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창문도 열어젖혔다. 거기에 선풍기까지 가세했다. 유리 공예를 하는 양유완 작가의 작업실 풍경은 이렇다. 하루 종일 돌아가는 기계 때문에 작업실은 흡사 찜질방처럼 후끈했다. 반소매에 반바지, 슬리퍼를 신고 편하게 작업하는 그녀의 얼굴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한시도 쉴 틈 없는 게 나랑 맞는다니까요.” 입으로 불어서 유리 형태를 잡는 블로잉 기법을 주로 쓰는 양유완 작가의 작업 과정은 보는 내내 눈이 돌아간다. 뜨거운 가마에 녹인 유리를 떠서 기본 형태를 잡고 불었다가 돌렸다가, 다시 가마에 넣었다가 돌렸다가, 식혔다가 다시 뜨겁게 달구기를 반복한다. 그야말로 쉴 틈이 없다. 한시라도 시선을 놓치면 유리는 중력의 법칙대로 땅을 향해 흘러내리거나 굳어버렸다. “어찌 보면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 기법일 수 있는데, 이렇게 땀을 흘리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요.” 작은 체구의 여자가 자신의 키보다 긴 파이프를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만드는 건 꽃병이었다. 처음에는 꽃병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꽃병이 아니라 샐러드 볼을 만들어야겠다며 유리를 끝없이 늘이고 펼쳤다. 블로잉으로 하는 작업은 이렇게 자유롭다. 그리고 그 형태 역시 유기적이다. 모두 제각기 선과 빛깔, 두께가 다르다. 예쁘게 못생긴 유리 작품에는 양유완 작가의 자유스러움과 즉흥성, 섬세함이 담겨 있다.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양유완 작가.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지만 그녀의 작업실은 후끈했다.

1 나무 막대를 이용해 유리 입구를 넓히는 모습.

2 발갛게 달아오른 유리는 물에 젖은 신문지로 식혔다가 다시 열을 가하기를 반복하며 형태를 잡는다.

3 작은 플레이트를 만들고, 파이프에서 작품을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양유완 작가가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는 4년이 채 안 됐다. 호주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다가 교양 수업으로 유리 공예를 접하면서, 졸업을 1년 앞두고 전공을 유리 공예로 바꿨다. “산업 디자인은 컵을 만들어도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해요. 엔지니어링 부분도 계속 신경 써야 하고, 마치 뇌가 대여섯 개는 된 느낌이랄까? 유리 공예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만들고 컨트롤하지만, 자유로운 방식과 형태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접하자마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거든요. ‘아, 이거다!’ 싶었죠.” 그녀는 졸업 작품으로 한국적 미감의 도자 위에 유리를 얹어 연(緣) 시리즈를 만들었다. 성질이 서로 다른 재료를 매치한 그녀의 작품은 호주 큐레이터의 눈에 들어 그해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 당당히 전시됐다. 그녀의 이러한 작업 방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양유완 작가는 유리와 화문석을 매치하기도 하고, 옻칠이나 은, 흙을 유리 사이에 끼워 형태나 색감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유리 자체의 투명한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한 채. “옻칠을 한다든지 조개껍데기를 붙인다든지 화문석을 매치하는 작업을 할 때는 그전에 제가 먼저 배워요.” 놀라서 되물었다. 직접 배워서 작업을 하느냐고. “네.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해요. 옻칠 작업이나 은, 도자 작업은 전부 제가 했어요. 하나 못한 것은 화문석. 화문석을 배웠는데, 뜨거운 유리를 직접 대보면서 하면 짚이 타버리니까 작업이 까다로웠죠.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패작도 많았어요. 그래서 그건 장인 선생님과 함께했어요. 그 대신 제가 화문석을 어느 정도 배웠으니, 작업 하는 데 장인 선생님과 소통이 훨씬 편했죠.”

1 양유완 작가는 색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유리 본연의 투명함을 유지해 유기적 형태가 잘 드러나도록 한다. 2 작업실 한쪽에 있는 다양한 유리 공예 재료. 3 양유완 작가의 작품들. 조개껍데기를 붙이거나 돔 형태 위에 나뭇잎을 얹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

양유완 작가의 초기 작품은 못생긴 것이 많았다. 그러나 예뻤다. 모나지 않게 울퉁불퉁한 유리 항아리, 구석에 푹 주저앉은 듯한 화병이 그랬다. “지금은 나도 모르게 기교를 부렸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잘 만들어지고 중심이 잘 맞는지 아는 거죠. 그래서 결과물이 예전보다 인위적인 면이 있어요. 나도 모르게 작품 속에서 순수함이 사라지고 있구나 싶었죠.” 그래서 요즘 그녀는 혼자 작업하는 시간을 늘렸고, 작업 때 마다 유리의 투명함을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한다. “투명함이 참 예쁘잖아요. 색을 지나치게 입혀서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고 싶지는 않아요. 유리의 순수함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어요. 가장 유리답고, 내가 좋아하는 유리의 모습이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이어서 이야기했다. “유리는 인간 관계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요. 유리가 뜨거울 때 온도가 1250℃거든요. 뜨거울 때는 아무리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아요. 색도 빨갛게 균일한 편이죠. 그런데 식고 나면 본연의 색이 보여요. 이 유리가 원래 빨겠는지 파랬는지. 그렇게 자기 색이 드러나면 예민해지고 쉽게 깨져 버리죠. 사람도 그렇잖아요. 좋을 때는 단점도 안보이고, 다 괜찮은 것 같은데 애정이 식으면 그 사람의 단점이 보이듯. 유리가 이렇게 사람하고 비슷해요. 그래서 작업하면서 문득 치유를 받기도 하죠(웃음). 그래서 유리 작가 하나봐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했던가. 이 말대로라면, 양유완 작가는 참 순수하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용기 있는 순수함.

1 양유완 작가는 얼마 전, 파주 헤이리에 개인 작업실을 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조용하고 분주하게 일한다. 2 은박을 유리 덩어리에 감는 모습. 그 덩어리가 형태를 잡아가면서 하나의 은박은 작은 조각으로 나뉜다. 3 작업실 옥상에는 이름 모를 꽃이 활짝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