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여러 방법으로 공간을 컨트롤한다.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 공간의 무드와 사용자의 일상을 만드는 이, 바로 양태오 디자이너다. 그는 텅 빈 공간 속, 얼마만 한 크기의 가구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동선을 고려해 소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예상하고 계산하는 작업을 해왔다. 양태오 디자이너의 치밀함과 완벽주의는 공간을 사용자의 것으로 완성시켰다. “사실 제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의뢰하는 사람은 제한적이죠. 돈도 많이 들뿐더러 인테리어 공사를 한 번 시작하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 3년까지 걸리는 작업이라 시간의 여유 또한 필요해요. 일상의 여유가 없는 요즘, 시간을 그렇게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저희 스튜디오는 재벌 2, 3세를 비롯해 많은 유명 인사의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커스터마이징에 대한 노하우가 자연스레 쌓였어요. 우산꽂이, 슬리퍼만 넣을 장, 앞치마, 욕실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배스로브 등 그야말로 일상용품을 공간과 어우러지게 디자인하고 제작해왔죠.” 그렇게 다양한 취향을 경험하며 그는 어떻게 만들어야 아름답고 우아하며, 어떤 소재가 고급스럽고 실용적인지 터득했다. ‘하지만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금 폐쇄적인 스튜디오를 운영해온 그는 문득 ‘이게 과연 맞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처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가 스튜디오를 많은 이들에게 오픈하지 않은 채 운영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을 테다. 그래서 그는 태오홈 컬렉션을 시작했다. 많은 이들의 취향을 지레짐작해 디자인할 수는 없는 법. 그는 양태오라는 이름을 내걸며, 먼저 제품을 통해 본인의 취향을 드러냈다. 내가 쓰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디자인에 담아 취향이 통하는 이들과 공유하는 방법을 택했다. “라이프스타일 시장에 다양성을 부여하고픈 마음이 있었어요. 북유럽 스타일, 일본 스타일이 전부인 국내에서 아메리칸 클래식, 유러피언 클래식을 한국 디자이너가 모던하고 위트를 더해 풀어낸 디자인 물건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대중의 코드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양태오 디자이너는 수공예에 대한 애착과 존경심이 크다. 워낙 옛날 물건을 좋아하고, 전통 수공예 작품을 좋아하다 보니, 아시아 문화의 진수라고도 할 수 있는 도자기에 그의 마음이 닿았다. 

태오홈 컬렉션은 태국의 씨노타이를 기반으로 한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수공예품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국내에서 수공예품을 만드는 데 드는 가격은 제가 하나 소장하기에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에요. 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요. 

1 촛대와 조명. 조명은 디머를 달아 실내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조명의 갓도 블랙과 스트라이프 패턴 중에서 선택 가능하다. 2 잎차를 보관하도록 만든 컨테이너는 꽃병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3 10월 중순에 오픈하는 태오숍을 통해 선보일 앞치마. 4 씨노타이 기법으로 만든 접시와 나무젓가락, 그리고 자개를 활용해 만든 젓가락 받침대. 5 태오홈 컬렉션은 각각 다른 시즌에 출시된 제품이라도 한데 잘 어우러진다. 아치가 그려진 꽃병은 새롭게 출시된 제품. 

이제 우리나라는 수공예 산업 자체를 할 수 없는 구조인지도 몰라요. 대리석을 가지고 제품 하나 만드는 것도 어렵고, 뭐 하나 제대로 만들기가 힘들어요. 저는 이 사실에 화가 나고 슬프더라고요. 극단적인 표현일지 몰라도 문화적으로 퇴화한 나라 같았어요. 어떤 물건을 봐도 제대로, 정성을 다해 고급스럽게 만든 물건은 찾기 힘들어요. 쉽고 싸게 만들어 비싼 값을 받는 게 국내의 현실이죠.” 그렇다. 이제 한국에는 예술 하는 사람을 찾아보긴 힘들다. 모두가 장사꾼이 되었다. 돈이 안 되면 아무도 안 한다. 그런 현실에 양태오 디자이너는 한국의 수공예는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한번 없어져 봐야 그 소중함을 알지 않겠느냐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가치보다 값을 우선시하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저가 제품이 한국 리빙 제품의 기준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태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태국의 왕족이 사용하는 씨노타이라는 세라믹에 매료됐다. 특별한 듯 고귀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일상적인 물건으로 쓰이는 씨노타이. 만든 이의 손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태오홈의 세라믹을 보면, 그 매력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태국은 환율이 낮은 이유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받는 돈이 비록 적을지언정,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공예인으로서 책임감을 지니고 있어요. 10개를 만들든 100개를 만들든 그들은 잘하려고 노력해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도자기를 떠올려보자. 손으로 빚어 생긴 비대칭, 번짐, 흙과 같은 자연 소재에서 발현되는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양태오는 씨노타이 역시 이런 가치가 담긴 도자기라고 판단했다. 파란색의 점 하나, 선 하나를 전부 손으로 그리고, 브론즈로 두른 테두리는 물고기 아가미로 만든 아교로 정성스레 붙인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손으로 빚으니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는 제품과는 분명 다르다. 흠집 하나 없는 플라스틱과 달리 물감의 번짐, 가마에서 굽다 생긴 빛바랜 듯한 느낌, 크랙 등 완벽하지 않은 것이 모여 아름다운 모습이 완성된다. “저는 이 흔적을 보고 ‘이 작가가 이렇게 만들었구나, 이 부분은 이런 작업을 했구나. 아, 이 도자기는 크랙이 자연스레 생기고 거기에 그을음이 껴서 이런 빛바랜 자국이 생기는구나’ 생각하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하자’라고 치부해버리죠.” 왜 갈라짐이 있고, 왜 번짐이 있고, 왜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지 않은지 의도를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단순히 겉모습만을 탐닉하는 데 그칠 뿐, 창작가의 의도를 읽으려는 노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수공예에 대한 가치를 알아야 한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사람의 감성이 담긴 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미학을 지녔다. 그 당시에 아름답지 않아 보이는 것도 10년이나 20년 후에는 되살아나 아름다움의 가치가 발견될지 모를 일이다. 

6, 7 옛 물건을 좋아하는 양태오 디자이너의 집에는 각 시대와 문화를 지닌 오브제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8 태오숍을 통해서 선보일 카펫. 9 태오숍의 테이블 러너와 태오홈의 찻잔, 티 컨테이너, 빈티지 소품이 함께 놓인 다이닝 테이블.

양태오 디자이너의 목표는 이 세상 사람이 만든 아름다움, 과거의 아름다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 시대의 물건을 통해 옛 문화를 경험하는 것인데, 그는 전시를 통해 이런 욕구를 표현하기도 한다. “제 모든 디자인은 옛것을 끄집어내서 현대적 아름다움을 가미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어요. 문화와 문화가 섞이고 시간과 시간이 섞이는 것이죠. 그때 현대적 기술로도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처럼 양태오의 작품에는 여러 시대와 지역이 섞여 있다. 중국과 태국의 문화가 결합된 씨노타이 세라믹을 기본으로 16세기에 만든 인어상이라든지, 17세기 태국에서 만든 석상 또는 중국 당나라의 도자기를 콜라주해 여러 시간을 지닌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 갤러리 인에서 강석현 아티스트와 함께한 전시를 시작으로, 그는 지금까지 종종 여러 공간에서 전시를 연다.

이케아, H&M홈, 자라홈에 이어 크레이트 & 배럴까지 들어오는 마당에 국내 리빙 시장은 정체기다. 경기가 어려운 이유도 있지만, 티 타월 하나 살 돈으로 립스틱을 사는 사람이 월등히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사는 사람이 적으니, 해외 브랜드에서 국내로 들여오는 물건의 가짓수는 적어지고, 그 이후엔 분명 ‘우리나라에는 살 게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거다. 양태오 디자이너가 태오홈에 이어 가격의 문턱을 낮춘 태오숍을 오픈하는 이유다.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은 없어도 그만이다. 그래도 있으면 생활이 윤택해지고 편해짐을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자신의 공간에 좀 더 투자하고 싶은 이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그의 의도다. “인테리어는 리스크가 큰 편인데, 저는 소품으로 집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태오홈과 태오숍을 통해 디자인 미학을 공유하고, 일상이 소품으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것을요.” 커피 한잔을 종이컵에 따라 마실 때와 아티스트가 디자인한 컵에 마실 때의 기분이 다른 법이니까. 그의 말이 백번 이해된다. 자수를 놓은 욕실 발매트, 클래식한 무드를 연출하기 좋은 쿠션. 태오숍의 제품 역시 일률적인 것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양태오의 취향을 반영해 클래식한 가구와 소품에 쓰일 법한 디자인 요소를 데일리 소품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쁜 것에 현혹된다. 하나, 이제 우리는 단순히 예쁜 것을 너머, 그것을 만든 이의 의도를 고민하는 수준에 이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산업이 아니라 문화가 발전한다. 이는 의식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삶에 좀 더 여유를 갖고, 다른 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천천히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