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서핑을 하다가 1950년대의 폭스바겐 비틀 광고를 봤다. 중절모를 쓴 아빠가 차를 몰고, 옆자리의 엄마가 미소 짓고, 뒷자리의 아이 둘이 재잘거리는 장면이었다. 아빠의 얼굴은 새 차를 산 기쁨으로 가득했다. 에어컨이 없는 차에서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들이치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비틀은 내가 좋아하던 차라 그 아빠의 행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튜브를 본 얼마 후 오리지널 비틀을 몰아보게 됐다. 공랭식 엔진 차는 너무 시끄러웠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소음이었다. 소음이 속도와 비례하기 때문에 속도 내기가 싫었다. 앞이 가벼운 탓인지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어서자 앞부분이 좌우로 흔들렸다. 날아갈 듯 들썩이면서 우왕좌왕하는 차에서 두려움이 앞섰다. 비틀을 향한 나의 맹목적인 사랑도 살짝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오리지널 비틀은 2200만 대 이상 팔리며 자동차 역사에 기록을 세웠다. 이런 차를 그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많은 아빠들이 더위 속에 흔들거리며 귀청 떨어지는 차를 타고 즐거워했다. 이 차에 비교하면 요즘 기아 모닝은 거의 롤스로이스 수준이다. 

미니는 또 어떻고. 오리지널 미니의 불편함을 아는 사람은 미니 사랑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안다. 속도를 낼수록 투박한 엔진은 달리고 싶은 의지를 조절했다. 재래식 변기에 앉은 것 같은 운전자세는 오랜 여행에 잘 맞지 않았다. 에어컨은 물론 없었지만 옆창은 미닫이로 조금만 열렸다. 조수석은 뒷자리로 드나들 만큼 충분히 접히지 않아 부피가 큰 짐은 실을 수 없었다. 미니가 지붕 위로 캐리어를 다는 이유였다. 모서리에 4개의 10인치 휠을 달고 통통 튀는 차는 정말 카트를 모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을 모른 채 요즘 미니를 ‘카트같이 달린다’고 하면 무슨 말인가 할 것이다. 운전이 어려운 차의 고객 77퍼센트가 평균 나이 45세의 여성이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1960년대의 르노 4 역시 허술한 차체가 깡통 같았지만 많은 사람이 사랑했다. 이 차는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절로 상상되는 그림이지만 뒷문이 커다란 해치백이라 쓸모가 많았다. 프랑스 농촌뿐 아니라 아프리카 사막에서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르노 4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작고 왜소했지만 지칠 줄 몰랐던 르노 5는 1994년 단종될 때까지 27개국에서 조립 생산되고 800만 대 이상이 팔렸다. ‘미운 오리 새끼’로 알려진 시트로엥 2CV는 처음에 9마력 엔진으로 최고속도가 시속 63킬로미터에 불과했다. 그런 차가 42년간 19개국에서 700만 대가 조립 생산됐다. 르노 5 등의 프랑스 차들, 친퀘첸토 같은 이탈리아의 많은 차가 작고 불편한데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가끔은 이탈리아 아저씨들이 너무나 작은 차 친퀘첸토를 타면서 쑥스러워했을까 궁금하다. BMW 이세타의 오너들은 장난감 같은 차를 유머로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절실해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탔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요즘 우리 주변의 작은 차들은 분에 넘친다. 조용하고 연비 좋고 부드러운 것이 과거의 작은 차에 비교할 수 없다. 더구나 경차 혜택을 생각하면 황송할 지경이다. 경차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통행료를 깎아주고 세금을 면제해주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경차는 일본 경차와 많이 다르다. 유럽시장을 염두에 둔 한국 경차는 일본의 경차보다 훨씬 크다. 너비가 불과 몇 센티미터 넓을 뿐인데 그 느낌은 많이 다르다. 일본의 경차는 어딘가 장난감 같은데 우리의 경차는 제대로 된 차 같다. 경차라는 단어는 일본 경차인 티코 같은 차에 어울린다. 일본 경차는 우리보다 크기도 작고 엔진 배기량도 660cc로 제한돼 있다. 제대로 된 차가 아니라서 고속도로의 최고속도 제한도 다르다. 우리나라 모닝 터보는 1000cc 터보 엔진에 출력이 100마력을 넘는다. 그냥 좀 작은 승용차로 볼 만하다. 이렇게 멋진 차에 경차 혜택까지 주니 그저 송구스러울 뿐이다. 

쏘나타라는 중형 세단이 국민차인 한국인은 복 받은 민족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 국민차가 작은 차인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가 흔치 않다. 크고 럭셔리한 중형차가 국민차가 될 수 있는 환경에서 작은 차 타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작은 차를 타면 좁은 골목길에서 운전이 수월하고, 주차에 대한 부담이 없어 좋다. 또 작은 차를 타면 남을 배려하는 것 같아 흐뭇하다. 내가 남긴 공간을 옆차가 편하게 쓰겠지? 자동차 역사에 불편했던 과거의 작은 차를 생각하면 요즘 작은 차는 황송할 따름이다. 이 한 몸 옮기는 데 작은 차면 충분하다는 생각에서 나는 작은 차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