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운전면허시험이 개정됐다. 이전보다 난이도가 높아졌다. 이명박 정부가 간소화를 실시한 지 약 5년 만의 변화다. 도로교통공단은 이에 대해 ‘기준 완화로 인해 안전사고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높아졌고 운전자 1만 명당 사고가 10.7건에서 12.7건으로 늘어서’라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설명을 늘어놨다. 간소화를 실시할 땐 시험이 쓸데없이 어려워서라는 핑계를 대더니.

어쨌든 도로교통공단도 시험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이전 시험은 정말 지나치게 쉬웠다. 운전면허시험의 꽃(?)이라는 기능시험의 항목이 2개뿐이었다. 안내에 따라 시동을 걸고 방향지시등, 전조등, 와이퍼 등을 조작한 후 차선에 맞춰 똑바로 50미터 정도를 달리면 끝이었다. 학과, 기능, 도로주행 이 모든 시험에 대한 교육도 13시간뿐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틀 만에 딸 수 있었다. 쉽고 빠른 절차 덕분에 중국인들이 면허를 따러 원정을 왔었다니 말 다 했다. 

하지만 새 시험은 다르다. 학과시험은 문제은행이 730문항에서 1000문항으로 늘었고 기능시험 항목은 경사로, 직각주차, 좌우회전, 교차로, 가속구간 등이 추가됐다. 실격 사유도 신호위반, 30초 내 출발 등을 더해 2개에서 7개가 됐다. 이전에는 신호를 위반해도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에 황당해할 필요는 없다. 그때는 기능시험에 신호등이 없었다. 

도로주행시험의 평가 항목은 87개에서 57개로 줄었다. 도로주행은 실제 운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시험인데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옛날부터 도로주행시험은 엉뚱한 짓만 안 하면 합격이니 전체 난이도에 큰 영향은 없겠다.

새 시험이 시행된 후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부분 이전보다 지나치게 어려워졌다는 불만이었다. 이전 시험이 정상이 아니었으니 어려워졌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따지면 기능시험에 S자, 굴절, 평행주차 등이 있던 시절은 사법시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새 시험을 시행한 직후 합격률은 92.8퍼센트에서 18.5퍼센트로 추락했다. 절차가 복잡해지고 난이도가 높아졌으니 운전면허 학원의 수강료도 크게 올랐다. 

사실 우리는 면허시험이 왜 달라졌는지,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시험 간소화가 자동차 판매를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감행한 경제 부양책이었다는 속설도, 박근혜 정부의 새 시험이 자동차 학원들의 로비 때문이라는 소문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싶었던 건 새 시험이 합당한가였다. 
그래서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다. 학과시험에는 <모터 트렌드> 편집부 전원이 응시했고, 기능시험에는 젊은 기자 세 명만 도전했다.
 

새 면허시험에 대한 <모터 트렌드> 편집부의 생각은 이렇다
●학과시험을 봤다. 75점. 1종 보통의 합격선이 몇 점이더라? 70점이라고? 아싸! 이게 환호 할 일인가 싶은데 어쨌든 불합격은 면했다. 근 20년 만에 다시 응시해본 건데, 그때나 지금이나 운전면허시험은 어렵다. 아니, 단어가 참 어렵다. 왜 종목을 막론하고 국가고시에 나오는 문장은 딱딱한 한자와 생소한 표현 투성일까? 매시 5킬로미터 초과. 요즘 누가 이렇게 말하나? 시속 5킬로미터 또는 5km/h라고 쓰지. 그리고 명색이 국가고시인데 ‘핸들’ 같은 잘못된 표현을 쓰는 건 정말 문제다. 스티어링휠은 영어라서 안 되고(핸들은 영어 아닌가?) 운전대는 한글이라 촌스러워서 안 쓰는 건가? 게다가 문제 곳곳에 택시에 대한 과도한 배려(?)가 담겨 있다. 택시가 승객을 기다리기 위해 계속 정지해 있는 건 주차가 아니라니, 자못 충격적이다. 택시가 손님을 태우기 위해 급정지할 수 있으니까 일정 거리를 유지하라거나 2차로의 택시가 사람을 태우려고 급하게 3차로로 들어올 수 있으므로 속도를 줄여 대비하라는 등의 내용이 바람직한 운전 방법으로 제시되는 건 또 어떻고.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말이 더 이상 면죄부로 기능하면 안 된다. 그게 ‘국가를 위해서’ 한 일(이니까 잘못이 아니다)이라는 말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김형준

●지난 10여 년간 자동차에 관한 수많은 기사를 썼음에도 연석, 내륜차 현상, 스탠딩 웨이브 등의 생소한 단어가 꽤 많았다. 내가 아는 연석은 자동차 경주장의 코너 안쪽 돌기 노면인데 운전면허시험에선 그런 뜻이 아닌 것 같다. 게다가 한자어가 너무 많고 ‘핸들’처럼 틀린 표현도 보인다. 생소하다는 건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부분에 대해선 운전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진우

●생각보다 어려웠다. 헷갈리는 문제도 꽤 있었다. 그래도 설마 떨어질 줄은 몰랐다. 1종 보통 학과시험 커트라인이 70점이라는데 난 62.5점을 받았다. 아, 부끄럽다. 이럴 줄 알았으면(이렇게 잡지에 대대적으로 공개될 줄 알았으면) 좀 더 열심히 풀걸. 솔직히 귀찮아서 대충 푼 것도 있지만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음, 문제의 정답을 살펴보니 내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내용도 꽤 있다. 사실 운전면허 학과시험에 나오는 것들은 실제 운전에서 꼭 필요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합격했으니 이젠 됐다’ 하고 그냥 넘어가선 안 되는 내용이란 말이다. 그걸 알면서 그런 점수를 받았냐고 하면 난 또 할 말이 없다. 반성의 의미로 이제라도 문제를 꼼꼼히 살펴야겠다. 도움이 되는 내용이 아주 많다. 서인수

●운전을 20년 정도 했다. 수동변속기 차도 쉬지 않고 탔다. 그런데 떨어졌다. 학과시험은 통과했지만 기능시험이 몇 점 모자랐다. 솔직히 난 내 운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르막 구간이나 직각주차 같은 건 아주 쉬웠다. 출발할 때 전조등과 방향지시등, 그리고 와이퍼 등의 장치 조작 능력을 체크하는 단계에서 각 장치를 안내 음성이 끝나기 전에 꺼서 여러 차례 감점됐고 가속구간 종료 시점에서 1단 기어를 넣지 않고 중립에 두었다고 또 감점됐다. 짜증났다. 이건 운전이 아니라 그냥 조작이었다.
운전면허시험은 여전히 면허를 취득하기 위한 방법에 불과했다. 학과시험은 나름대로 유익했지만 기능시험은 현실성이 굉장히 떨어졌다. 일부 감점 기준을 납득할 수 없었다. 자동차 운전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때로는 자신 또는 남을 해칠 수도 있다. 면허시험은 실제 운전 실력을 가늠해야 한다. 면허 갱신 때마다 학과시험을 한 번씩 보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류민

●<모터 트렌드> 운전면허 학과시험에서 영광의 1등을 했다. 비결은 없다. 시험지를 아주 천천히 읽었다.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없거나 12년 정규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이라면 무난히 합격할 난이도다. 출제 범위가 1000문제로 늘었다고 하던데 실상 시험지를 받아보면 예전과 같이 어려운 건 어렵고, 쉬운 건 쉽다.
그런데 기능시험에선 탈락의 쓴맛을 봤다. 80점을 넘어야 합격인데 60점대 후반을 기록했다. 자동차 기자가 떨어졌다고 하면 새 시험이 ‘불면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확실히 아니다. 떨어진 놈이 이런 말 하니 웃기겠지만 사실을 말하는 거다. 출발할 때 사전 조작 실수로 감점, 가속구간 끝부분에서 속도를 늦게 줄여서 감점. 결국 실제 도로에 익숙해진 운전 습관이 문제였다. 기능교육 4시간을 충실히 이수한다면 누구나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합격률이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떨어진 주제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스럽다. 내일 다시 면허시험장에 가야겠다. 김선관

●솔직히 떨어질 줄 알았다. ‘남자는 수동(변속기)’이라는 생각에 호기롭게 1종 보통면허를 땄지만 5년 동안 한 번도 수동변속기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출발한 지 20초 만에 실격 처리됐다. 이유는 오르막길에서 정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억울했다. 내가 면허를 취득했던 2012년엔 오르막이라는 게 없었다. 영문도 모르고 실격을 당한 셈이다. 그래서 2종 보통으로 다시 도전했다. 그 어렵다는 직각주차도 통과했는데 돌발과 과속에 발목이 잡혀 또 떨어졌다. 이전 기능시험에선 장치 조작과 50미터 주행이 전부였기에 합격보다 낙방이 더 어려웠다. 겉으론 애써 웃었지만 자존심이 꽤 상했다. 실제 운전과 기능시험 간의 괴리가 크다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그건 패자의 쿨하지 못한 변명일 뿐이다. 박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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