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 공개되기 전 새로운 콘셉트카를 보는 건 즐거운 경험이다. 특히나 현대차의 비전 G 쿠페 콘셉트는 최고의 디자이너 두 명이 만들었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현대차는 피터 슈라이어가 디자인 총괄을 맡고 있다. 또 캘리포니아 스튜디오에는 크리스 채프먼이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차를 처음 봤을 때의 첫 반응은 이랬다. “슈라이어와 채프먼은 도대체 뭘 한 거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능력 없는 누군가가 디자이너와 콘셉트카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디자인 센스보다 영향력이 더 큰 회사 임원이 의사결정 구조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는 없는 지식과 디자인 센스를 권력으로 커버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콘셉트카에 참견이 심해진다. 그러면 아무리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라도 그 프로젝트를 보호할 수 없다. 난 사장이 볼품없는 뒷모습을 만들고 그 후임이 어색한 앞모습을 디자인한 유럽차를 알고 있다. 그 결과 그 차는 팔리지 않았다. 난 그 비슷한 일이 비전 G에 일어났다고 의심한다.

분명 V8 제네시스 세단 크기의 뒷바퀴굴림 쿠페 시장은 존재한다. 더불어 독일산 유명 쿠페에 비해 수천 달러 저렴한 시장도 있다. 현대차는 그 시장을 노린다. 그런데 현대 비전 G가 양산되려면 아주 많은 디자인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은 차체에 라인이 너무 많다. 면의 변화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너무 큰 그릴은 새로운 느낌이 전혀 없다. 사이드 윈도도 너무 작아 외관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뭐 요즘 트렌드가 그러하니 이렇게 작은 윈도를 좋아하는 소비자도 있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실내 디자인은 심플하고 명료해서 아주 좋다. 색상, 소재, 디테일이 모두 훌륭하다. 기어노브와 버튼, 스위치 개수를 최소화했다. 긴 여행에 아주 좋은 공간이 될 것이다.

나는 비전 G가 페블비치에 소개되기 전, LA 카운티 아트 뮤지엄(현대 스폰서)에서 이 차를 만났다. 캘리포니아 남쪽은 세계 어느 곳보다 새차가 많이 선보이는 곳이다. 수많은 저널리스트와 자리를 함께했고 그들 중 절반 이상이 비전 G의 도어 손잡이 위치에 놀란 눈치였다.  

비전 G의 도어 손잡이는 도어 패널이 아닌 뒤쪽 보디 패널에 있다. 그런데 이는 아주 똑똑한 발상이다. 우리는 보통 도어 앞에서 도어를 당긴다. 그러면 뒤로 물러났다가 도어를 열고 다시 앞으로 가서 타야 한다. 불필요한 동작이 생긴다는 뜻이다. 차가 많은 도로에서는 위험할 수 있다. 비전 G는 그런 불필요한 동작이 없다. 손잡이를 당기면 도어가 자동으로 열린다. 뒤에 있다가 앞으로 가서 타면 된다. 즉 도어보다 더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다.

만약 자동차 메이커들이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기능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이미 실현되고 있다) 도어를 잠그기 위한 장치나 손잡이 등이 사라질 것이다. 이는 전선이나 와이어 등을 연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무게를 줄이는 훌륭한 아이디어가 된다. 비전 G의 도어 손잡이는 많은 저널리스트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이상한 터치가 어쩌면 현대차의 가장 진보한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다.  에디터/ 이진우

 

앞모습
1 그릴이 너무 크고 벤틀리를 많이 닮았다. 정말 별로다. 하지만 그릴 주변과 잘 조화됐다. 특히 헤드램프와 잘 어울린다. 이 정도면 질감을 제외하고 합격을 줄 수도 있겠다.
2 이 배지는 벤틀리가 탄생한 클리크우드의 휘장을 연상시킨다. 아니, 왜 한국인들은 눈부시게 멋있는 한글을 사용하지 않을까? 또 현대차를 상징할 만한 적절한 사인은 없는 건가?
3 보닛에 볼륨감을 강조한 이 라인도 영국차를 연상시킨다. 이번에는 벤틀리가 아닌 재규어다.
4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이 면은 그릴과 A필러 부근에서 사라진다.
5 분명하지도 않고 혼란스러운 라인들이 정신 사납게 이어지고 있다. 그릴에서 시작된 건가 싶은데 펜더 부근에서 없어지고 어느 선이 뒤로 이어지는지 명확하지 않다. 마치 눈을 희롱하는 것 같다.
6 윈드실드는 차체 크기에 비해 너무 작다. A필러 프레임과 유리가 만나는 곳의 검은색 띠는 싸구려 느낌이다.
7 루프라인은 완벽한 쿠페의 그것이 아닌 세단에 가깝다. 덕분에 뒷자리 헤드룸을 확보했다.
8 펜더를 띠처럼 두르고 있는 절삭면이 펜더가 뚱뚱해 보이는 것을 막는다.
9 도어 손잡이는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나뉘는 아이디어다. 난 이 손잡이가 마음에 든다. 다른 차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10 이 라인은 꽤 멋스럽다. 앞에서 시작해 테일램프 부근에서 절정을 이룬다. 면을 절묘하게 꺾어 그윽하면서 차체를 또렷하게 보이게 하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이런 게 세련된 터치다.
11 하키 스틱과 같은 형태의 금속 패널을 앞바퀴 앞뒤에 배치했다.
12 다 죽어가던 앞모습에 활기를 불어넣는 터치다. 위로 갈수록 안쪽으로 약간 말려드는 라인이 인상적이다.

 

 

 

뒷모습
13 지붕 위 4개의 라인은 뒷유리 안쪽에 있는 보조 브레이크등과 연결된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트렁크 데크에서 사라진다.
14 리어램프 위쪽의 면은 트렁크 데크, 사이드 패널과 이상하게 맞물려 있다. 조화가 전혀 없다. 의도적이기보다는 실수로 보인다.
15 뒷유리가 너무 작다. 차체 크기를 생각하면 비율이 맞지 않는다. 뒤 시야도 좁을 것이다.
16 양쪽 리어램프를 잇는 이 희미한 라인은 도통 이해하기 힘들다. 트렁크에 있는 라인들과 충돌을 일으킨다.
17 또 다른 이상한 라인이다. 커브를 넣은 이 라인은 아주 오래전 링컨이 컨티넨탈에 사용하던 라인과 흡사하다. 또 테일램프 안쪽에 있는 세로 라인과 충돌을 일으킨다.
18 사다리꼴의 번호판 라인은 지저분한 뒷모습을 정리해줄 수평 라인을 망쳐버렸다.
19 배기파이프 주변 수평의 밝은 라인은 디자이너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좋은 터치다.
20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간 면이 독특하다. 불룩한 보디 옆면과 범퍼를 분리하는 역할도 한다.
21 이 풍만한 리어 펜더가 갑자기 직각으로 떨어지는 절삭면과 만나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22 도어 손잡이 위치는 독특한 발상의 전환이다. 다만 눈에 띄는 밝은색을 사용해 너무 도드라졌다. 또 형태와 라인이 이 차의 어떤 라인과도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인테리어
23 밝은색의 헤드라이너는 너무 넓은 느낌이다. 윈도가 작기 때문이다.
24 도어 트림이 심플하고 산뜻하다. 편안하고 다이내믹한 차체 콘셉트와 잘 어울린다.
25 운전대 가운데 부분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심플함이 비전 G에 잘 어울린다. 이 차는 젊은이들이 타는 스포츠카가 아니니까.
26 기어노브가 아주 작고 컨트롤러도 거의 없어 깨끗하다. 다른 메이커들이 현대차의 이런 심플한 감각을 베꼈으면 좋겠다.
27 선글라스, 장갑 등 소소한 소지품을 넣어두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다. 괜찮은 아이디어다.
28 깨끗한 수평 라인을 지닌 우드패널이 모니터와 아주 잘 어울린다. 실내의 고급스러운 느낌을 한층 업그레이드한다. 정말 신선하고 멋진 디자인이다.

 

 

 

Robert Cumberford GM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할리 얼의 눈에 띄어 GM 디자인실에 입사했다. 하지만 1세대 콜벳 스타일링 등에 관여했던 그는 이내 GM을 떠났고 1960년대부터는 프리랜서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약했다. 그의 디자인 영역은 레이싱카와 투어링카, 다수의 소형 항공기, 보트 심지어 생태건축까지 아울렀다.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한 그의 강직하고 수준 높은 비평은 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1985년 <모터 트렌드> 자매지인 <오토모빌>의 자동차 디자인 담당 편집자로 초빙됐고 지금까지도 매달 <오토모빌> 지면을 통해 날카로운 카 디자인 비평을 쏟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