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우 윤진서와 함께 여행하고 싶다면,
<파리 빌라>, 윤진서, 달, 2015.5.8
왠지 모를 ‘싸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 배우 윤진서의 오라를 좋아한다. 윤진서가 작가로 변신한 소설 <파리 빌라>는 윤진서의 ‘싸한’ 분위기를 그대로 닮아 있다. 주인공은 이별 후 여행을 떠난 여자의 여정과 그녀가 밟은 도시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룬다. 사랑했던 과거의 시절과 이별 후 여행을 하는 현재의 이야기는 순간순간 교차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운명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랜 여행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이별의 아픔은 점점 마모되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여자가 된다. 글을 읽다 보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헷갈릴 만큼 현실과 허구를 오가게 되며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내 친구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도 모르는 것 같다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뉴욕과 파리, 남프랑스, 인도, 아테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로 계속해서 이동하는 여주인공의 발걸음을 따라 다니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여행과 묘한 접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는 부부, 영화를 본 후 토론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들, 자신의 아내를 잡아먹은 식인 식물을 찾는 남자 등 끊임없이 등장하는 익명의 인물들은 어느새 여행 기간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며 나의 여행에도 새로운 이야기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번 바캉스를 마냥 기쁘고 즐거운 감정으로 남기기보다는 나만의 묘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면 윤진서의 서늘하고 건조한 문장과 함께 하시길!

2 욕심 부리지 않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일하지 않습니다>, 무레 요코, 레드박스, 2015.3.19
‘일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마저 휴가지에서 읽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주인공 교코가 회사를 그만두고 세 평짜리 연꽃 빌라에서 새로 시작하는 인생을 다뤘던 <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의 삼 년 후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는 교코의 모습이 주로 그려지며 주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신념에 따라 지켜나가는 일상을 보여준다. ‘왜 일을 하지 않는지, 다시 일할 생각이 없는지’ 폭풍처럼 쏟아지는 주변의 질문들은 언젠가 한번쯤 우리가 일을 하지 않는 친구에게 했던 말과 닮아 있다. 교코 주변에 이런저런 근심거리들이 일상을 뒤흔드는 가운데 매일을 평온하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길 권하는 교코의 일상이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카모메 식당>을 인상 깊게 보았던 독자라면 이 책과 함께 휴가 기간을 충실히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단, 휴가를 마치고 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표를 던질 수 있으니, 아직 남아 있는 카드 값이 두려운 직장인이라면 조금 덜 집중해서 읽을 것!

3 세상에서 가장 까칠하지만 매력적인 남자와 데이트하고 싶다면,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다산책방, 2015.5.20
스칸디나비아 지역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스웨덴에 살고 있는 까칠한 남자 오베가 주인공인 <오베라는 남자>와 함께 할 것을 권한다. 오베는 6개월 전 아내를 잃고 최근에는 30년 넘게 일해온 직장에서도 쫓겨나서 아무런 삶의 희망도 없는 상태이다. 자신이 할 일이라고는 죽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살을 준비한다. 하지만 오베의 이웃에 ‘그것들’이 이사오며 번번히 오베의 자살을 방해한다. 심지어 그들은 까칠한 오베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기도 하지만 오베는 이를 거절하지 못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양의 커피를 마시는 등 자신이 정해놓은 정확한 규칙 속에서 살던 오베가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그가 어떻게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게 될지 지켜보는 흥미진진한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게 된다면 지금 당장 스칸디나비아로 가는 비행기 편에 오르고 싶어질 것이다. 지나가는 모든 할아버지들에게 ‘혹시 오베가 아닐까?’하는 시선을 던지게 될 것이다.

4 런던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면,
<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 멜리사 젠슨, 황금가지, 2015. 5.22
가장 사랑하는 도시로 런던을 꼽거나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런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본인이 런던에 홀릭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은 런던을 배경으로 오만한 19세기 귀족 소녀의 일기장과 편견 가득한 미국의 21세기 십대 소녀의 블로그가 번갈아 가며 등장하며 십대 소녀들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다. 21세기 미국을 살고 있는 캐서린이 런던에 여행을 가면서 만나게 되는 19세기 귀족 소녀의 일기장을 통해 런던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귀족 소녀의 후손인 훈남 윌리엄 퍼시빌이 등장하며 런던 남자들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방학 동안 대영 박물관에서 일하게 된 잔소리쟁이 엄마를 따라 어쩔 수 없이 런던에 왔지만 점점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된 캐서린과 함께 유럽 여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기분일 것이다!

원제는 ‘영국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일 정도로 영국과 이곳에서 살고 있는 매력적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

5 광대한 자연의 매력에 빠지고 싶다면,
<고트 마운틴>, 데이비드 밴, arte, 2015.6.4
‘미국 현대문학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밴의 장편 소설. 어린 시절 겪은 부친의 죽음은 데이비드 밴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이로 인해 감정적인 혼란과 죄책감, 상실감 등을 느끼며 신화적 공간을 창조해내고 그 안의 일들을 이야기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주는 구원의 힘을 믿는 작가이다. 

<고트 마운틴>은 고비 식물들이 자라고, 끊임없는 지각활동으로 지각판이 뒤틀려 맨틀 아래 바위들이 지상 위로 드러나 있고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올라온 샘물이 끊이지 않는 곳인 고트 마운틴으로 열한 살 소년과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와 함께 사슴사냥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고트 마운틴은 태고의 세계와도 같은 공간으로 배경 의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장소. 

소년은 사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또 한번 ‘어른’으로 거듭나게 되고 현대세계에서 ‘인간’이 되고자 한다. 그 거듭나는 순간의 틈에서 또 선과 악의 중간에서, 종교와 도덕 사이에서, 역사와 역사 이전의 세계의 사이에서 역사에 맞서 싸우는 투쟁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무한한 자연이 주는 광활함을 느끼고자 여행을 떠난다면 <고트 마운틴>과 함께할 것을 권한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티끌처럼 작게 느껴질 것이다.