 계기반은 시속 322킬로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부가티 엔지니어들에 따르면 시론의 0→시속 97킬로미터 가속 시간은 2.5초가 채 되지 않는다. 시속 200킬로미터는 6.5초 미만, 시속 300킬로미터는 13.6초 안에 도달한다. 운전자 입장에서 최고출력 1479마력, 최대토크 163kg·m를 내는 심장과 큼직한 타이어,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일 수밖에 없다. 일반 도로를 달릴 땐 최고속도가 시속 420킬로미터로 제한된다. 그렇다, 이게 제한된 속도다. 부가티의 수장 볼프강 뒤르하이머(Wolfgang D?rheimer)에 따르면 시론은 베이론 슈퍼 스포츠가 세운 최고속 기록(시속 431.3킬로미터)을 가뿐히 넘어설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론의 정확한 실력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가벼운 미소로 “고객들을 위한 깜짝 선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TOP SPEED 네 개의 드라이브 모드는 스티어링휠 왼쪽에 있는 컨트롤러로 조작할 수 있다. 단, 속도를 최고로 끌어올리는 톱 스피드 모드를 사용하려면 특별한 키가 필요하다.

 

부가티 시론은 모든 면에서 탁월하다. 10년 넘게 스피드와 파워의 대명사로 군림해온 부가티 베이론보다 빠르고, 강력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299만8000달러(약 33억7200만원)라는 엄청난 가격 때문만도 아니다. 시론이 부가티의 새로운 대명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이전 모델에 비해 더 부드럽고 세련되며, 무엇보다 주행이 즐겁기 때문이다. 베이론은 지금까지 ‘과격함’과 ‘초고속’이라는 단어로 정의돼왔다. 그런데 시론은 여기에 날렵함과 개성적인 매력을 더했으며, 기술과 럭셔리가 멋지게 어우러져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뒤르하이머가 시론의 개발을 위해 베이론의 대부로 불리는 페르디난트 피에히에게 주문받은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모든 면에서 뛰어날 것. 이 주문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은 엔진에서 시작한다. 강력한 W16 엔진의 기본 구조는 이전 모델과 같지만 베이론 슈퍼 스포츠에 비해 8퍼센트 이상의 힘과 9퍼센트 이상의 토크를 지속적으로 낼 수 있도록 새로 디자인됐다. 늘어난 힘은 베이론 슈퍼 스포츠에 사용한 것보다 69퍼센트 커진 네 개의 터보차저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저회전 영역에선 16개의 실린더에서 배출된 가스가 양쪽 블록에 있는 두 개의 터보차저에만 주입되는데 3800rpm이 넘는 순간 각각의 배기 매니폴드에 달린 덮개가 열리며 두 번째 터보차저에 힘을 전달한다. 이 결과로 토크가 탄도미사일 궤적처럼 6000rpm까지 치솟는다. 

새로운 엔진이 담긴 카본파이버로 모노코크 섀시의 비틀림강성은 5만Nm/deg에 달한다. 이건 LMP1 클래스에 출전하는 경주차 수준이다. 부가티는 이미 여러 차례 이와 같은 모노코크 섀시로 알루미늄 구조물과의 충돌 테스트를 실시해 통과했다. 이 테스트의 엄격함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게 얼마나 놀라운 기록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스펜션은 높이 조절이 가능하고 가변 댐퍼를 갖췄다. 시론의 엔지니어들은 파워스티어링의 전자 컨트롤과 네바퀴굴림 시스템의 토크 분배, 리어 디퍼렌셜, 에어로다이내믹스, 브레이크 시스템 컨트롤 등을 아우르는 다섯 가지 드라이브 모드(리프트, EB, 아우토반, 핸들링, 톱 스피드)를 만들어냈다. EB는 가장 기본적인 드라이브 모드다. 리프트 모드는 차체 앞뒤를 10밀리미터씩 들어 올려 트럭이나 항공기 등에 차를 올리거나 가파른 언덕이나 과속방지턱 등을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모드다. 시속 180킬로미터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아우토반 모드는 차체 앞쪽을 20.3밀리미터 낮춰 고속으로 달릴 때 공기저항을 덜 받도록 해줄 뿐 아니라 스티어링도 묵직하게 해 안정감을 높인다. 리어 스포일러도 한층 들어 올린다. 핸들링 모드는 서스펜션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며, 댐퍼가 차체의 반동에 반응하는 속도를 50퍼센트 높인다. 또 스티어링휠을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토크를 집중시키며, 다운포스를 높이기 위해 리어 윙이 뒤로 젖혀진다. 

시속 322킬로미터로 달릴 때도 시론의 차체는 놀라우리만큼 안정적이다. 이 차가 지금 최대 전력의 75퍼센트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운전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아우토반 모드와 핸들링 모드에선 최고시속 380킬로미터까지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더 빠른 속도를 내려면 톱 스피드 모드로 바꿔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운전석 아래에 있는 슬롯에 특별한 스피드 키를 꽂아야 한다. 물론 차가 정지한 상태에서. 시론의 디지털 네트워크가 특별한 키를 확인하고 나면 차체 앞쪽이 추가로 15밀리미터, 뒤쪽이 30.5밀리미터 낮아져 아스팔트와 더욱 가깝게 만든다. 최대한 펼쳐진 리어 윙은 카본파이버를 두른 보디에 착 달라붙어 더욱 날카로운 각을 만든다. 이 수치는 모두 공기저항을 낮추며 속력을 시속 420킬로미터까지 끌어올리도록 계산됐다. 

시론의 한계를 경험하고 싶은 오너를 위해 부가티는 밸런스를 정밀하게 조정한 특별한 휠과 타이어를 제공한다. 최고속 주행 동안 모니터링할 수 있는 센서와 배터리도 제공한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시트에 거칠게 파묻히는 몸을 겨우 가누면서 드는 생각은 스로틀 반응이 더욱 날카로워진다는 것이다. 진화한 W16 엔진은 시론의 코너 주행을 더욱 정밀하게 만들어줬다. 베이론에선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묵직한 스티어링휠은 도로 상황을 세밀하게 전달한다. 시론은 절대 작은 차가 아니다. 너비는 거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맞먹으며 무게는 아우디 A8과 비슷하다. 하지만 베이론과는 달리 2차선 도로를 달릴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줄었다. 시론의 섀시 튜닝과 밸런스, 스티어링의 최종 수정을 감수한 로리스 비코치(Loris Bicocchi) 덕분이다. 가장 중요한 건 타이어 스펙의 변화다. 시론의 뒤 타이어는 베이론과 비교하면 좁지만 지름이 약 30밀리미터 커졌으며, 앞 타이어는 더욱 넓어졌다. “이로써 정상적으로 코너를 달릴 때 기계적인 밸런스가 크게 좋아졌습니다.” 비코치의 말이다. 이 말은 곧 언더스티어 현상이 줄었다는 얘기다. 

 

시론의 충격적인 주행 성능만큼이나 놀라운 건 시속 32~64킬로미터로 도심을 주행할 때의 차분함이다. 도심에서 시론은 매우 조용하고 안락하며, 서스펜션은 놀라울 만큼 능숙하게 도로의 요철을 넘나든다.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일정한 비율로 매끄럽게 작동하며, 핸들링은 매우 가볍고 정밀하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는 매끄럽게 속도를 줄인다. 뒷자리에 아이들을 태운 엄마가 운전하는 혼다 어코드만큼이나 반응이 날카롭다. 환상적인 인테리어를 갖춘 실내는 둘이 타기에 놀라울 만큼 넓으며, 대시보드를 세로로 가르는 인터페이스는 애플 제품만큼이나 심플하고 직관적이다. 둥근 컨트롤러는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디지털 스크린에 보이는 정보를 바꿀 수 있다. 계기반에 달린 스크린의 퍼포먼스 모드에 따르면 난 시속 324킬로미터에 도달할 때까지 6556rpm, 1437마력을 사용했다. 42마력을 더 사용할 수 있는 거였다. 더 밟아볼걸 그랬나?

오일 압력과 수온, 타이어 공기압 등 부수적인 정보는 시속 500킬로미터까지 표시된 큼직한 속도계 양옆에 있는 디지털 스크린에 나타난다(미국에서 판매되는 시론의 속도계는 시속 300마일까지 표시될 예정이다). 어째서 속도계만 아날로그 방식이지? “시동이 꺼 있는 상태에서도 숫자를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뒤르하이머의 말이다. “고객들이 차의 내부를 살펴볼 때 계기반에 적힌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차가 얼마나 빠른지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죠? 계기반에 시속 500킬로미터까지 표시돼 있더라고!” 현명한 판단이다.

시론은 하이퍼카와 그랜드 투어링카를 더한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을 것만 같은 느낌이나 급격히 빨라지는 심장 박동, 식은땀으로 손이 축축해지는 등의 긴장감 없이도 빨리, 매우 엄청나게 빨리 달릴 수 있다. 시론의 어마어마한 힘은 엄숙한 고요함 뒤에 숨어 있다. 누군가는 이토록 빠르고 강력하며, 비싼 차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부가티 시론이 대변하는 위대한 엔지니어링의 업적을 무시하는 처사다. 뒤르하이머는 능숙한 솜씨로 시론을 자동차 역사의 한 부분에 올려놨다. “제 생각엔 이 차가 내연기관 자동차 역사의 맨 꼭대기에 위치할 것 같습니다.” 시론의 왕좌를 물려받는 차는 필연적으로 고성능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될 것이라는 의미를 흘리면서 그가 말했다. “앞으로 30년 후의 사람들은 이 시절을 돌이켜보며 ‘옛날엔 차를 저런 방식으로 만들었지’라고 회상하겠죠.” 지당하신 말씀이다.  
글_Angus MacKenzie

 

 

검은 매직 : 부가티 시론 톱 스피드의 진정한 비밀
대부분의 자동차 오너들에게 타이어란 그저 자주 닳아 없어지는, 동그랗고 검은 물건일 뿐이다. 너무 많이 닳아 꼼꼼한 교통경찰에게 딱지를 끊길 지경이 되어서야 교체하는 비싼 소모품이다. 하지만 부가티 시론의 오너들에게 타이어란 자신의 차를 합법적으로 도로 위를 달리는 가장 빠른 머신으로 만들어주는 키포인트다. 1479마력에 달하는 엔진? 에어로다이내믹 시스템? 정교하게 튜닝된 서스펜션과 스티어링 그리고 브레이크? 이 모두가 시속 42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려도 거뜬한 타이어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시론의 거대한 합금 휠을 감싸는, 특수 제작된 미쉐린 타이어는 반론의 여지 없이 탁월한 기술적 업적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거대하고 빠른 부가티를 현실로 만들어준 주인공이다. 

정확히 15년 전 타이어 제조사들은 베이론만을 위한 특수 타이어를 제작해줄 수 있느냐는 부가티 엔지니어들을 비웃었다. “불가능합니다.” 그들의 대답이었다. 베이론은 너무 빠르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어느 제조사도 베이론의 마찰력을 견디며 일반 도로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내구성이 좋은 타이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직 미쉐린만이 이 무모한 도전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탄생한 타이어에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타이어 네 개가 들어 있는 한 세트의 값이 4만2000달러였으며, 1만 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었다. 이 타이어가 시속 407킬로미터에서 발생하는 열기와 원심력을 견딜 수 있는 시간은 15분이 한계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베이론의 연료탱크가 위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10분이 채 되지 않는다. 타이어를 안정적으로 달 수 있도록 미쉐린은 타이어 교체를 각 휠당 한 번으로 제한했다. 스페어타이어 세트를 포함한 값은 6만9000달러였으며, 세 세트의 값은 11만1000달러에 달했다.

미쉐린은 베이론의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시론의 개발기간 동안 부가티 엔지니어들은 프랑스 클레르몽페랑에 있는 미쉐린 R&D 센터를 18번이나 방문했다. 미쉐린은 타이어를 개발하는 동안 항공기 타이어의 테스트 모듈을 사용했는데, 자동차용 테스트 모듈로는 시론의 예상 최고속도로 프로토타입 타이어를 돌려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론의 타이어(앞  285/30R20, 뒤 355/25R21)는 지면과 접촉 면적이 베이론에 비해 각각 14퍼센트, 12퍼센트 증가했다. 이 타이어는 시속 420킬로미터가 넘는 상황에서 511.5kg·m 이상의 토크와 중력의 3800배에 달하는 압력을 견뎌낼 수 있으며, 동시에 어떤 기상 상황에서도 쾌적한 드라이빙과 그립을 선사한다. 

새 타이어는 이전 모델에 비해 달기도 쉬워졌다. 미쉐린은 고가의 비대칭 림에 사용되는 PAX 런플랫 시스템을 제공한다. 부가티는 아직 타이어 가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제조비용이 이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 귀띔했다. 어떤 억만장자도 타이어에 비싼 돈을 들이는 걸 싫어했던 모양이다. 부가티의 테스트 드라이버이자 전 F1 레이서 피에르 앙리 라파넬은 베이론 슈퍼 스포츠로 시속 431킬로미터를 기록한 직후 이 차가 시속 435킬로미터 이상을 내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타이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가티 CEO 볼프강 뒤르하이머는 시론이 그 기록을 경신하고 자동차 역사상 가장 빠른 양산차에 오를 것이라 기대한다. 그가 기대하는 속도는 혹시 시속 435킬로미터일까? 아니면 443? 450? 이건 곧 밝혀질 것이다. 최종 기록이 어떻든, 부가티는 드디어 이를 가능하게 해줄 타이어를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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