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딸린 집은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었을 터이다. 사실 기존의 정원 하면 집을 예쁘게 치장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드넓은 푸른 잔디와 고가의 수목이 멋진 정원의 표본이 된 것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정원 문화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규모와 화려함이 아닌, 각자의 이야기를 품은 정원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정원 트렌드를 논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에요. 집마다 땅이 다르고, 사는 가족이 다른데 몇 가지 트렌드 안에 정원을 넣는다는 건 우매한 일”이라고 이성현 정원사는 말한다. 물론 시대에 따라 정원의 형태와 역할이 조금씩 달라진 건 사실이다. 자로 잰 듯 딱 떨어지는 유럽식 정원이 주춤하고 오가닉, 생태 정원으로 가는 흐름이 그것이다. 하나 그는 어떤 스타일, 무엇을 심느냐는 중요치 않다고 말한다. 현대인의 ‘교감’ 가뭄을 해소시키는 것. 우리 시대의 정원이 나아가야 할 곳은 바로 그 지점일 것이라고. “정원 문화라고 하면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정원은 쉬워야 해요. ‘백선생’을 보세요, 얼마나 쉬워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정원 역시 ‘놀이’로 가야 해요.” 정원에도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 정원에 ‘놀이’ 개념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도 그래서다. 정원을 만든, 혹은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정원에 대한 추억이 있다는 것. “아버지가 심어둔 앵두나무, 감나무 등 나이 들어 불현듯 그 추억이 튀어나오죠. 어린 시절의 경험은 추억 그 이상입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정원에서 놀 수 있는 경험을 선물해주는 게 중요한 이유죠.” 물론 정원을 만든다는 건 당신의 예쁜 손톱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대신 더 큰 행복이 찾아온다는 의미일 수도. 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가족의 삶이 깃든 행복한 정원. 이제 그 정원의 이야기 속으로 잠시 들어가볼 차례다.

 

‘정원이 생활을 디자인한다’. 푸르네의 설계, 디자인은 이 한 줄의 단어로 설명된다.

이성현 대표의 정원 철학이 담긴 판교 자작나무집, 닭장이 있는 정원. 그곳엔 식물이 아닌 ‘이야기’가 있었다.

 

 

 

캔버스 위에 자작나무

판교 자작나무집. 초등학생 아이를 둔 집주인은 많은 이들이 그렇듯, 아파트에 살다가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경우였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맞벌이 부부인 그들은 직접 가꾸는 정원 대신 미술관처럼 ‘보는’ 정원을 원했다. “이 집은 2층 구조인데, 다른 집과 구조가 반대예요. 즉 1층이 방이고 2층이 거실과 주방으로 이루어진 구조죠.” 가족의 주요 생활 공간인 2층에서도 정원을 볼 수 있게 할 것. 답은 키가 큰 나무였다. 집주인이 원한 건 배롱나무. 우리가 흔히 아는 백일홍 나무다. 큰 키와 긴 수명, 그리고 아름다운 붉은 꽃. 집주인의 조건엔 맞았지만 이성현 정원사의 생각은 달랐다. “집 안과 밖이 모두 흰색이라서 다른 어떤 나무보다 자작나무가 좋겠다 싶었어요. 특히 백자작나무요.” 건물의 외벽은 물론 내부 인테리어 역시 흰색인 집의 특성상, 그의 눈엔 자작나무가 제격이지 싶었다. 자작나무는 큰 키로 외부로부터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준다. 여기에 하나 더. 마치 캔버스처럼 흰 벽에 특별한 풍경 하나를 선물한다. “흰 벽에 비친 자작나무 그림자는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듯,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풍경을 전해주죠.” 가늘고, 굵은 자작나무를 섞어 서로 다른 볼륨감과 운치 역시 배가했다. 키 큰 자작나무 정원이라고 1층의 경관이 무시된 건 아니다. 자작나무 밑으론 의도적으로 부드러운 식물을 심었다. 그 덕에 1층 침실에선 자작나무 줄기와 바람 따라 왔다 갔다 하는 땅 아래의 식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핀 보라색 꽃들이 이 봄, 운치를 더한다.      

 

 

 

닭장이 있는 정원

이곳 역시 판교의 단독주택. 맞벌이 부부의 집이지만, 앞선 자작나무집과 달리 아내가 정원에 관심이 많았다. “많이 가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겠다 싶었어요.” 다양한 식물과 채소가 어우러진 텃밭 정원이 제격이었다. “애초에 공간 계획이 잘못된 집이었어요. 공간 구획부터 완전히 틀었죠.”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존의 전형적인 주차장을 탈바꿈시키는 것. “차가 나가고 나면 빈 공간으로 남을 주차장을 정원으로 흡수시켰어요. 주차장이 정원으로 보일 수 있도록.” 네모반듯한 콘크리트 주차장 대신 바닥에 돌로 패치워크를 하듯 조각 작품 같은 주차장을 탄생시켰다. 텃밭이 정원 가운데에 있는 것도 이곳의 특징. “의도적으로 텃밭과 정원을 구분하지 않았어요. 울타리 역시 나무로 꽉 채우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정원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열어뒀어요.” 정원을 높은 담장 안에 가두지 않겠다는 집주인의 여유가 더해져 이웃과 함께 즐기고 교감할 수 있는 정원이 탄생했다. 여기에 더욱 특별한 시도 하나도 엿보인다. 바로 닭장이다. 도심 속 정원에, 그것도 닭장이라니. 부부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 야외 닭장을 선물했다. 정원에 생기를 전하던 이 닭장은 현재는 철거된 상태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닭의 목청을 여유롭게 받아줄 주민은 많지 않았다. 닭이 떠나간 자리엔 식물이 채워졌다. 아쉽게 닭장은 철거됐지만,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더욱 아름다운 정원이다. www.ipurune.com

 

 

더 가든스 한지희 대표의 정원은 정원에 대한 현대인의 욕구를 그대로 보여준다.

도심 속 작은 정원, 테라스 정원이 그것이다.    

 

 

 

안과 밖을 잇는, 테라스 하우스

타운하우스가 많은 판교, 광교 같은 신도시엔 옥상을 테라스로 꾸민 집이 많다. 판교에 위치한 타운하우스 윌든 힐스도 그중 하나다. 이곳의 구조는 40~50평의 내부 공간에 더해, 20평 정도의 테라스가 있다. “아무리 내부 인테리어를 잘해놔도 테라스 뷰가 삭막하다면 끔찍하죠. 내부 공간의 확장 개념으로 테라스 정원을 꾸미자 싶었어요. 실내 생활을 밖으로 이끌어줄, 식사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여유로운 멀티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어요.” 테라스 정원 지붕엔 캐노피를 설치해 공간을 확장시켰다. 상대적으로 방이 작은 편인 이곳에, 프라이빗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부부만의 특별한 거실이 생긴 셈이다. “얼핏 제 프로젝트를 보면 아시겠지만, 정원 디자인 시 분수를 추천하는 편이에요. 정감 가는 물소리를 정원 안에 끌어들이고 싶기 때문이죠.” 푸른 식물이 눈을 힐링시켜준다면 흐르는 물소리는 도심 속 소음에 지친 귀를 달래준다. “실내에서 한 발자국만 나서면 자연 속 거실이 펼쳐지는 셈이죠.” 안과 밖을 잇는 생활공간의 확장. 테라스 정원이 지금 각광받는 이유다. 

 

 

 

4개의 멀티 정원

단독주택에 가야만 정원을 꾸밀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도 좋다. 거창한 정원을 꾸미긴 귀찮고 정원에 살고는 싶고? 이런 사람들에게 테라스 정원은 가장 편리하고 손쉬운 답일지 모른다. 분당 구미동의 고급 빌라촌 월드메르디앙. 원래 이곳은 오래된 주택이었다. “음지라 잔디가 자라지 않는 지형의 특성을 고려해 잔디 대신 돌을 깔았어요. 2층으로 된 구조로, 각 공간마다 작은 정원을 두었죠.” 1층과 2층의 테라스 정원을 포함, 총 4곳에 작은 정원이 있다. 특히 중점을 둔 곳은 2층 테라스 정원. 2층엔 거실이 자리하는데 2평 남짓의 조금은 작고 답답한 구조다. 해법은 바로 폴딩 도어. 거실과 테라스 정원 사이에 시원한 통유리의 폴딩 도어를 설치해 곧바로 탁 트인 자연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곳은 가든파티를 겸할 수 있는 정원으로 설계됐어요.” 테라스 정원 위로 마치 지붕처럼 긴 파고라를 설치해 확장 거실로도, 파티 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다. 자연, 그리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정원은 지금 이 복잡한 도심 속에서 순조롭게 역할 진화 중이다.
www.thegardens.co.kr

 

 

건축가 조성익이 이끄는 TRU 건축사무소. 얼마 전 선보인 광주의 다락집,

진천 벚꽃집은 건축물과 정원의 조화가 불러온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이다.

 

 

 

벚꽃집에 봄이 오면 

버드나무집, 밤나무집…. 그 옛날 시골마을엔 번지수 대신 ‘나무’가 그 집의 얼굴인 곳이 꽤 있었다. 충북 진천에 위치한 이곳 역시 번지수보다 ‘벚꽃집’으로 통하는 집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마을. 은퇴한 사업가인 집주인은 부인과 함께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한적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집을 원했다. 두 사람이 자연을 즐길 수 호젓한 공간이면서도 두 아들의 가족과 지인을 초대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 “원래 오래된 집이 있던 자리로, 벚꽃나무가 유독 많았어요.” 낡은 집은 허물고 대신, 벚꽃나무를 새 집 정원에 그대로 옮겨 심었다. 이 집의 콘셉트는 ‘전망대가 있는 가족 호텔’. 아름다운 벚꽃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와 여러 가족이 활용 가능한 공간이 필요했다. 남쪽 방향으로 작은 방들을 두고 복도로 연결하여 가족 3대가 사용하는 호텔 객실과 같은 평면을 만들었다. 남서쪽으론 3층 높이의 전망대가 있어 여러 높이에서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뒤쪽으론 넓은 밭이 있어서 넓은 뒷마당을 가진 듯 풍요롭고 무엇보다 정원 가득 채운 벚나무가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목조 지붕의 편안함과 툇마루의 여유, 하늘 아래 옥상 데크가 어우러진 풍경. 벚꽃 흐드러질 봄이면 정원은 한 폭의 그림이 되고 만다.

 

 

 

숨겨진 다락 多樂 집

지난봄 완공된 전라남도 광주의 ‘다락집’. 다락(多樂), 많은 즐거움이 있다는 의미로, 실제로 숨겨진 다락방의 재미를 더한 구조다. “완만한 경사지 땅에 남쪽은 트여 있고 얕은 산으로 둘러싸인, 주택지로는 최고의 부지였죠.” 아직은 주변에 집들이 들어서지 않아 조망권이 확보됐지만 앞으로에 대한 보장은 없었다. “이웃에 의해 영향을 적게 받는 2층 구조와 옥상 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일반적인 주택이
1층에 거실과 주방을 두고 2층에는 침실을 두지만 다락집은 1, 2층을 뒤집어보기로 했다. “1, 2층의 구조를 뒤집으면 실용적인 장점도 있어요. 2층 거실의 층고를 높여서 작은 다락을 만들 수도 있고, 추운 겨울에는 2층 거실을 닫고 1층 침실에서 주로 생활하면 난방비도 절약할 수 있어요.” 건축주의 또 다른 소망 하나는 정원을 마음껏 가꾸고 싶다는 것이었다. 큰 집에 대한 열망 대신, 넓은 마당을 가진 작고 기능적인 집이길 원했다. “넓은 정원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건물의 바닥 면적을 작게 잡는 대신 층고를 높여 넓은 공간 느낌을 갖도록 설계했어요. 덕분에 넉넉한 마당이 생겼죠.” 앞마당과 뒷마당으로 분할된 정원엔 1층 침실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나무와 식물을 적절히 배치했다. 철 구조물로 이뤄진 담벼락엔 담쟁이를 키워 초록의 자연 담벼락을 만들 생각이다. 바비큐 파티를 위한 야외 식당, 옥상 테라스까지 더해져 작지만 완벽한 공간 조합을 이뤘다. www.trugrou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