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고차를 한 대 사려고 했다. 수중에 갖고 있던 돈은 2000 만원 이하. 패밀리카로 적합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데다, 이왕이면 수입차에 네바퀴굴림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 달을 찾았다. 감가상각과 가격 대비 주행거리와 연식을 따지고 추후 들어갈 수리비도 예상했다. 몇개 차종을 추리고 나니 결론은 혼다 CR-V로 자연스럽게 좁혀졌다. 하지만 허위 매물에 기분이 상하고 마음에 드는 차를 만나지 못했다. 결국 중고차를 포기하고 신차를 샀다. CR-V와 인연은 멀어졌지만 중고차로서의 매력은 몸소 발견했다. 이는 감가율로도 나타난다. SK엔카가 지난해 산정한 CR-V의 감가율은 21.4퍼센트, 2014년에는 26.1퍼센트 였다. 일반적으로 3년이 넘은 수입 중고차 평균 감가율은 40퍼센트대에 머문다. 감가율이 적다는 건 그만큼 중고가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CR-V는 지난해 5월 SK엔카가 자체 집계한 ‘3년 뒤 중고차 감가율이 적은차’에서 수입차 부문 1위를 차지했다. CR-V는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을 받은 차다. 국내에 2004년 처음 소개돼 2009년까지 한 번도 수입 신차 판매 순위에서 10등 밖으 로 나가본 적이 없다. 2007년에는 수입차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로 꼽혔다. 2010년에는 잠깐 주춤했지만 2011년에 제4세대 모델이 나오면서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CR-V는 디젤 SUV가 대세를 이루는 상황에서도 고유의 영역과 팬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좀 더 고급스럽게 CR-V의 실내는 4세대로 넘어오면서 운전석부터 조수석까지 마블링 패턴 인스트루먼트 패널을 적용했다.

 

 

내구성

지속적인 사랑엔 다 이유가 있다. CR-V 오너들은 넓은 공간과 i-VTEC 엔진의 짜릿한 가속감, 무엇보다 일상에서 크고 작은 고장이 안생기는 튼튼한 내구성을 구매 이유로 들고 있다. 수입차를 중고로 살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바로 수리비다. 대부분 중고차의 보증기간이 끝나 어디 하나라도 고장 나면 큰돈이 들어갈까 내심 걱정을 한다. 나 역시 이 부분 때문에 CR-V를 눈여겨봤었다.

 

실제 CR-V 오너들의 생각은 어떨까? 서울 장한평에서 만난 한 중고차 딜러의 말이다. “CR-V를 팔러 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잔 고장 없이 잘 탔다’입니다. 그래서 그중에는 신형 CR-V를 사는 사람도 있고, 더 큰 차가 필요해 오딧세이로 넘어가는 사람도 여럿 봤습니다.” 내구성에 관한 증언은 계속 이어졌다. 

 

SK엔카 장한평 직영점에서 수입차 매입을 전문으로 하는 이상원 실장이 한 가지 일화를 들려주었다. 3세대 CR-V를 운전하는 한 남자가 어느 날 실수로 저단 기어로 한 시간이상 고속으로 달렸다. 그러자 보닛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동네 정비소를 찾았다. 정비사는 정황을 듣고 대충 검사를 하더니 실린더 헤드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며 교체 수리비로 300만원을 넘게 요구했다고 한다. 차주는 수리 대신 그 비용을 제하고 이상원 실장에게 차를 팔았다. “그런데 제가 가져와서 엔진을 뜯어보니 실린더 헤드가 멀쩡하더라고요.” 이상원 실장의 말이 이어졌다. “알고 보니 문제가 발생한 건 실린더 헤드가 아니라 낡은 에어컨 펌프였어요. 정비사가 소리만 듣고 오진을 한 거죠. 엔진은 멀쩡했습니다.”

 

혼다코리아에 CR-V의 내구성이 좋은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관계자가 답하길, “혼다는 2005년에 ‘글로벌 혼다 품질 기준(G-HQS)’을 제정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46개의 거점에서 똑같이 양질의 품질을 유지할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지요.”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 회장이 항상 강조했던 품질에 관한 고집이다.

 

 

5단 자동변속기 4세대 CR-V에는 어코드 2.4L의 변속기를 개선해 탑재했다. 점도가 낮은 미션 오일을 사용했고, 기어비의 폭도 늘렸다. 전 세대보다 효율성에 더 초점을 맞춰 연비 향상에 보탬이 됐다.

실용적인 공간 설계 일상적인 운전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납공간을 확보했다. 대용량 센터 콘솔에는 스마트폰 등의 전자 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USB 포트와 파워 시거 잭이 구비돼 있다.

 

 

A/S

유럽차에 비해 낮은 수리비도 장점이다. 평균적으로 부품값은 독일차의 3분의 2 수준이다. 또한 공식 서비스센터와 외부 정비업체의 수리비 차이도 거의 없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부품을 외부로 잘 안 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식 서비스센터의 부품 수급이 더 빠르다. 그리고 CR-V는 대부분 북미형 모델이라 이베이 등의 경매 사이트를 이용하면 원하는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판매하는 소모품 쿠폰을 잘 이용하면 국산차와 유지비도 비슷하다. 현재 혼다코리아의 무상 정기 점검 기간은 2년/4만 킬로미터, 일반 보증 기간은 3년/10만 킬로미터다.

 

 

 

 

3세대와 4세대

현재 중고차 시장에서 주를 이루는 CR-V는 3세대와 4세대 초기 모델이다. 가격과 주행거리, 연식 등이 구매하기에 적절하다. 지금 판매중인 신차는 2014년말 출시된 4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3세대 모델부터 변속기를 센터 패널로 가져오고 테일게이트를 지금처럼 위아래로 열었다. 실내 수납공간을 넓히고 주행 정보와 계기반의 시인성을 높였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면 고속 주행에서 풍절음이 심하다는것. 나름 경량 흡음재를 사용하고 차체 하부의 공간을 채웠다고는 하지만 접합부가 얇고 빈 곳이 많다. 만약 3세대 CR-V를 산다면 별도의 방음 작업을 고려하시길. CR-V는 2011년 4세대로 넘어가면서 눈에 띄게 환골탈태했다. 소음 문제도 많이 개선됐고 VSA(Vehicle Stability Assist) 등 안전 장비가 대거 추가됐다. 출력은 170마력에서 190마력으로 늘었고 연비도 리터당 10.4킬로미터에서 11.9킬로미터로 향상됐다. 4WD EX-L 트림엔 패들시프트가 달려 수동 변속이 가능하다. 그래도 여전히 블루투스 지원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