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개개인에게 의미를 갖기 위해선 문화의 요소를 통해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음식 문화 역시 이러한 이유로 나를 벗어나 따로 존재하거나 바깥에서 보고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탤리언 레스토랑에 가서 파스타를 먹는 것이 문화를 즐기는 행위인지 생각해보자. 이건 단순히 기호 음식을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파스타를 먹으며 이탈리아의 식문화를 즐기는 것이라면, 파스타는 음식이 나의 가족, 공동체, 지역, 한 민족, 대한민국, 아시아까지 이해할 수 있는 한 통로가 되어야 한다. 파스타가 어떻게 발전되었고 우리나라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음식이 내 삶에 어떻게 반영되었고 영향을 주었는지 이해해야 음식 문화를 즐기는 것이다. 즉, 파스타를 기호 음식으로 먹을지, 식문화를 즐기는 수단으로 활용할지는 나에 의해 결정된다. 음식 문화 자체가 있다 없다가,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들고 먹는 사람이 그 음식에서 문화적 요소를 뽑아내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문화가 성립된다는 의미다. 

서구와 일본 같은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만 달러가 넘으면 먹거리에 대한 기호가 극단으로 다양해지고 새로운 레스토랑에 대한 갈구가 많아진다. 흔히 말하는 ‘미식 열풍’이 일어난다. 우리나라의 현재 경제 수준은 2만7000달러 정도다. 진작에 2만 달러를 넘어섰는데도 불구하고, 서구 수준에는 못 미친다. 왜 그런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의식 수준, 문화 수준이 떨어져서? 아니다. 먹거리에 돈을 소비할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2만7000달러 안에는 천정부지로 솟는 집값, 아이들 사교육비, 의료비, 노후 보장비, 노부모 봉양에 대한 부담이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먹거리에 대한 투자는 늘 뒷전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계 경제가 힘들면 일 순위로 비용을 줄이는 품목이 과일이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니까. 달걀과 우유 섭취도 줄인다. 이렇듯 음식의 질을 먼저 떨어뜨린다. 그 후에 의복, 자동차 등 문화 소비를 줄이고 마지막으로 줄이는 것이 사교육비다. 악착같이 학원비는 쥐고 있다.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개인이 먹고 즐기며 쾌락을 누릴 수 있는 비용을 쓸 수가 없다. 엉뚱한 곳에 돈을 많이 쓰게끔 만들어진 사회다. 이를 누가 해결하겠나. 정치가가 해결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거든 정치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미식, 식문화의 수준을 논하는 데 단순히 음식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문화 수준은 ‘허접’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넥타이 메고, 정장 입고 가족과 오붓하게 파인 다이닝에 가서 폼 딱 잡고 와인 마시면서 일인당 30만원꼴은 쓰고 와야 행복한 거다. 우리나라에서 고급 레스토랑이 안 되는 이유?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그런 음식을 즐기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흔히 말하는 월급쟁이, 몰락한 중산층이 가서 비싼 음식을 즐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주머니 사정과 의식 수준 이 두 가지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 둘의 갭이 엄청나다. 일한 노동의 대가로 인간이 행복을 즐기는 데 많이 투자할 수 있도록 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미식의 사전적 의미는 좋은 음식, 혹은 좋은 음식을 먹는 행위를 뜻한다. 미식을 즐기려면 그 나라의 식문화를 비롯해 여러 요소가 성장해야 한다. 미식을 즐기기 위한 첫 단계는 음식에 대한 분별력을 갖추는 것이다. 맛있다, 맛없다를 분별할 줄 알아야 좋은 음식이 뭔지 찾아서 먹을 테니 말이다. 분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소고기를 예로 들면 마블링이 많은 것도 먹어보고, 한우도 먹어보고, 와규도 먹고, 드라이에이징한 고기도 먹어보고 해야만이 ‘아! 고기는 이렇게 먹는 거야’ 하는 기준이 생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다양한 경험에 돈을 투자할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눈을 돌려 일상의 음식을 활용해 본능적 쾌락을 극대화해야 한다. 평범한 일상의 음식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별력을 키울 수 있고, 그 분별력에 따라서 나한테 기분 좋은 쾌락을 주는 음식을 추구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진다. 미식이란 것이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에 핵심이 있다. 음식을 포함한 인간의 감각은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에 맞춰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 음식은 눈으로 보고 듣고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으로 미적 체험 기준을 세울 수 없다. 입에 넣어봐야 안다. 화가 이중섭이 큰 소 그림을 그리면서 물감을 어마어마하게 썼다면, 그림이 더 웅장했겠지만 소요된 금액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런 작업을 늘 하면야 좋겠지만, 이중섭은 성냥갑 안에 있는 은박지를 펴놓고 망가진 볼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걸로도 충분히 아름다움은 표현됐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대단히 비싼 재료로 아주 유명한 요리사가 하는 요리를 즐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시장에 가서 쉽게 살 수 있는 값싼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특별한 요리 솜씨 없는 내가 대충 해서 먹어도 충분히 미적 생활은 즐길 수 있다. 미식을 논하기 전, 그런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음식은 예술과 비슷한 면이 있다. 예술 작품에는 늘 창작자가 있다. 그리고 창작자가 그림을 그릴 때 왜 사람의 입술에 빨간색을 칠했는지, 왜 점을 푸르스름하게 했는지, 빛이 왜 이쪽 방향으로 들어왔는지에 대한 이유가 반드시 있다. 이것이 ‘논리적 필연’이다. 20년 전쯤 하동의 섬진강으로 재첩을 촬영하러 간 적이 있다. 물때를 잘못 맞춰 가서 사진을 못 찍게 생겨버렸다. 그래서 큰일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동네 식당에 재첩국을 먹으며 벽을 보니 어마어마하게 멋있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하동대교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인데, ‘고무 다라’를 매달고 재첩을 캐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는 사진이었다. 식당 주인에게 그 사진을 누가 찍었느냐고 물었더니, 하동에서 구둣방 하는 사람이 찍었다고 일러줬다. 그는 지리산 일대를 20년간 촬영해온 아마추어 사진가였다. 그를 찾아가 재첩 사진이 또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주 많다며 두 시간이 넘도록 사진을 보여줬다. 그런데 건질 사진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식당 벽에 걸려 있던 사진은 무엇인가. 우연이다. 음식 역시 우연히 기가 막힌 맛을 낼 수 있다. 그런데 그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논리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원은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훌륭한 요리사도 미식의 요건 중 하나다. 음식에 대한 단순한 기술만이 아니라 음식에 대한 자기만의 세계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경지까지 도달해야 미식의 요건에 맞는 요리사, 창작자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 연륜으로 터득해 한 가지 음식만 맛있게 만드는 사람과는 다르다. 

식재료의 질도 무시할 수 없다. 농업도 기술인지라, 반복해서 농사를 지어봐야 그 작물이 어떤 생리를 갖고 있고,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물을 내는지 깨닫는다. 그 체득을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 또한 필요하다. 따라서 20~30년 농사 지은 농부와 1~2년 경험한 사람이 지은 농작물은 그 수준부터 다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때깔’을 너무 따진다. 크고 예쁜 모양. 맛하고는 관계없는 것에 집착한다.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크고 때깔 좋은 게 반드시 맛있지는 않다는 것, 자연물은 원래 거칠고 불규칙하고 색깔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농산물은 공산품이 아니다. 똑같은 모양의 토마토가 한 상자 안에 담겨 있는 정갈함에 현혹되면 안 된다. 비정상적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중 또 하나. 과연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문제다. 보통 우리는 조선의 것을 한국적이라 생각한다. 조선의 왕가나 양반가에서 먹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음식을 한국적인 음식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 음식을 두고 전통 음식이라 일컫는 관념은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프랑스를 예로 들면, 혁명 이후 왕족, 귀족의 음식을 만들던 요리사들이 레스토랑을 차렸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 요리사에 집중했다. 왕과 귀족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요리사 중심으로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 시대 요리사에게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왕이 어떤 음식을 먹었는가에 집중한다. 이는 전통이 아니라 고착에 가깝다. 나라마다 음식을 어떤 형태로 만들려고 하는 의도, 스타일은 분명 전해져 내려온다. 그런 스타일을 두고 전통의 유무는 따질 수 있지만, 음식 자체를 두고 전통을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본다. 

인간은 원래 항상 새로운 걸 추구하고, 호기심이 많고, 실험해보고, 자극받고, 위험을 무릅쓰고 손을 대보고 핥아보는 그런 동물이다. 그래야 인간은 행복하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교육과 학습을 통해 인간의 본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수적이라 더하다. 조선 500년 동안의 유교 사상의 영향 때문이다. 자신의 쾌락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그게 아직까지 우리에겐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재미없어졌다.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개방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감각을 열어야 한다. 미식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특히나 더 그렇다. 하나 이것은 비단 음식 문화의 문제만이 아니다. 음악, 영화, 시, 소설, 연극 모든 예술은 인간의 감각을 열고, 인간은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그것을 즐겨야 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우리의 문화는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다. 요즘 대중음악은 아이돌 음악이 최고이고, 록 음악과 포크송은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 또한 흥행 작품 몇 개를 전국의 영화관에서 올린다. 자잘한 독립영화들은 잘 걸지도 않는다. 베스트셀러 이외의 책은 잘 보지도 않는다.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났느냐. 개인이 각자 자신의 감각을 개발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 감각에 맞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다른 사람이 좋다 그러면 우르르 쫓아가는 것이다. 쏠림 현상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문화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힘들다. 대한민국이 조금 더 재미있고, 맛있는 음식이 다양한 나라로 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을 발달시키고, 심도 있게 음식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음식 평론가 황교익은 미식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사단법인 끼니를 운영하며 다양한 강연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그중 ‘맛으로 세상 읽기, 맛있는 칼럼 쓰기’ 강좌는 현재 8기가 진행 중이고, 11월 24일부터 9기가 시작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사단법인 끼니의 홈페이지(www.thekini.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