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성은 합격 

드디어 ‘V’를 쓰는 볼트(VOLT)가 나왔다. 최근 1~2년 동 안 많은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차가 국내에 선보였는데 볼 트는 그중 특히 반갑다. 2010년 12월에 1세대 모델이 나오고 지금의 2세 대가 나올 때까지 12만 대에 가까운 볼트가 전 세계 도로를 달렸다. 자 동차 회사가 진짜 노하우를 쌓는 방법은 단순하다. 아무리 개발 단계에서 테스트를 많이 하더라 도 새로운 장르의 자동차를 내놓 고 몇 년 동안 실제 운전자가 도 로를 달리면서 쌓이는 경험을 따 라갈 수 없다. 세대를 바꾸어 새 차가 나오면 여러 부분에서 개선 이 이루어진다. 지금 눈앞의 볼 트가 반가운 이유다. 

 

볼트가 일반적인 PHEV(플 러그인 하이브리드)와 가장 다른 점은 주행거리 연장 방식 전기자 동차(Extended Range EV, EREV)임을 대놓고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다른 PHEV들이 엔진을 구동과 배터리 충전에 같이 사용하는 것과 달 리 볼트는 엔진의 힘 대부분을 배터리 충전에만 사용한다. 그래서 주행 중에 엔진이 작동하더라도 급격한 출력 변화가 없어 가속이 자연스럽 다. 필요한 힘이 늘어날수록 엔진 소리는 커지지만 전기모터의 가속은 일정하다. 일반 하이브리드카처 럼 엔진이 작동하며 갑자기 울컥 하고 튀어나가지 않아 주행 품질 이 좋다. 충전이나 엔진 작동 여 부에 상관없이 항상 일정하게 움 직여 운전자가 쉽게 익숙해진다. 

 

여러 회사에서 PHEV를 내 놓고 있지만 1회 충전으로 전기 모터가 달릴 수 있는 거리에는 차이가 난다. 일반적인 PHEV가 44~50킬로미터인 데 비해 볼트 는 최대 89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완전히 충전한 배터리만으로 한나절 시내 주행은 거뜬 하다. 이는 주행거리의 불안함 없이 전기차를 타는 것과 다름없다.

 

스티어링휠 왼쪽 뒤의 리젠(Re-Gen) 버 튼은 회생제동 장치를 수동으로 작동시킨다. 누르고 있는 동안 회생제동 기능이 점점 세져 차를 멈추는 힘이 강해진다. 이를 통해 다시 배 터리를 충전하므로 주행거리는 더 늘어난다. 

 

실내 공간이나 편의장비, 안전장비는 앞 좌석 중심이다. 동급에서 보기 어려운 장비가 많이 보인다. LED 헤드램프, 스마트폰 무선 충 전은 기본이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전방 추돌 경고, 긴급 제동 시스템, 무려 10개에 달하 는 에어백까지 안전장비도 충실하다. 뒷좌석은 성인이 타기에는 헤드룸이 좁고 3명은 불편할 것 같아 아쉽지만, 중학생 아래의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딱히 부족할 정도는 아니다. 

 

결론은 간단하다. 볼트는 상품성이 좋은 차다. 배터리나 전기모터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논할 이유가 없다. 운전자가 적극적으로 나서 서 전기를 충전하고 조금만 신경 써서 움직인 다면 엄청난 연비도 가능하겠다. 그런데 이렇 게 괜찮은 차를 일반 소비자가 구매할 수 없다. 당장은 카셰어링을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다. 한국GM이 시장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려는 마 음은 알겠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 을까? 아무래도 험하게 쓸 수밖에 없는 카셰어 링 시장에서 괜히 나쁜 인상만 주는 것은 아닌 지 걱정된다.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다른 하이브 리드카들과 경쟁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든다.

글_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 볼트는 DC 콤보 충전 방식을 사용한다. 급속 충전은 지원하지 않는다

 

 

일반 소비자 판매를 허하라 

2세대 볼트는 파워트레인의 성능은 개선됐지만 그 설계 원리는 1세대 와 비교해 달라진 것이 없다. 뒷자리 아래와 센터터널에 대용량 배터리 (18.4kWh)가 T자로 놓이고, 볼텍(Voltec)이라 부르는 전기 파워트레인 은 고출력 대형 모터와 작은 보조 모터 2개로 구성된다. 대형 모터는 차 를 굴리는 용도이고 소형 가솔린 엔진은 보조 모터를 돌려 배터리를 충 전하거나 고속에서 부족한 출력을 보탠다. 토요타를 비롯한 일반적인 HEV와 원리가 같다. 다만 HEV가 엔진을 주 동력원으로 삼고 모터를 보조동력으로 여기는 반면 볼트는 전기모터가 구동의 주인 역할을 하 고 엔진은 보조재에 그친다. 엔진은 배터리를 충전하고 구동에도 약간 씩 개입하면서 주행 거리를 점점 늘려 나간다. GM이 정의하는 주행거 리 연장 방식 전기자동차의 실체다. 

 

그럼에도 GM은 2010년 볼트 를 내놓으면서 세계 최초의 양산 전기차라고 주장했고 볼트는 데뷔 와 동시에 논란에 휩싸였다. 핵심 은 ‘배터리 충전용으로 마련된 가 솔린 엔진이 구동 바퀴에 직접 개입 하느냐 아니냐’에 있었다. 갑론을박이 오갔고 결국 하이브리드카로 조용히 결론지어졌다. 몇 년이 흘 렀고 볼트는 2세대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GM 사람 들은 이제 이렇게 말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든 전기자동차든 상관없습니다. 이 차는 볼트입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람? 1세대 모델 출시 당시의 논란을 벌써 잊은 건 가? 아니면 더 이상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건가? 

 

그런데 이제야 알았다. 그들이 애매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 었던 이유를. 이 차를 직접 운전해보면 안다. 볼트는 전기차도 아니고 HEV나 PHEV는 더욱 아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원리는 HEV와 같다. 충전용 소켓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선 PHEV와도 일맥상통한다. 하지 만 차가 전하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전기자동차의 깔끔한 감각 속에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생동감이 숨 쉬고 있다. 5년째 3세대 프리우스를 타 고 있는 터라 볼트의 주행감각은 더욱 도드라졌다. 푸드덕거리며 깨 어났다 잠들기를 반복하는 엔진 시동의 거친 기색을 느끼기 어렵고, 전기모터 또는 엔진이 이미 구동 중이던 엔진 또는 전기모터와 힘을 합치는 순간의 이질감은 아예 자취조차 없다. 묵직한 배터리가 차체 중앙에 자리한 덕분에 주행 안정감도 흠잡을 데 없다. 이래저래 만듦새가 좋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다. 한국GM은 이 차를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 출시할 생각이 (아직) 없다. 카셰어링 업체에 우선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보다 멍청한 신차 출시 계획은 내 기억에 없다. 한국GM이 일반 시판을 주저하는 이유가 1200만원에 이르는 전기자동차 보조금을 받지 못해서인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보조금(500만원)만으로는 도저히 경쟁력 있는 가격을 확보할 수 없다고? 미국에서 볼트의 생산자 권장가격(MSRP)은 3만3220달러에서 시작한다. 프리미어 트림(가죽 내장재, 보스 오디오, 알루미늄 휠, 자동주차 지원 등)에 차선 유지와 전면추돌 경고 등의 패키지가 더해진 시승차 가격은 어림잡아도 4만 달러를 넘지 않는다. 환율과 각종 세금을 감안해 넉넉하게 쳐도 5000만원이면 국내 시장에 보급할 수 있다. 소비자는 보조금을 지원받아 4500만원이면 볼트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내 눈엔 터무니없이 비싼 차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타도 큰 불편이 없는 가장 현실적인 전기자동차이기 때문이다. 충전 설비가 마련돼 있고 출퇴근 용도로만 탄다면 1년 내내 단 한 번도 주유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 EPA 추산 복합연비는 리터당 17.8킬로미터다. 공영 주차장 등에서 틈틈이 충전해가며 타면 더 나은 연비를 얻는 건 당연하다. 지금 시장에 이만큼 경쟁력 있는 소형 승용차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서’라는 이유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한국GM과 계약 관계에 있는 딜러가 판매에 난색을 표해서라거나 순수 전기차 볼트(Bolt)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볼트(Volt) 판매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거라면 문제는 좀 더 심각하다. 영업조직 관리와 전략 수립 실패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볼트는 당장 얼마간 손해를 보더라도 시장에 내놓아 마땅한 제품이다. 쉐보레, 나아가 GM의 농익은 기술력을 뽐내기에 지금 이보다 나은 차가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한국GM이 전략을 급선회해 당장 일반 소비 시장으로 뛰어들 일은 없어 보인다. 지금 떠오르는 가장 이상적인(또는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카셰어링 업체가 GM으로부터 (싼값에) 대량 구매한 볼트를 장기 렌터카로 공급하는 것이다. 썩 나쁜 방식은 아니지만 모처럼 등장한 ‘웰메이드 소형차’가 푸대접을 받는 기분이라 입맛은 쓰다.

글_김형준

 

 

한국에서 볼트 타기

카셰어링 업체 그린카가 볼트 5대를 갖고 추석 기간 무료 시승 이벤트를 진행했다. 쏘카도 10대의 볼트를 운영할 계획이다. 원인이 각박한 충전 인프라든 보조금이든 한국GM은 볼트가 국내에서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팔기엔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나 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지금 들여왔는지도 의뭉스럽다. 어찌 됐든 볼트는 올해 국내에 100대가 들어왔다. 

카셰어링으로 볼트를 탄다는 건 어느 정도 장거리로 이동한다는 거고, 충전을 하려면 외부 시설을 이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카셰어링 주차장에 있는 공용 충전기를 사용하면 되지만 이용자의 모든 동선에 부합한다는 보장은 없다.

볼트는 급속 충전을 지원하지 않는다. 엔진이라는 보조 수단이 있는 데다 괜히 생산 단가만 올라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볼트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 완속 충전기를 갖춰놓는다. 국내에서는 카셰어링 주차장, 대형마트, 공공시설에서 충전할 수 있다. 한국GM은 현재 포스코 ICT와 전기차 충전 솔루션 계약을 맺고 있다. 볼트 역시 포스코 ICT가 제공하는 완속 충전기로 충전할 수 있다. ‘차지비(ChargEV)’라는 전용 모바일 앱으로 전국의 충전소를 검색할 수 있고 멤버십 가입 후 충전기를 예약할 수도 있다.

 

이틀 동안 볼트를 시승하면서 든 생각이 하나 있다. ‘차는 좋은데 아직 바깥 충전은 험난하구나!’ 볼트의 순수 전기 주행거리는 80킬로미터가 넘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60킬로미터 안팎이었다. 촬영을 위해 서울 강남에서 경기도 파주까지 전기 모드로 이동했는데 배터리가 머금고 있는 전기에너지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엔진을 사용해도 됐지만 테스트를 위해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충전소로 향했다. 그런데 충전기의 플러그가 급속 충전(DC 콤보 방식은 단자가 두 개 더 있다) 겸용이라 맞지 않았다. 결국 회사로 돌아와 220V 비상 충전기를 연결했다. 완전 충전까지는 약 10시간이 걸렸다. 

 

다음 날 앱을 사용해 대형마트에 있는 충전기 한 대를 한 시간 동안 예약했다. 점심 먹는 동안 볼트에도 밥을 먹일 셈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충전 자리에 낡은 미니밴 한 대가 얄밉게 주차돼 있었다. 그것도 자기 전용이라는 듯 대각선으로 두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차주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빼달라고 하고 가까스로 충전기 옆에 볼트를 댔다. 충전기 한쪽엔 거미줄이 쳐 있었고 군데군데 먼지가 쌓여 있었다. 한눈에 봐도 관리가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충전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멤버십 카드를 단말기에 인식한 뒤 충전 플러그를 꽂기만 하면 나머진 자동으로 충전이 시작됐다. 이틀 동안이었지만 전기차든 PHEV든 외부에서 충전을 해결하기엔 아직 미흡하고 번거로운 점이 많았다.

 

BMW가 i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카셰어링 서비스인 드라이브나우(DriveNow)를 도입한 이유는 공익적인 목적도 있지만 경험의 확대를 통해 세일즈를 올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GM의 본심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자칫 카셰어링만으로 그쳐 데일리 카로서 일상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볼트의 뛰어난 능력이 묻힐까 봐 노파심마저 든다. 희망을 가져보자. 내년엔 볼트의 소비자가격을 볼 수 있을까?

글_조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